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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화쟁(和諍)은 서로 다른 불교 종파의 주장이 부딪히는 까닭이 진리 자체가 달라서가 아니라 '같다·다르다' '옳다·그르다'는 말에 집착하기 때문임을 밝혀, 그 주장들을 하나의 진리로 모으려 한 원효의 사상이에요. 다툼을 이기는 게 아니라 화해시키는 길이지요.
한 강론 자리에서 원효(617년부터 686년까지 산 신라의 승려)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요.
"昔日採百椽時,雖不預會;今朝橫一棟處,唯我獨能(예전에 백 개의 서까래를 고를 때는 그 모임에 끼지 못했지만, 오늘 하나의 대들보를 놓는 이 자리에서는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서까래는 여럿이 다투듯 늘어놓지만, 그 위를 가로지르는 대들보는 하나예요.
흩어진 주장들을 한데 얹는 '대들보' 같은 생각, 그게 바로 화쟁이에요.
화쟁의 화(和)는 화해, 쟁(諍)은 다툼이에요.
말 그대로 '다툼을 화해시킴'이지요.
원효는 이 생각을 『십문화쟁론(十門和諍論)』이라는 책에 집약했어요.
훗날 고려 숙종 6년(1101년)에 나라에서 그에게 '화쟁국사'라는 시호를 내렸을 만큼, 화쟁은 원효를 대표하는 이름이 되었답니다.
원효가 살던 시대의 불교에는 종파가 여럿이었어요.
저마다 "우리 경전이 옳다" "우리 해석이 최고다" 하며 부딪혔지요.
마치 산 정상으로 오르는 길이 동쪽 길, 서쪽 길, 계곡 길 여럿인데, 저마다 자기 길만 진짜라고 우기는 것과 비슷했어요.
원효는 이 다툼의 뿌리를 콕 짚었어요.
대립은 진리가 정말 둘로 갈라져서가 아니라, '같다·다르다', '옳다·그르다' 같은 말의 습관에 집착해서 생긴다는 거예요.
예를 들어 누군가 컵을 두고 "반이나 남았다"고 하고 다른 사람은 "반밖에 없다"고 하면 말은 부딪히지만, 컵 속 물의 양은 똑같잖아요.
원효가 보기에 종파의 다툼도 이런 말버릇의 싸움이었어요.
말이라는 관습에 매달리는 순간 하나였던 진리가 조각조각 갈라져 보이는 거예요.
원효의 해법은 '한 맛(一味)'이에요.
『열반경종요』에서 그는 이렇게 적었어요.
"統眾典之部分,歸萬流之一味(뭇 경전의 부분적인 면을 통합하여 온갖 물줄기를 한 맛의 진리 바다로 돌아가게 한다)."
낙동강 물도 한강 물도 다른 강에서 흘러왔지만, 바다에 이르면 모두 똑같은 짠맛이 되지요.
겉으로는 서로 다른 가르침들도 그 근원으로 돌아가면 결국 한 맛이라는 거예요.
그래서 원효의 방식은 어느 한쪽 편을 들어 다른 쪽을 꺾는 게 아니었어요.
양쪽 주장이 각각 어느 자리에서 옳은지를 짚어 주고, 더 큰 자리에서 둘을 함께 끌어안았어요.
이렇게 서로 막힌 주장을 통하게 트는 것을 회통(會通)이라고 불러요.
이긴 자와 진 자를 가르는 게 아니라, 둘 다 살려서 더 넓은 자리로 데려가는 화해였지요.
원효 이전에도 여러 가르침을 정리하려는 시도는 있었어요.
중국의 지의(智顗) 같은 이들은 경전에 등급을 매겨 "이건 낮은 가르침, 저건 높은 가르침" 하고 줄을 세웠는데, 이를 교판(判敎)이라고 해요.
원효는 이 줄 세우기를 비판했어요.
등급을 매기는 순간 또 다른 다툼이 생기니까요.
대신 원효는 여러 가르침이 위아래 없이 서로 걸림 없이 이어진 하나의 전체를 이룬다고 봤어요.
이렇게 막힘없이 통하는 불교라는 뜻으로 스스로의 사상을 통불교(通佛敎)라 불렀지요.
| 구분 | 교판식 정리 | 원효의 화쟁·통불교 |
|---|---|---|
| 태도 | 가르침에 높낮이 등급을 매김 | 높낮이 없이 하나로 통함 |
| 다툼을 대하는 법 | 옳은 쪽을 가려 세움 | 양쪽을 다 살려 회통함 |
| 비유 | 계단처럼 줄 세우기 | 여러 강물이 한 바다로 |
원효는 이 화쟁의 힘으로 여러 종파의 다른 학설을 아울렀고, 그 공로로 해동종(海東宗)을 세운 '해동종주'라는 평가까지 받았어요.
화쟁은 '다툼을 화해시킴'이에요.
원효는 종파끼리의 대립이 진리가 갈라져서가 아니라 '같다·다르다', '옳다·그르다'는 말에 집착해 생긴 착각임을 짚었어요.
그래서 어느 한쪽을 이기게 하는 대신, 온갖 물줄기를 '한 맛(一味)'의 바다로 되돌리듯 서로 막힌 주장을 통하게 트는 회통의 길을 택했지요.
가르침에 등급을 매기지 않고 하나로 아우른 이 태도가 바로 통불교예요.
다툴 때 누가 옳은지를 먼저 따지기보다 우리가 같은 말에 서로 다르게 매달리고 있는 건 아닌지 살피는 것, 그게 천사백 년 전 원효가 건넨 화해의 지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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