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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일승사상은 부처가 되는 길이 사람마다 따로 있는 게 아니라 단 하나뿐이고, 법화경에 따르면 어떤 중생도 예외 없이 언젠가 반드시 부처가 된다는 가르침입니다.
버스 정류장을 떠올려 볼까요.
어떤 정류장에는 "이 버스는 특정 손님만 타세요"라고 적혀 있어요.
옛날 불교에도 그런 구분이 있었습니다.
열심히 가르침을 듣는 사람, 혼자 깨치는 사람, 남을 돕는 사람에게 각각 다른 길이 있다고 본 거예요.
이걸 세 가지 길, 곧 삼승(三乗)이라고 불렀습니다.
사이초(最澄, 767~822년)는 여기에 "아니요, 부처로 가는 버스는 단 한 대뿐입니다"라고 답했어요.
어떤 사람이든 결국 이 한 대에 함께 올라타 부처가 된다는 것, 이게 일승(一乗) 사상입니다.
여러 갈래처럼 보이던 길이 사실은 모두 하나의 큰 길로 이어진다는 이야기죠.
사이초가 이 생각의 뿌리로 삼은 경전이 바로 《법화경(法華経)》이에요.
법화경은 앞서 나온 세 가지 길이 사실은 사람들을 이끌기 위한 임시 안내판이었고, 진짜 목적지는 모두가 부처가 되는 하나의 길이라고 말합니다.
처음엔 쉬운 목표를 보여 주다가, 준비가 되면 진짜 목표를 알려 주는 선생님처럼요.
그래서 사이초의 핵심 문장은 이렇습니다.
一切衆生悉有仏性(일체중생실유불성), "모든 중생에게 불성이 있다"는 뜻이에요.
불성은 부처가 될 씨앗 같은 거예요.
씨앗이 이미 몸속에 심겨 있으니, 물을 주고 볕을 쬐면 누구나 꽃을 피운다는 거죠.
그는 이 믿음을 담아 《法華二十八品大意(법화이십팔품대의)》와 《法華秀句(법화수구)》 같은 글을 남겼습니다.
여기에 정면으로 반대한 사람이 있었어요.
유식학을 공부한 승려 도쿠이쓰(徳一)입니다.
그는 오성(五性)설을 믿었는데, 사람의 타고난 성질이 다섯 갈래로 나뉘어 있어서 그중 어떤 이(이찬티카)는 아무리 수행해도 끝내 부처가 될 수 없다고 봤어요.
태어날 때부터 정해진 등급이 있다는 셈이죠.
사이초는 이걸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세 가지 길(삼)과 하나의 길(일) 가운데 무엇이 임시 방편(권)이고 무엇이 진실(실)이냐, 이 다툼을 삼일권실(三一権実) 논쟁이라 불러요.
도쿠이쓰가 《불성초(佛性抄)》를 써서 공격하자, 사이초는 《조권실경(照権実鏡)》을 지어 맞받았습니다.
| 물음 | 도쿠이쓰 | 사이초 |
|---|---|---|
| 부처 될 길 | 타고난 다섯 성질로 갈린다 |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
| 진짜 가르침 | 세 가지 길(삼승) | 하나의 길(일승) |
| 못 되는 사람 | 있다 | 없다 |
사이초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갔습니다.
중국 천태종 스승 잔란(湛然)의 생각을 이어받아, 불성이 사람이나 동물 같은 마음 있는 존재뿐 아니라 산·강·돌처럼 마음 없는 것(무정물)에도 미친다고 봤어요.
이상하게 들리죠?
잔란은 마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구분 자체가 결국 사람이 그은 금에 지나지 않고, 모든 것이 하나의 참된 바탕(진여, 真如) 안에 담겨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 생각을 진여수연(真如随縁)이라 하고, 그의 책 《금강비(金剛錍)》에 담겨 있어요.
바다에서 보면 이 물결 저 물결이 결국 같은 바닷물인 것과 비슷합니다.
이 넓은 시야는 훗날 일본 천태 불교의 본각사상(本覚思想)으로 이어졌습니다.
사이초의 일승사상은 한 문장으로 줄이면 "예외 없이 누구나 부처가 된다"입니다.
그 근거는 법화경이었고, 핵심은 모든 중생에게 부처의 씨앗이 있다는 一切衆生悉有仏性이었어요.
그래서 그는 타고난 등급을 나눈 도쿠이쓰와 삼일권실 논쟁을 벌였고, 씨앗의 범위를 풀과 나무, 강돌까지 넓혔습니다.
사람을 미리 갈라 두지 않고 모두를 같은 버스에 태우려 한 마음, 그게 일승사상이 오늘도 따뜻하게 읽히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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