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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고학(古學)은 공자와 주공이 남긴 옛 원문으로 곧장 돌아가자는 학문이에요. 야마가 소코는 그 사이에 끼어든 송나라 학자들의 해설(주자학)이 원래 뜻을 가렸다고 보고, 1000년 넘게 쌓인 주석을 걷어낸 채 성인의 글을 직접 읽자고 했지요.
아주 오래된 명작 소설을 읽는다고 해볼게요.
원작을 펼치는 대신, 다른 사람이 쓴 요약본과 해설서만 잔뜩 읽는다면 어떨까요?
편하긴 해도, 정작 원작자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남의 눈을 빌려 짐작하는 셈이 돼요.
'고학'은 여기서 "그럴 게 아니라 원작을 직접 읽자"고 말하는 태도예요.
야마가 소코(1622~1685)는 에도 시대 전기의 유학자이자 병학자예요.
그가 창시자로 꼽히는 학문이 바로 고학(古學)인데, 글자 그대로 '옛것(古)을 배운다(學)'는 뜻이에요.
여기서 옛것이란 공자와 주공 같은 옛 성인이 남긴 원래의 글이에요.
후대 학자들이 덧붙인 해설을 일단 옆으로 치우고, 성인의 원문으로 곧장 돌아가 그 본뜻을 직접 읽어 내자는 것이 고학의 핵심이에요.
재미있는 건, 야마가 소코 자신도 처음에는 '해설서'를 열심히 공부한 사람이었다는 점이에요.
그는 아홉 살 무렵 하야시 라잔(林羅山) 문하에 들어가 주자학, 즉 송나라 때 정리된 신유학을 배웠어요.
주자학은 송나라 학자들(정자·주자)이 공자의 가르침을 촘촘하게 해석해 세운 거대한 체계였고, 당시 일본과 동아시아의 '표준 교과서' 같은 학문이었지요.
그런데 마흔 살 무렵, 그는 이 표준을 정면으로 비판하며 결별했어요.
심지어 주자학의 영향 아래 자신이 썼던 책들을 불태워 버렸다고 해요.
1665년에는 《성교요록(聖教要録)》을 펴내, 공자 이후 송나라 유학자들이 경전을 풀이한 방식 자체가 잘못됐다고 몰아붙였어요.
그는 송대 도학을 두고 '겉은 유학이나 속은 이단(阳儒阴异端)'이라고까지 말했어요.
겉보기엔 공자를 따르는 척하지만 속은 다른 길로 새 버렸다는 뜻이지요.
이 책을 낸 뒤 그는 붙잡혀 유배를 떠나게 돼요.
두 태도를 나란히 두면 이렇게 정리돼요.
| 구분 | 주자학(정주학) | 야마가 소코의 고학 |
|---|---|---|
| 무엇을 읽나 | 송대 학자들의 해석 체계 | 공자·주공의 옛 원문 |
| 사이의 주석은 | 믿고 따라야 할 안내 | 원뜻을 가릴 수 있는 덧칠 |
| 목표 | 정리된 체계를 익히기 | 성인의 본뜻을 직접 만나기 |
그가 남긴 말을 보면 태도가 아주 분명해요.
호조 우지나가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이렇게 적었어요.
"予以周公、孔子为师,而不以汉、唐、宋、明诸儒为师."
곧 "나는 주공과 공자를 스승으로 삼되, 한·당·송·명의 여러 유자를 스승으로 삼지 않는다"는 뜻이에요.
후대의 유명한 학자들이 아니라 가장 처음의 성인에게 직접 배우겠다는 선언이지요.
유배까지 각오한 그의 말은 더 단단해요.
"夫罪我者,罪周公孔子之道也,我可罪而道不可罪."
풀면 "나를 죄준다는 것은 주공과 공자의 도를 죄주는 것이니, 나는 죄를 받을 수 있어도 도는 죄를 받을 수 없다"는 뜻이에요.
자기 학문이 성인의 원래 도와 곧장 이어져 있다는 자부심이 그대로 드러나요.
야마가 소코가 이렇게까지 자신만만했던 데에는 그 나름의 역사 지도가 있었어요.
그는 유학의 정통 계보, 곧 도통(道統)을 이렇게 그렸어요.
유학은 아주 먼 옛날 복희·신농에서 시작해, 공자가 몸소 가르침을 세우면서 유도(儒道)의 종주가 되었다는 거예요.
문제는 그다음이에요.
그는 공자가 죽은 뒤로 성인의 도통이 거의 끊겼다고 봤어요.
놀랍게도 증자·자사·맹자처럼 우리가 잘 아는 큰 이름들조차 공자에는 미치지 못한다고 여겼지요.
그러니 송나라 학자들의 해석은 더더욱 원래의 도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와요.
그렇다면 끊긴 도통은 누가 다시 이을까요?
야마가 소코는 그 정통 계승자를 스스로 자임했어요.
대담한 주장이지만, 앞서 본 '원문으로 곧장 돌아가자'는 고학의 태도에서 보면 자연스러운 귀결이에요.
고학은 어려운 이론이 아니라 하나의 단순한 결심이에요.
남이 정리해 준 해설이 아무리 훌륭해도, 옛 성인의 원래 글을 직접 읽어야 그 본뜻을 만난다는 것이지요.
야마가 소코는 자신이 오래 배운 주자학을 스스로 뒤로하고, 공자와 주공의 원문으로 곧장 돌아가자며 일본 고학파의 문을 열었어요.
유배를 감수하면서도 "나는 주공과 공자를 스승으로 삼는다"고 말한 그 고집이 바로 고학의 출발점이었다는 것, 이 한 가지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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