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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비교문명론(무카라나 알아드얀)은 남의 종교와 문화를 내 잣대로 재단하지 않고, 그들이 실제로 믿고 말하는 그대로 배워서 기록하는 태도예요. 그러려면 먼저 그 사람들의 언어를 배우고 원전을 직접 읽어야 하죠.
낯선 동네에 이사 갔다고 생각해 볼게요.
"저 집은 왜 저러지?" 하고 내 기준으로 흉보는 사람이 있고, "저기선 왜 저렇게 하는지" 직접 물어보고 그 집 말투까지 배우는 사람이 있어요.
비루니(973년경~1050년경)는 후자였어요.
비루니는 지금의 우즈베키스탄 지역에서 태어나 천문학·수학으로 이름난 학자였는데, 44세이던 1017년부터 가즈나 왕조의 인도 원정에 따라가 여러 해 인도에 머물렀어요.
이때 그는 인도의 종교와 관습을 관찰하고 기록해 『타흐키크 마 릴힌드』(흔히 『인도지』로 불려요)를 약 1030년에 완성했어요.
이렇게 여러 종교를 나란히 놓고 견주어 본 그의 태도를 아랍어로 무카라나 알아드얀(muqārana al-adyān), 곧 '종교 비교'라고 불러요.
조로아스터교·유대교·힌두교·그리스도교·불교·이슬람교를 두루 다룬 선구자로 평가받죠.
비루니가 살던 시대는 검이 부딪치고 도시가 불타던 정복의 시대였어요.
한 오리엔탈리스트는 그의 인도 연구서를 두고 아랍어로 이렇게 평했어요. "جزيرة سحرية هادئة محايدة"(고요하고 중립적인 마법 같은 섬).
전쟁 한복판에서 조용히, 어느 편도 들지 않고 연구한 자리라는 뜻이에요.
비결은 세 가지였어요.
첫째, 그는 산스크리트어를 직접 배웠어요.
둘째, 남이 요약한 소문이 아니라 인도 현자 파탄잘리의 『요가 수트라』 같은 원전을 스스로 읽고 번역까지 했어요.
셋째, "이건 틀렸다"고 먼저 판정하지 않고 그들이 믿는 내용을 그대로 옮겨 적었어요.
남의 언어를 배우고, 그 집단 속에 들어가 관찰하고, 원전을 대조하는 이 방식은 오늘날 문화를 연구하는 학자들이 하는 일과 많이 닮았어요.
비루니가 특히 세심했던 대목이 있어요.
그는 힌두교도를 뭉뚱그리지 않고 두 부류로 나눠 봤어요.
"인도 사람은 다 우상을 섬긴다"는 식의 단순한 소문을 그대로 믿지 않은 거예요.
| 구분 | 비루니가 본 믿음 |
|---|---|
| 교육받은 힌두교도 | 유일하고 영원하며 전능한 신을 믿고 우상숭배를 피함 |
| 교육받지 못한 힌두교도 | 여러 우상을 숭배함 |
같은 종교 안에도 배움에 따라 생각이 다르다는 걸 짚은 거죠.
이건 마치 "어느 나라 사람은 다 똑같다"는 말이 얼마나 엉성한지 아는 것과 같아요.
비루니 자신도 종교에서는 스스로를 수니파나 시아파로 나누지 않고 그냥 무슬림이라고만 밝혔고, 근거가 약한 전승은 천문학·역사 지식을 들어 따져 묻던 사람이었어요.
남을 볼 때도 이런 꼼꼼함을 그대로 적용한 셈이에요.
한 학자는 비루니가 특정 집단을 참여관찰하고 언어를 배우며 원전을 연구했고 객관성을 지켰다는 점에서 그를 '최초의 인류학자'라고 불러요.
하지만 다른 학자들은 전통적인 의미의 인류학자로 보기는 어렵다고 반박해요.
그러니 '비교종교학의 아버지' 같은 멋진 별명은 후대 사람들이 붙인 평가라는 걸 기억하면 좋아요.
비루니 본인이 "나는 비교종교학을 창시한다"고 선언한 건 아니에요.
앞의 '고요한 섬' 비유도 영어 자료는 자하우의 말로, 아랍어 자료는 무함마드 야신의 말로 달리 전해서, 누가 처음 한 말인지는 이 자료들만으로는 확정하기 어려워요.
별명과 사실을 구분해 두는 것, 그것도 비루니가 남긴 태도예요.
비교문명론(무카라나 알아드얀)은 남의 믿음을 내 잣대로 재지 않고, 그 언어를 배우고 원전을 읽어 있는 그대로 기록하는 태도예요.
비루니는 인도에서 산스크리트어를 익혀 『타흐키크 마 릴힌드』를 쓰고, 힌두교도조차 배움에 따라 다르다는 것까지 세밀히 나눠 봤어요.
'최초의 인류학자'라는 찬사는 후대의 평가일 뿐이지만, 편들지 않고 남을 기록하려던 그 마음가짐만은 오늘 우리가 낯선 문화를 대하는 자세로 그대로 가져올 만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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