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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카비르는 글을 몰랐던 가난한 직조공이었어요. 베틀 앞에서 실을 엮듯 말을 엮어 시를 지었고, 그 시들은 종이가 아니라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졌어요.
15세기 인도 바라나시(베나레스)에 카비르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힌두와 이슬람의 경계를 허문 시인으로 유명하지만, 그 이야기는 다른 글에서 다루고 여기서는 딱 하나, '그가 베 짜는 직조공이었다'는 사실에만 좁게 집중할게요.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니루(Niru)라는 이슬람교도 방직공과 그의 아내 니마(Nima)가 어린 카비르를 데려다 길렀어요.
두 사람은 몹시 가난했고 글도 읽지 못했지만, 아이에게 자기들이 아는 유일한 기술, 곧 베 짜는 일을 가르쳤어요.
그래서 카비르는 학교에서 글을 배운 학자가 아니라, 손으로 실을 다루며 먹고사는 노동자로 자랐어요.
그가 살던 카비르 초라(Kabir Chaura) 동네는 지금도 그의 이름으로 남아 있어요.
여기서 신기한 점이 있어요.
글을 몰랐던 사람이 어떻게 위대한 시인이 됐을까요?
답은 '입'이에요.
카비르는 종이에 시를 적은 게 아니라, 일하면서 입으로 읊었어요.
우리가 설거지하면서 흥얼흥얼 노래하듯, 그는 베틀 앞에 앉아 실을 넣고 빼는 리듬에 맞춰 짧은 말들을 지어 불렀던 거예요.
베를 짜듯 말을 한 올 한 올 엮은 셈이죠.
카비르와 그의 제자들은 이 구술 시들을 '바니(bāņīs)', 곧 '말씀'이라고 불렀어요.
종류를 표로 정리하면 이래요.
| 형식 | 뜻 |
|---|---|
| 도해(dohe) | 짧은 2행시 |
| 살로카(śalokā) | 산스크리트어 슐로카(ślokā)에서 온 운문 |
| 사키(sākhī) | '증언'이라는 뜻 |
특히 '사키'는 산스크리트어 '삭시(sākṣī)'에서 왔는데, '증언·증인'이라는 뜻이에요.
자기가 직접 겪어 알게 된 진실을 옆 사람에게 증언하듯 건넨다는 느낌이죠.
어려운 경전 용어가 아니라, 누구나 알아듣는 생활 언어였어요.
첫째, 말이 쉬웠어요.
카비르는 학자들이 쓰던 어려운 문어가 아니라, 시장과 골목에서 오가는 보통 사람들의 입말로 시를 지었어요.
베 짜는 이웃, 물 긷는 아낙, 장사꾼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었죠.
둘째, 노동하는 사람이 성자가 됐다는 점이에요.
보통은 글 배운 브라만 사제나 부유한 사람이 종교의 중심이었는데, 카비르는 가난한 직조공의 손끝에서 나온 말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드문 경우예요.
셋째, 그래서 기록이 늦었어요.
입으로만 전해지다 보니, 카비르의 시는 15세기에 지어졌지만 17세기에야 처음으로 『비자크(Bijak)』라는 책으로 묶여 글로 적혔어요.
약 200년 동안 입에서 입으로 옮겨진 거예요.
문제는 그 사이에 생겨요.
전화 놀이를 해 본 적 있죠?
한 사람이 귓속말로 전한 문장이 여러 사람을 거치면 엉뚱하게 바뀌잖아요.
카비르의 시도 오래 구전되는 동안 조금씩 바뀌고, 빠지고, 다른 사람의 말이 끼어들기도 했다고 학자들은 봐요.
그래서 오늘날 "이게 진짜 카비르가 지은 시가 맞나?" 하는 판본 문제가 늘 따라다녀요.
카비르를 한마디로 그리면, '베틀 앞의 시인'이에요.
글을 배운 학자가 아니라 가난한 직조공으로 자랐고, 실을 엮듯 말을 엮어 입으로 시를 지었어요.
그 시들은 '바니(말씀)'라 불리며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약 200년간 전해지다 17세기에야 책이 됐고, 그 긴 구전 탓에 어디까지가 진짜 그의 말인지는 지금도 학자들이 따지고 있어요.
어려운 경전이 아니라 손끝의 노동과 생활의 입말에서 나온 시라는 점, 그것이 '직조공 시인' 카비르를 기억하는 핵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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