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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왕필은 주역의 괘 그림(象)과 그것을 풀이한 말(言)을, 그 자체로 붙들 대상이 아니라 진짜 뜻(意)에 닿기 위한 도구로 봤어요. 그래서 말과 상은 뜻을 전하고 나면 제 역할을 다한다고 본 거예요.
친구에게 길을 알려 준다고 해 볼게요.
종이에 지도를 슥슥 그려 주고 "여기서 오른쪽으로" 하고 말도 덧붙이죠.
그런데 친구가 정말 원하는 건 지도도 아니고 그 말도 아니에요.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죠.
지도와 설명은 거기 닿게 해 주는 도구일 뿐이고요.
왕필(王弼, 226년~249년)의 언상의론(言象意論)이 바로 이 이야기예요.
그는 위진 시대의 젊은 천재로 스물세 살 무렵에 세상을 떠났지만, 노자 『도덕경』과 『주역』에 붙인 주석으로 뒷사람에게 큰 영향을 남겼어요.
언상의론에서 '언(言)'은 말, '상(象)'은 그림이나 상징, '의(意)'는 진짜 전하려는 뜻이에요.
왕필은 이 셋의 관계를 정리하면서, 셋 중에 뜻(意)이 가장 중요하고 말과 상은 그 뜻에 닿기 위한 수단이라고 못 박았어요.
지도를 아무리 예쁘게 그려도 목적지에 못 가면 소용없듯이요.
이 이야기는 왕필이 『주역(周易)』을 풀이하면서 나왔어요.
주역은 원래 점을 치는 책이에요.
막대기를 늘어놓은 것 같은 여섯 줄짜리 무늬(괘, 卦) 예순네 개가 있고, 그 무늬마다 짧은 풀이글이 붙어 있죠.
이 무늬가 바로 '상(象)', 곧 그림이자 상징이에요.
그런데 왕필보다 앞선 한나라 학자들은 이 무늬와 숫자 자체에 지나치게 매달렸어요.
괘 하나하나를 별자리며 계절이며 온갖 것에 끼워 맞추느라, 정작 이 책이 무슨 이치를 말하려 했는지는 흐려졌지요.
지도 위 도로 이름을 몽땅 외우면서 정작 목적지는 잊어버린 셈이에요.
왕필은 이걸 뒤집었어요.
"무늬는 뜻을 담으려고 세운 것일 뿐, 무늬가 목적이 아니다"라고요.
이 태도가 언상의론의 출발점이에요.
왕필은 셋을 사슬처럼 이어서 봤어요.
뜻을 드러내려고 상(그림)을 세우고, 그 상을 알아보게 하려고 언(말)을 붙인다는 거예요.
그러니 읽는 사람은 거꾸로 따라가면 돼요.
말을 실마리 삼아 그림을 보고, 그림을 실마리 삼아 뜻에 닿는 거죠.
| 요소 | 무엇인가 | 하는 일 |
|---|---|---|
| 의(意) | 진짜 전하려는 뜻 | 도착할 목적지 |
| 상(象) | 괘 그림·상징 | 뜻을 담아 보여 줌 |
| 언(言) | 풀이하는 말 | 그림을 밝혀 줌 |
여기서 왕필의 결론이 나와요.
그림은 뜻을 잡으라고 있는 것이니, 뜻만 잡으면 그림은 잊어도 된다는 거예요.
말도 마찬가지고요.
목적지에 도착하고 나면 손에 쥐고 있던 지도를 계속 들여다볼 필요가 없듯이요.
뜻을 얻고 나서도 말과 그림에만 붙어 있으면, 오히려 뜻을 놓치게 된다고 봤어요.
(이 결론을 더 밀고 나간 '득의망언'은 다른 글에서 따로 다룰게요.)
가장 오해하기 쉬운 대목은 이거예요.
"그럼 말과 그림은 쓸모없다는 거야?" 아니에요.
사다리 없이는 지붕에 못 오르는 것처럼, 말과 상 없이는 애초에 뜻에 닿을 수가 없어요.
왕필은 말과 상을 버리라고 한 게 아니라, 거기에 눌러앉지 말라고 한 거예요.
다리를 건넜으면 강 위를 계속 서성이지 말고 건너편으로 걸어가라는 뜻이죠.
또 하나, 이 생각은 단순한 독서 요령이 아니에요.
왕필은 겉으로 드러난 말과 형상보다, 그 밑에 있는 근본을 더 중히 여긴 사람이에요.
언상의론도 결국 '겉의 도구'와 '속의 뜻'을 나누어 보고 속을 앞세우는 태도의 한 갈래예요.
그래서 그의 주역 읽는 법은 후대에 큰 반향을 일으켰어요.
당나라 공영달(孔穎達)은 "오직 위나라 왕보사(왕필)의 주석만이 고금에 홀로 으뜸이다(惟魏世王輔嗣之注,獨冠古今)"라고 극찬했지만, 송나라 주희(朱熹)는 "왕필의 주역 주석은 교묘하나 명료하지 못하다(王弼周易,巧而不明)"고 꼬집었지요.
평가가 이렇게 갈릴 만큼, 무늬와 숫자를 걷어 내고 뜻만 좇는 그의 방식은 파격이었던 거예요.
언상의론은 말(言)·그림(象)·뜻(意) 세 가지의 관계를 정리한 왕필의 생각이에요.
뜻이 목적지이고, 그림과 말은 거기 닿게 해 주는 지도와 설명 같은 도구라는 것이죠.
그래서 뜻만 제대로 잡으면 말과 그림은 잊어도 좋다고 봤어요.
다만 도구가 필요 없다는 뜻이 아니라, 도구에 갇히지 말라는 뜻이라는 점만 기억하면 돼요.
오늘 우리가 요약본이나 도표를 볼 때도 똑같아요.
그 형식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알맹이에 닿았는지를 물어보는 것, 그게 왕필이 천팔백 년 전에 남긴 읽기의 태도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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