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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사이초는 밀교 경전을 빌려 읽으며 공부하려 했지만, 구카이는 밀교란 책이 아니라 스승 곁에서 몸으로 익히는 것이라며 경전을 빌려주지 않았어요. 이 한 번의 거절로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은 완전히 끊어졌어요.
먼저 이름부터 짚을게요.
'공해'는 한자 空海를 우리 식으로 읽은 이름이고, 일본에서는 '구카이'라고 불러요.
이 글에서는 구카이라고 부를게요.
사이초(最澄, 767년~822년)는 일본에 천태종을 연 승려예요.
그런데 오늘 이야기의 주인공은 사이초 혼자가 아니라, 한때 그와 나란히 걸었던 또 한 명의 천재 구카이예요.
두 사람은 804년, 같은 견당사 배를 타고 중국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어요.
마치 같은 학교에서 함께 유학 가는 두 우등생 같았죠.
사이초는 천태산에서 천태 교학을, 구카이는 밀교를 깊이 배우고 돌아왔어요.
귀국한 뒤에도 사이가 좋았어요.
오히려 사이초가 구카이에게 배우러 갔죠.
812년 겨울, 사이초는 제자들과 함께 다카오산사로 가서 구카이에게 관정(灌頂)을 받았어요.
관정은 밀교에 정식으로 입문하는 의식이에요.
나이도 지위도 사이초가 더 높았지만, 배울 게 있으면 기꺼이 학생이 됐던 거예요.
문제는 813년에 터졌어요.
사이초는 밀교를 더 알고 싶어서 구카이에게 《이취석경(理趣釋經)》이라는 경전을 빌려달라고 편지를 보냈어요.
시험공부 하려고 친구에게 참고서를 빌리는 것과 비슷하죠.
그런데 구카이는 딱 잘라 거절했어요.
이유는 이랬어요.
밀교는 문장을 읽어서 배우는 게 아니라 몸으로 실천해서 익히는 것이다.
자전거 타는 법을 책만 읽어서는 배울 수 없듯, 밀교도 스승 곁에서 직접 받아야 한다는 말이었죠.
사이초에게 경전은 배움으로 들어가는 문이었어요.
그는 중국에서 8개월 동안 460권이나 되는 경전을 손으로 베껴 올 만큼 책을 아끼는 사람이었거든요.
그런 사람에게 "책으로는 안 된다"는 대답은, 배움의 방식 자체를 부정당한 것이나 마찬가지였어요.
이 편지를 계기로 두 사람의 교류는 끊어지고 말았어요.
결별에는 또 하나의 아픈 사건이 있었어요.
바로 제자 문제예요.
813년 1월, 사이초는 아끼던 제자 다이한(泰範)을 비롯한 세 명을 구카이에게 보내 밀교를 배우게 했어요.
잠깐 배우고 히에이산으로 돌아오라는 뜻이었죠.
그런데 다이한은 돌아오지 않았어요.
사이초가 몇 번이나 "이제 그만 돌아오라"고 권했지만, 다이한은 구카이 곁에 남기를 택했어요.
아끼던 제자가 다른 스승에게 마음을 빼앗긴 거예요.
오래 가르친 학생이 다른 선생님이 더 좋다며 떠나버린 것과 같았죠.
이 무렵 사이초가 다카오산에서 수행 중이던 다이한에게 보낸 편지 《구격첩(久隔帖)》이 지금도 남아 있어요.
첫 구절은 이래요.
久隔清音,馳戀無極,傳承安和,且慰下情
(오랫동안 소식이 끊겨 그리움이 끝이 없었는데, 평안하시다는 소식을 전해 들으니 이제야 마음이 놓입니다.)
떠난 제자를 그리워하는 스승의 마음이 그대로 배어 있죠.
사실 경전 한 권, 제자 한 명은 겉으로 드러난 계기였을 뿐이에요.
더 깊은 곳에는 밀교를 바라보는 생각의 차이가 있었어요.
사이초의 핵심 생각은 '엔밋쓰잇치(円密一致)'였어요.
'원(円, 법화경의 가르침)과 밀(密, 밀교)은 뜻이 같다'는 말이에요.
두 가르침이 나란한 짝이지, 어느 하나가 위에 있지 않다는 거죠.
사이초는 구카이에게 보낸 편지에서도 두 가르침이 서로를 감싸 안으니 하나를 위에 둘 이유가 없다고 썼어요.
반면 구카이에게 밀교는 다른 모든 가르침보다 높은 자리에 있었어요.
그러니 "책으로 살짝 엿보는" 방식은 애초에 통할 수 없었던 거예요.
표로 정리하면 이래요.
| 구분 | 사이초 | 구카이 |
|---|---|---|
| 밀교의 자리 | 법화경과 대등한 짝 | 모든 가르침 중 최고 |
| 배우는 방법 | 경전을 읽어 넓힌다 | 스승 곁에서 몸으로 받는다 |
| 핵심 말 | 엔밋쓰잇치(円密一致) | 실천 수행이 먼저 |
이 차이는 끝내 좁혀지지 않았어요.
한때 같은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넌 두 사람은, 결국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됐어요.
사이초와 구카이의 결별은 어느 한 사람이 나빠서 생긴 일이 아니에요.
밀교를 '읽어서 넓히는 배움'으로 본 사이초와, '몸으로 받는 수행'으로 본 구카이의 생각이 정면으로 부딪힌 거예요.
813년, 경전 《이취석경》을 빌려달라는 부탁이 거절당하고, 아끼던 제자 다이한이 구카이 곁에 남으면서 두 사람의 인연은 끝났어요.
한 배를 타고 당나라로 건너갔던 두 사람은, 그 뒤로 다시는 함께 배우지 않았어요.
사이초는 813년부터 세상을 떠난 822년까지 9년 동안, 히에이산에서 자신만의 배움을 다시 세워 나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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