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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숭본식말(崇本息末)은 "근본을 높이고 곁가지를 가라앉힌다"는 뜻이에요. 세상의 온갖 일과 규칙(곁가지)은 하나의 근본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라, 그 근본만 제대로 붙들면 곁가지의 어지러움은 억지로 누르지 않아도 저절로 잦아든다는 이야기예요.
네 글자를 하나씩 뜯어볼게요.
숭(崇)은 '높이다', 본(本)은 '뿌리·근본', 식(息)은 '쉬게 하다·가라앉히다', 말(末)은 '나뭇가지 끝·곁가지'예요.
이어 붙이면 "근본을 높이고 곁가지를 가라앉힌다"가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건, 곁가지를 없애 버리자는 말이 아니라는 점이에요.
곁가지가 어지러운 까닭은 뿌리를 놓쳤기 때문이라고 본 거죠.
그러니 뿌리만 바로 세우면 잔가지와 잎은 알아서 제자리를 찾는다는 이야기예요.
문제를 하나하나 붙잡고 씨름하는 대신, 그 문제들이 흘러나온 자리로 거슬러 올라가자는 태도랍니다.
왕필(王弼, 226~249년)은 삼국시대 위나라 사람으로, 스물 남짓한 젊은 나이에 노자 『도덕경』과 『주역』에 주석을 달아 큰 영향을 남긴 철학자예요.
세상을 떠난 나이는 자료마다 스물셋, 스물넷으로 조금 갈려서 딱 하나로 말하기는 어려워요.
왕필이 살던 때는 나라가 어지럽고, 사람들은 세상을 다스리겠다며 규칙과 이름과 제도를 자꾸만 늘려 갔어요.
그런데 규칙을 더할수록 세상은 더 복잡해지기만 했죠.
왕필은 여기서 방향을 반대로 틀어요.
"곁가지(규칙)를 더 만들지 말고, 그것들이 갈라져 나온 근본으로 돌아가자."
이 생각을 네 글자로 압축한 게 바로 숭본식말이에요.
왕필에게 근본과 곁가지는 이렇게 나뉘어요.
| 구분 | 뜻 | 예 |
|---|---|---|
| 본(本) | 만물이 흘러나온 근본 자리 | 도(道)·무(無) |
| 말(末) | 근본에서 갈라진 구체적인 것들 | 온갖 규칙·이름·제도·현상 |
왕필은 눈에 보이는 모든 것(有)이 눈에 보이지 않는 근본에서 나온다고 보았어요.
그 근본을 그는 '무(無)'라고 불렀고요.
여기서 무는 '아무것도 없음'이 아니라, 어떤 형태로도 고정되지 않아서 오히려 모든 것을 낳을 수 있는 바탕에 가까워요.
그래서 곁가지인 규칙 하나하나를 붙잡기보다, 그 모두를 낳은 근본을 높이는 편이 낫다고 본 거예요.
마당에 나무 한 그루가 있다고 해볼게요.
잎이 노랗게 시들기 시작하면, 시든 잎마다 붙어서 물을 뿌리고 닦아 줄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잎이 수백 장이면 감당이 안 되죠.
진짜 해야 할 일은 뿌리에 물을 주는 거예요.
뿌리가 튼튼해지면 잎은 저절로 살아나니까요.
잎 한 장 한 장이 곁가지(말)라면, 뿌리가 근본(본)인 셈이에요.
두더지 잡기 게임을 떠올려도 좋아요.
여기 튀어나온 두더지를 때리면 저기서 또 튀어나오죠.
두더지 하나하나를 쫓는 건 곁가지만 붙잡는 일이에요.
숭본식말은 "두더지가 왜 계속 나오는지", 그 기계의 작동 원리(근본)를 보라고 말하는 셈이에요.
숭본식말을 "곁가지는 다 쓸모없으니 버려라"로 읽으면 오해예요.
식(息)은 '없애다'가 아니라 '가라앉히다·쉬게 하다'에 가까워요.
곁가지도 뿌리 덕분에 살아 있는 것이라, 뿌리만 잘 지키면 곁가지는 시끄럽게 날뛰지 않고 제 몫대로 잔잔해진다는 뜻이거든요.
또 하나, 이 말은 규칙이나 노력을 다 그만두라는 게으름의 변명이 아니에요.
오히려 어디에 힘을 쏟아야 하는지 순서를 가리는 지혜에 가까워요.
눈앞의 증상마다 매달려 지치지 말고, 그 모두를 움직이는 하나의 근본을 먼저 붙들라는 거죠.
숭본식말은 삶의 우선순위를 정하는 태도로 읽을 수 있어요.
방이 어질러졌을 때 물건을 하나씩 치우는 것도 방법이지만, '왜 자꾸 어질러지는가' 하는 생활 습관(근본)을 바꾸면 방은 저절로 덜 어지러워지죠.
할 일이 백 가지로 늘어날 때도, 그 일들이 결국 무엇을 위한 것인지 근본 목적을 다시 세우면 곁가지 같은 일들은 자연히 정리돼요.
문제를 문제마다 쫓지 말고, 그것들이 흘러나온 한 자리를 먼저 바로 세우기.
천팔백 년 전 젊은 철학자가 남긴 이 생각은 지금 우리의 복잡한 하루에도 그대로 얹혀요.
숭본식말(崇本息末)은 '근본을 높이고 곁가지를 가라앉힌다'는 왕필의 네 글자예요.
곁가지인 온갖 규칙과 현상은 하나의 근본에서 갈라져 나온 것이니, 근본을 바로 세우면 곁가지의 어지러움은 억지로 다스리지 않아도 잦아든다는 뜻이죠.
시든 잎마다 물을 주는 대신 뿌리에 물을 주는 태도, 증상마다 쫓기보다 원인을 붙드는 순서 감각으로 기억하면 오래 남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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