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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종밀은 경전을 파고드는 '교(教)'와 말없이 앉아 마음을 들여다보는 '선(禪)'이 서로 다른 길이 아니라 같은 부처의 가르침을 가리킨다고 봤어요. 그래서 둘을 억지로 갈라 싸우지 말고 서로 맞춰 하나로 꿰자고 했는데, 이 생각을 교선일치라고 불러요.
요리를 배운다고 생각해 볼게요.
한 사람은 요리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으며 재료와 순서를 외워요.
다른 사람은 책 따위 덮고 그냥 부엌에 서서 직접 칼질부터 해 봐요.
이 둘이 만나면 꼭 다투죠.
"책도 안 읽고 무슨 요리냐" "머리로만 알면 뭐 하냐, 손이 알아야지."
그런데 두 사람이 결국 만들려는 건 똑같은 한 그릇의 밥이에요.
종밀(宗密, 780년~841년)이 살던 당나라 불교에도 똑같은 다툼이 있었어요.
경전을 깊이 파고드는 학승들이 있고, 경전을 내려놓고 앉아서 마음을 곧장 보는 선승들이 있었죠.
앞쪽이 '교(教)', 뒤쪽이 '선(禪)'이에요.
교는 요리책, 선은 부엌에서의 손맛에 가까워요.
종밀은 이 둘이 원래 한 부처에게서 나온 같은 가르침인데 괜히 갈라져 서로를 무시한다고 봤어요.
그래서 "교와 선은 어긋나지 않고 하나로 맞아떨어진다"고 주장했는데, 이게 바로 교선일치(教禪一致)예요.
종밀은 이 주장을 하기에 딱 맞는 사람이었어요.
그는 화엄종의 다섯 번째 조사이자, 동시에 선종 계보의 조사로도 꼽히거든요.
한마디로 요리책도 통째로 외우고 부엌에서 칼질도 하는 사람이었던 거죠.
그러니 어느 한쪽 편만 들 이유가 없었어요.
양쪽을 다 겪어 봤기에 둘이 결국 같은 곳을 가리킨다는 걸 몸으로 알았던 거예요.
그는 교학자와 선학자가 서로 헐뜯는 모습을 안타깝게 봤어요.
그래서 흩어져 있던 선종의 여러 문헌을 몽땅 모아 《선원제전집(禪源諸詮集)》이라는 100권짜리 큰 책을 엮으려 했어요.
선의 뿌리를 한자리에 정리해서 "봐라, 이 갈래들이 사실 교의 가르침과 다 통한다"는 걸 보여 주려던 거죠.
안타깝게도 본편은 사라지고, 그 서문 격인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만 오늘날 전해져요.
다행히 이 서문 안에 교선일치의 핵심 생각이 담겨 있어요.
종밀의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고 똑똑해요.
선을 뭉뚱그려 '하나'라고 하지 않고, 선을 세 갈래로 나눈 다음 각 갈래를 그에 딱 맞는 교의 가르침과 짝지어 준 거예요.
짝이 맞으면 둘은 남이 아니라 같은 짝꿍이 되는 거죠.
| 선의 세 갈래 | 무엇을 강조하나 | 짝이 되는 교의 가르침 |
|---|---|---|
| 息妄修心宗(식망수심종) | 허망한 마음을 그치고 참마음을 닦음 | 마음이 세상을 짓는다는 유식 계열 |
| 泯絕無寄宗(민절무기종) | 다 끊고 어디에도 기대지 않음 | 텅 빔을 말하는 공·중관 계열 |
| 直顯心性宗(직현심성종) | 마음의 본성을 곧바로 드러냄 | 참마음을 밝히는 불성 계열 |
이렇게 늘어놓고 보면, 선의 어떤 갈래도 경전 속 가르침과 따로 노는 게 아니라 나란히 대응해요.
종밀은 그중에서 마음의 본성을 곧장 보여 주는 直顯心性宗을 가장 높이 쳤어요.
요리책의 마지막 장과 부엌에서의 가장 무르익은 손맛이 만나는 자리라고 본 거죠.
한 가지 더, 종밀은 '깨달음의 체험 없는 수행은 참된 수행이 아니다'라고 했어요.
먼저 참마음을 한 번 확 알아채고(이건 교의 도움을 크게 받아요), 그다음 오래 쌓인 버릇을 천천히 닦아 내야(이건 선의 몫이에요) 한다고 봤어요.
이해와 수행이 손을 잡아야 한다는 이 생각도 교선일치와 한 몸이에요.
종밀의 이 생각은 중국에서 끝나지 않았어요.
고려의 보조국사 지눌(知訥, 1158년~1210년)이 종밀의 저작을 깊이 파고들어 해석서를 남겼고, 그 흐름이 한국 선불교에 크게 스며들었어요.
지금도 조계종 승려 교육과정에는 종밀의 《선원제전집도서》가 지눌의 해석서와 함께 교과목으로 들어가 있어요.
천 년도 더 지난 지금까지 후배 스님들이 그의 책으로 공부하는 셈이죠.
교선일치가 우리에게 남기는 메시지는 어렵지 않아요.
책으로 배우는 길과 몸으로 익히는 길 중 하나만 옳다고 우기지 말라는 거예요.
종밀은 다투는 두 편을 향해 "둘 다 같은 산을 오르는 다른 길일 뿐"이라고 말해 준 사람이었어요.
교선일치는 경전 공부인 교와 참선인 선이 결국 같은 부처의 가르침을 가리키니 서로 싸우지 말고 하나로 통하게 하자는 종밀의 주장이에요.
종밀은 화엄종 조사이자 선종 조사로 양쪽을 다 겪은 사람이었고, 선을 세 갈래로 나눠 각각을 교의 가르침과 짝지어 둘이 어긋나지 않음을 보여 줬어요.
요리책과 손맛이 한 그릇의 밥을 위한 것이듯, 배움과 닦음도 한 깨달음을 위한 두 손이에요.
이 생각이 지눌을 거쳐 한국 불교에까지 이어졌다는 것만 기억하면 충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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