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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어떤 근거가 결론을 제대로 증명하려면 세 가지 조건을 한꺼번에 갖춰야 해요. 그 표시가 문제의 대상에 실제로 있고, 결론이 성립하는 자리엔 늘 따라오고, 결론이 없는 자리엔 결코 나타나지 않아야 하지요. 셋 중 하나라도 빠지면 그 근거는 증명이 되지 못해요.
다르마키르티(法稱)는 6, 7세기경 인도에서 활동한 불교 철학자예요.
앞선 학자 디그나가(진나)가 다듬은 논리학을 이어받아 더 엄밀하게 발전시킨 사람으로 알려져 있어요.
그가 특히 공들인 주제 하나가 바로 삼상인(三相因, trairūpya)이에요.
'삼상인'은 말 그대로 '세(三) 가지 모습(相)을 갖춘 근거(因)'라는 뜻이에요.
우리가 "저건 이래서 저래"라고 이유를 댈 때, 그 이유가 아무렇게나 갖다 붙인 게 아니라 진짜로 결론을 떠받치려면 어떤 자격을 갖춰야 할까요?
다르마키르티는 그 자격이 정확히 세 가지라고 못 박았어요.
이 세 조건을 모두 통과한 근거만 참된 증거로 인정한 거예요.
인도 논리학에서 즐겨 든 예가 있어요.
"저 산에 불이 났다. 왜냐하면 연기가 피어오르니까."
여기서 증명하려는 결론은 '불'이고, 그 근거로 내민 표시는 '연기'예요.
연기라는 단서 하나로 보이지 않는 불을 알아맞히는 거지요.
그런데 연기가 정말 불의 증거가 되려면 따져야 할 게 있어요.
첫째, 그 산에 실제로 연기가 있어야 해요.
다른 산 이야기를 해선 안 되지요.
둘째, 부엌이든 모닥불이든 '불이 있는 곳'에는 늘 연기가 따라와야 해요.
셋째, 반대로 잔잔한 호수처럼 '불이 없는 곳'에는 연기가 절대 없어야 해요.
이 셋이 다 맞아떨어질 때에야 "연기가 있으니 불이 있다"가 흔들림 없는 추론이 돼요.
만약 셋째 조건이 무너지면 어떻게 될까요?
불도 없이 연기처럼 보이는 게 피어오르는 곳이 있다면, 연기는 더는 불의 확실한 표시가 못 돼요.
그래서 다르마키르티는 근거가 결론과 어긋나는 자리에는 결코 나타나지 않아야 한다는 점을 특히 힘주어 밝혔어요.
세 조건을 연기와 불 예로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정리돼요.
| 조건 | 뜻 | 연기와 불 예 |
|---|---|---|
| 첫째 | 근거가 문제의 대상에 실제로 있다 | 저 산에 연기가 있다 |
| 둘째 | 결론이 있는 곳엔 근거도 늘 있다 | 불 있는 부엌엔 연기가 있다 |
| 셋째 | 결론이 없는 곳엔 근거도 결코 없다 | 불 없는 호수엔 연기가 없다 |
둘째와 셋째는 동전의 양면 같아요.
하나는 '있는 쪽'을 확인하고, 다른 하나는 '없는 쪽'을 확인하지요.
두 방향에서 함께 조여야 근거와 결론이 빈틈없이 묶여요.
이렇게 근거와 결론이 늘 함께 가는 관계를 한자어로 편충(遍充)이라고 불러요.
삼상인은 "우연히 같이 있었다"와 "반드시 함께 간다"를 갈라 주는 잣대예요.
예를 들어 어제 비가 온 날 마침 까마귀가 울었다고 해서, 까마귀 울음이 비의 근거가 되진 않아요.
비 없이도 까마귀는 얼마든지 울 수 있으니 셋째 조건에서 걸리거든요.
다르마키르티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갔어요.
근거와 결론이 필연으로 묶이는 방식을 딱 두 가지로 한정했지요.
하나는 동일성이에요.
'참나무'는 그냥 '나무'라는 사실에 이미 들어 있으니, 참나무면 나무인 게 어긋날 수 없어요.
다른 하나는 인과성이에요.
연기와 불처럼, 원인이 있어야 결과가 생기는 관계지요.
이 두 갈래에 들지 않는 연결은 아무리 자주 같이 보여도 참된 근거로 쳐 주지 않았어요.
삼상인은 1300여 년 전 이야기지만, 우리가 매일 하는 추리와 똑 닮았어요.
젖은 우산을 보고 "밖에 비가 왔구나" 하고 짐작할 때, 우리는 은근히 세 조건을 확인하고 있어요.
저 우산이 실제로 젖었나, 비 오면 우산이 젖나, 비가 안 왔는데도 젖는 다른 이유는 없나.
마지막 물음을 빼먹으면 잘못 짚기 쉬워요.
물뿌리개에 젖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좋은 추측과 성급한 단정을 가르는 자리가 바로 여기예요.
다르마키르티는 그 경계선을 흐릿한 감이 아니라 세 개의 또렷한 조건으로 그어 놓았어요.
삼상인은 어떤 근거가 결론을 참되게 증명하기 위한 세 가지 자격이에요.
근거가 대상에 실제로 있어야 하고(첫째), 결론이 있는 곳엔 늘 따라와야 하며(둘째), 결론이 없는 곳엔 결코 없어야 해요(셋째).
셋째까지 통과해야 '우연히 같이 있음'이 아니라 '반드시 함께 감'이 되고, 다르마키르티는 그 필연을 동일성과 인과성 두 종류로만 인정했어요.
이유를 댈 때 이 세 칸을 채워 보는 습관, 그게 삼상인이 우리에게 남긴 오래된 셈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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