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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오마르 하이얌의 존재론적 허무주의는, 그에게 돌려진 4행시를 글자 그대로 읽었을 때 나오는 해석이에요. 존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근거도 정해진 뜻도 알 수 없고, 우리는 무(無)에서 잠깐 나타났다 사라진다는 시선이죠. 다만 그 시들이 정말 하이얌의 것인지, 이 해석이 맞는지는 학계에서 지금도 갈립니다.
11세기 페르시아 니샤푸르에 오마르 하이얌(1048~1131년)이라는 사람이 살았어요.
3차방정식을 원뿔곡선을 그려 기하학적으로 풀어낸 당대 최고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였죠.
그런데 오늘 이야기할 건 수학이 아니라, 그에게 돌려진 짧은 시들에서 사람들이 읽어낸 한 가지 세계관이에요.
'존재론적 허무주의'를 쉽게 풀면 이래요.
놀이공원에 눈 떠 보니 내가 들어와 있는데, 누가 왜 나를 여기 데려왔는지, 문 닫으면 어디로 가는지 아무도 안 알려 주는 상황이에요.
하이얌의 시를 글자 그대로 읽으면 삶이 딱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에서 잠깐 나타났다가 다시 무로 사라지고, 그 '왜'에는 답이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오늘 쥔 하루를 오늘 안에서 누리자는 태도가 자연스럽게 따라 나오죠.
그냥 "인생 덧없다" 하는 감상이라면 굳이 '존재론적'이라는 어려운 말을 붙이지 않았을 거예요.
존재론(ontology)은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엇이냐'를 캐묻는 철학의 한 갈래예요.
하이얌은 기분이 아니라 존재라는 것 자체에 단단한 바닥이 있는지를 물었기 때문에 '존재론적' 허무주의라고 불립니다.
실제로 그는 스스로를 이븐 시나(아비센나)의 제자로 여겼고, 세상을 뜨기 직전까지 아비센나의 『치유의 서』 중 형이상학 부분을 읽고 있었다고 해요.
그의 것으로 전해지는 철학 논고 6편 가운데 「존재에 관하여」(Fi'l-wujūd)는 존재와 보편자의 관계를, 다른 한 편은 자유의지와 결정론 문제를 다뤘어요.
모든 게 정해진 흐름대로 흘러가고 존재의 근거는 손에 잡히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도 미리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지죠.
여기서 꼭 짚어야 할 게 있어요.
'하이얌은 허무주의자'라는 그림은 학자마다 정반대로 갈립니다.
게다가 근거가 되는 시들이 진짜 그의 작품인지부터가 불확실해요.
하이얌에게 돌려진 4행시는 1,000편이 넘지만, 실제 그의 것으로 보는 시는 200편이 채 안 될 거라고 많은 학자가 봅니다.
한스 하인리히 셰이더는 1934년 확실한 근거가 없다며 "페르시아 문학사에서 그의 이름을 지워야 한다"고까지 했고, 에드워드 브라운은 1906년 "그가 4행시를 썼다는 건 확실하지만, 어느 시를 그가 썼다고 단정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평했어요.
해석은 크게 세 갈래로 나뉩니다.
| 입장 | 하이얌을 이렇게 본다 | 대표 인물 |
|---|---|---|
| 허무·회의 | 무에서 왔다 사라지는 삶, 뜻은 없다 | 크리스텐센, 셰이더, 보일 |
| 정통 신앙 | 임종까지 신앙을 지킨 경건한 무슬림 | 알바이하키 |
| 수피 신비 | 시는 신을 향한 상징이다 | 비에르가드, 이드리스 샤 |
한쪽 끝엔 사데크 헤다야트처럼 그를 젊어서부터 죽을 때까지 유물론자이자 염세주의자, 불가지론자로 본 사람들이 있어요.
반대쪽엔 그와 시기적으로 가장 가까운 전기를 남긴 알바이하키가 있는데, 그는 하이얌을 임종까지 신앙을 지킨 경건한 인물로 그렸죠.
철학사가 셰이흐 호세인 나스르는 진위도 불확실한 시 몇 편으로 그의 철학을 통째로 규정하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접근이라고 비판하면서, 그의 산문 저작들은 오히려 신의 존재를 분명히 인정하는 유신론적 글이라고 지적해요.
실제로 하이얌은 생전에 '현자들의 왕'(ملك الحکماء, 말리크 알후카마)이라 불렸습니다.
하이얌의 허무주의가 오래 읽히는 건, 답 없는 물음 앞에서 그가 도망치지 않았기 때문일 거예요.
존재의 바닥이 안 보인다고 절망만 하지는 않았거든요.
오히려 손에 쥔 오늘 하루, 지금 마주 앉은 사람, 지금 피어 있는 장미 쪽으로 눈을 돌렸죠.
제자 니자미 아루지는 하이얌이 "내 무덤은 북풍이 장미를 흩뿌리는 자리에 있을 것"이라 말했다고 전하는데, 실제로 그의 무덤은 니샤푸르의 한 정원, 꽃잎이 담을 넘어 떨어지는 자리에서 발견됐다고 해요.
근거를 끝내 못 찾은 존재라도 그 위로 꽃은 떨어진다는 이야기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이얌의 존재론적 허무주의는 '존재에는 미리 정해진 근거도 뜻도 없다'는 시선을 그의 4행시에서 읽어낸 해석이에요.
하지만 이건 여러 해석 중 하나일 뿐이고, 근거인 시들이 정말 그의 것인지, 그가 정말 허무주의자였는지는 지금도 결론이 나지 않았어요.
그러니 하이얌을 '허무주의 시인'이라 딱 잘라 부르기보다는, 답 없는 존재의 물음을 정직하게 마주한 한 사람으로 기억하는 편이 그에게 더 가까울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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