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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팔불중도는 '생겨난다·사라진다' 같은 여덟 가지 극단적 규정을 모두 "그렇지 않다"고 부정해서, 어느 한쪽으로도 기울지 않는 중도(中道)를 드러내는 방법이에요. 세상을 딱 잘라 규정하려는 생각을 하나씩 걷어내면, 서로 기대어 생겨나는 관계만 남는다는 뜻이죠.
혹시 친구랑 "그거 있는 거야, 없는 거야?" 하고 딱 잘라 답을 정하고 싶었던 적 있나요?
팔불중도는 바로 그 "딱 잘라 정하기"를 여덟 번 연달아 거절하는 생각이에요.
먼저 사람부터 짧게 소개할게요.
나가르주나(산스크리트 Nāgārjuna, 한자로는 용수·龍樹)는 대략 150년부터 250년경까지 인도에서 활동한 대승불교 승려예요.
'중관학파'의 창시자로 여겨지고, 티베트에서는 '제2의 석가모니', 한국 조계종에서는 인도 제14대 조사로 모실 만큼 큰 스승이죠.
그가 남긴 대표작이 《중론(中論)》, 곧 '중도를 노래한 근본 게송'이라는 뜻의 책이에요.
팔불중도(八不中道)는 이 《중론》이 던지는 핵심을 여덟 개의 '아니다'로 압축한 거예요.
여덟 팔(八), 아닐 불(不), 가운데 중(中), 길 도(道).
풀면 '여덟 가지를 부정해서 드러내는 중도'라는 말이죠.
여덟 개라니 많아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 짝을 이룬 네 쌍이에요.
우리가 세상을 볼 때 습관처럼 붙이는 반대말들을 하나씩 지워 가는 거죠.
| 지우는 두 극단 | 팔불로 부르면 | 쉽게 풀면 |
|---|---|---|
| 생겨남 / 사라짐 | 불생불멸 | 새로 딱 생기지도, 완전히 없어지지도 않아요 |
| 늘 그대로 / 뚝 끊김 | 불상부단 | 영원히 고정돼 있지도, 갑자기 끊겨 버리지도 않아요 |
| 같음 / 다름 | 불일불이 | 완전히 하나도, 아주 남남도 아니에요 |
| 옴 / 감 | 불래불거 | 어디서 오지도, 어디로 가지도 않아요 |
촛불을 떠올려 볼까요.
불꽃이 "방금 새로 생겼다"고 하기엔 앞 순간의 심지와 기름에 기대어 이어졌고, "그대로 있다"고 하기엔 매 순간 다른 불꽃이에요.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도 마찬가지죠.
똑같다고 하면 자란 것을 설명 못 하고, 완전히 다르다고 하면 같은 사람이라 부를 수도 없어요.
그래서 나가르주나는 "이것이다"라고 못 박는 대신, 극단 여덟 개에 전부 '아니다'를 붙인 거예요.
그냥 "있다"고 하면 편할 텐데, 왜 굳이 부정만 할까요?
두 극단이 다 함정이기 때문이에요.
"세상 만물이 진짜로 딱 있다"고 하면, 변하지 않는 알맹이를 가진 셈이 돼요.
그러면 아기가 어른으로 자랄 수도, 얼음이 물이 될 수도 없어요.
고정된 것은 변할 수 없으니까요.
반대로 "아무것도 없다"고 하면, 지금 눈앞의 세상도 괴로움도 다 헛것이 되어 아무 말도 못 하게 되죠.
이건 허무주의예요.
나가르주나가 보기엔 세상은 이 둘 사이에 있어요.
모든 것은 원인과 조건에 기대어 잠시 나타나는 관계일 뿐이라, '있다'라고 붙잡을 알맹이도 없고 '없다'고 지워 버릴 만큼 허깨비도 아니에요.
팔불은 이 양쪽 길을 다 막아, 남은 가운뎃길을 걷게 하는 여덟 개의 이정표인 셈이죠.
참고로 '중관(Madhyamaka)'이라는 학파 이름은 나가르주나가 직접 지은 게 아니라 6세기 학자 바비베카가 붙인 거예요.
그럼 여덟 번 다 부정하고 나면 뭐가 남을까요?
여기서 조심할 점이 있어요.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다"라고 하면, 사람들은 얼른 "아, 그럼 그 중간 어딘가에 답이 따로 있구나" 하고 또 붙잡으려 해요.
나가르주나는 그것마저 거절해요.
《중론》에는 이런 게송이 있어요.
非有亦非無,亦無非有無,此語亦不受,如是名中道。
풀이하면 "있음도 아니고 없음도 아니며, '있음과 없음이 아닌 것'도 아니다. 이 말조차 받아들이지 않으니, 이를 일러 중도라 한다"예요.
세 번째 문장이 핵심이에요.
'중도'라는 새로운 정답을 또 하나 만들어 손에 쥐는 순간, 그것도 또 하나의 극단이 되니 그 말까지 놓아 버리라는 거죠.
그래서 팔불중도는 '무엇이다'라고 채워 주는 답이 아니라, 우리가 세상에 자꾸 덧씌우는 규정을 벗겨 내는 '지우개'에 가까워요.
다 지우고 나면 텅 빈 무(無)가 아니라, 서로 기대어 생겨나는 세상이 있는 그대로 보인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에요.
팔불중도는 나가르주나가 《중론》에서 세운, 여덟 개의 '아니다'로 이루어진 생각의 길이에요.
생겨남과 사라짐, 늘 있음과 뚝 끊김, 같음과 다름, 옴과 감.
이 네 쌍의 극단을 모두 부정하는 이유는, 한쪽을 붙잡으면 변화도 관계도 설명할 수 없는 함정에 빠지기 때문이죠.
중요한 건 부정하고 남은 '중도'마저 새 정답으로 붙잡지 말라는 태도예요.
세상을 딱 잘라 규정하려는 마음을 내려놓으면, 서로 의지해 잠시 나타나는 모습이 그대로 보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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