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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원효는 『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을 풀면서, 우리 마음이 본래 하나(一心, 일심)인데 그 하나가 참됨을 향한 문과 나고 사라짐의 문, 두 갈래로 나타난다고 봤어요. 두 문은 서로 다른 마음이 아니라 같은 한 마음의 두 얼굴이에요.
신라의 승려 원효(元曉, 617~686)는 붓을 참 많이 든 사람이에요.
자료에 따라 여든여 부에서 백여 부까지 헤아리는데, 그 가운데 그가 특히 오래 붙든 책이 『대승기신론』이라는 짧은 논서예요.
얇지만 어려운 이 책에 원효는 주석서를 여러 종(자료에 따라 일곱 종 또는 아홉 종) 썼고, 그중 지금까지 전하는 것이 『대승기신론소(大乘起信論疏)』와 『대승기신론별기(大乘起信論別記)』 두 권이에요.
원효가 이 책에 매달린 이유는 단순해요.
사람 마음이 왜 이렇게 어지러운지, 그런데도 왜 우리는 깨달을 수 있는지를 이 한 권이 정면으로 다루거든요.
원효는 여기서 '일심(一心)'과 '이문(二門)'이라는 두 낱말을 해석의 뼈대로 삼았어요.
한마음과 두 개의 문.
이 네 글자만 잡으면 원효의 기신론 풀이가 거의 다 보여요.
집에 문이 두 개 있는 방을 떠올려 보세요.
하나는 조용한 정원으로 통하고, 하나는 시끌벅적한 시장으로 통해요.
문은 둘이지만 방은 하나죠.
원효가 본 마음이 딱 이래요.
원효는 하나인 마음이 두 개의 문으로 나타난다고 봤어요.
하나는 심진여문(心眞如門), 다른 하나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에요.
진여문은 맑고 변하지 않는 참된 성품 쪽으로 난 문이고, 생멸문은 물들고 흔들리며 원인과 결과에 따라 생겨났다 사라지는 일상의 마음 쪽으로 난 문이에요.
정원 문과 시장 문인 셈이죠.
| 두 개의 문 | 어느 쪽 마음일까 |
|---|---|
| 심진여문(心眞如門) | 맑고 변하지 않는 참된 성품 |
| 심생멸문(心生滅門) | 물들고 생겨났다 사라지는 일상의 마음 |
여기서 중요한 건, 이 두 문이 서로 다른 두 마음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시장 문으로 드나드는 나와 정원 문으로 드나드는 나가 다른 사람이 아니듯이요.
원효는 이렇게 얼핏 대립해 보이는 청정한 마음과 물든 마음을, 불교가 말하던 아뢰야식(阿賴耶識)과 불성(佛性) 개념까지 함께 엮어 '한마음의 두 측면'으로 종합했어요.
원효는 중국에서 쓰던 '체용(體用)'이라는 틀도 가져왔어요.
체(體)는 본바탕, 용(用)은 그 바탕이 하는 일이에요.
바닷물을 떠올리면 쉬워요.
물이라는 본바탕이 체라면, 그 물이 만들어 내는 파도 하나하나가 용이에요.
원효는 궁극의 참된 성품, 곧 한마음을 체로 놓고, 우리가 보고 겪는 온갖 현상 세계를 용으로 놓았어요.
그러고는 이 둘이 둘이 아니라고 못 박았어요.
파도를 아무리 걷어내도 그 안에서 물 아닌 것을 찾을 수 없듯, 시끄러운 일상의 마음을 떠나 따로 참된 마음이 어디 숨어 있는 게 아니라는 거예요.
바로 이 지점이 원효 기신론 해석의 매력이에요.
저 멀리 있는 깨달음을 좇으라 하지 않고, 지금 흔들리는 이 마음이 곧 참된 마음의 다른 얼굴이라고 말해 주니까요.
그럼 우리는 아직 못 깨달은 걸까요?
원효의 대답이 재미있어요.
그는 본각(本覺), 곧 '본래 갖춘 깨달음'이 이미 모든 사람 마음속에 들어 있다고 봤어요.
방에 불이 이미 켜져 있는데 두꺼운 커튼이 빛을 가리고 있는 모습을 그려 보세요.
전등을 새로 사 올 필요는 없어요.
커튼만 걷으면 되죠.
원효에게 수행이란 없던 깨달음을 만들어 내는 일이 아니라, 이미 있는 본각을 실현해 내는 일이에요.
무명(無明), 곧 어리석음의 커튼을 한 겹씩 걷어 내며 원래 있던 깨달음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원효의 기신론 풀이는 사람을 다그치지 않아요.
너는 텅 빈 그릇이니 처음부터 채우라고 하지 않고, 네 안에 이미 빛이 있으니 가린 것만 치우면 된다고 말해요.
어려운 논서를 붙들면서도 원효가 끝내 하려던 말은 이렇게 따뜻했어요.
원효의 기신론 해석은 딱 두 낱말로 기억하면 돼요.
한마음(一心)과 두 문(二門)이에요.
마음은 본래 하나인데, 맑은 성품으로 난 심진여문과 흔들리는 일상으로 난 심생멸문, 두 얼굴로 나타나요.
본바탕(體)과 그 작용(用)이 바닷물과 파도처럼 둘이 아니고, 깨달음(本覺)은 저 멀리가 아니라 이미 내 마음 안에 켜져 있어요.
지금 흔들리는 이 마음을 떠나 따로 참된 마음을 찾을 필요가 없다는 것, 그것이 『대승기신론소』와 『대승기신론별기』에 남긴 원효의 핵심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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