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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절용(節用)은 나라와 사람들의 살림에 보탬이 안 되는 씀씀이를 줄이자는 것이고, 절장(節葬)은 지나치게 성대한 장례를 간소하게 하자는 것이에요. 둘 다 '이게 정말 백성한테 이로운가?'라는 하나의 잣대로 지출을 따져 묻는 생각입니다.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집안 행사에 돈은 잔뜩 쓰는데, 정작 그 돈이 가족한테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남 보기 좋으라고' 나가는 것 같은 느낌이요.
묵자(墨子)는 2400여 년 전에 바로 이 문제를 국가 차원에서 붙잡았어요.
절용(節用)은 '씀씀이를 절제한다', 절장(節葬)은 '장례를 절제한다'는 뜻입니다.
겸애와 비공을 말한 묵가의 창시자 묵자는 목수 출신답게 무척 검소했는데, 이 두 주장의 핵심은 딱 하나예요.
어떤 지출이든 그게 '國家百姓人民之利', 곧 나라와 백성의 이로움에 보탬이 되느냐를 따진다는 것.
보탬이 되면 쓰고, 겉치레일 뿐이면 줄입니다.
그게 절용과 절장이에요.
묵자는 젊을 때 유교를 배웠어요.
그런데 유가가 장례와 의례를 지나치게 성대하게 치러 백성의 생계와 생산을 해친다고 봤습니다.
상을 몇 년씩 치르며 일손을 놓고, 값비싼 부장품을 땅에 묻어버리면, 그 손해는 고스란히 살아 있는 사람들 몫이 되니까요.
묵자는 처방을 나라 형편에 맞췄어요.
《묵자·魯問》편에는 이런 원칙이 나옵니다.
'國家貧,則語之節葬、節用', 곧 '나라가 가난하면 절장과 절용을 말한다'는 거예요.
나라가 어지러우면 다른 걸 말하고, 침략이 문제면 또 다른 걸 말하지만, 살림이 쪼들리는 나라에는 씀씀이부터 손보라고 권한 겁니다.
낭비를 줄이는 것만으로도 없던 재물이 생기는 셈이니까요.
절용의 정신을 가장 잘 보여주는 말이 있어요.
묵자 자신의 생활을 묘사한 '量腹而食,度身而衣'입니다.
'배를 헤아려 먹고, 몸을 헤아려 입는다'는 뜻이에요.
배가 부를 만큼만 먹고, 몸을 가릴 만큼만 입는다는 거죠.
남들에게 과시하려고 더 차리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실제로 묵자와 제자들은 '短褐之衣, 藜藿之羹', 곧 거친 베옷을 입고 명아주와 콩잎으로 끓인 국을 먹으며 살았다고 전해져요.
요즘 말로 하면 화려한 외식 대신 소박한 집밥, 명품 대신 튼튼한 작업복인 셈이죠.
그렇다고 무조건 아끼는 구두쇠는 아니었어요.
묵자의 기준은 '기능'이에요.
옷은 추위를 막으면 되고, 밥은 배를 채우면 되고, 집은 비바람을 가리면 됩니다.
딱 그 쓸모까지는 아낌없이 쓰되, 그 위에 얹는 장식과 사치는 덜어낸다는 거예요.
쓸모없는 데 드는 힘을 아껴 정말 필요한 곳에 쓰자는, 아주 실용적인 태도입니다.
절장은 이 생각을 장례로 옮긴 거예요.
당시에는 신분이 높을수록 관을 여러 겹 짜고, 값진 물건을 잔뜩 묻고, 상복을 오래 입으며 일을 멈추는 게 효도이자 예의로 통했어요.
묵자는 여기에 물었습니다.
이 많은 지출이 정말 죽은 이에게 닿나요, 아니면 산 사람들만 가난해지나요?
묵자가 보기에 답은 분명했어요.
재물을 땅에 묻으면 그만큼 나라의 부(富)가 줄고, 오래 상을 치르며 일하지 않으면 그만큼 생산이 준다는 거죠.
그래서 장례는 죽은 이를 정성껏 보내되 살아 있는 사람들의 삶을 무너뜨리지 않는 선에서 간소하게 치르자고 했어요.
슬픔을 소홀히 하자는 게 아니라, 겉치레의 규모를 줄이자는 겁니다.
이 지점에서 묵자는 유가와 정면으로 갈라져요.
표로 비교하면 이렇습니다.
| 항목 | 유가의 성대한 장례 | 묵자의 절장 |
|---|---|---|
| 판단 기준 | 예(禮)와 효의 격식 | 백성의 이로움 |
| 부장품·규모 | 신분에 맞게 성대하게 | 필요한 만큼만 |
| 상 치르는 기간 | 여러 해까지 길게 | 삶을 해치지 않게 짧게 |
묵자의 이 생각은 오늘날 윤리학에서 말하는 '결과주의'의 아주 이른 형태로 평가받아요.
어떤 행동이 옳은지를 격식이나 전통이 아니라 '그 결과가 사람들에게 이로운가'로 따지는 방식이죠.
절용과 절장은 그 잣대를 지출과 장례에 그대로 들이댄 겁니다.
묵자가 왜 이렇게까지 했는지는 그의 삶으로 설명돼요.
'摩頂放踵,利天下,為之', 곧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다 닳더라도 천하에 이롭다면 그것을 행한다'는 자세로 살았거든요.
자기 몸을 아끼지 않으면서 백성의 살림을 아끼려 한 사람이니, 낭비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거예요.
결혼식·장례식에 남들 눈을 의식해 무리하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이 지출이 정말 누구에게 이로운가'라는 그의 질문은 여전히 따끔합니다.
절용과 절장은 어렵지 않아요.
씀씀이든 장례든 '이게 나라와 백성에게 이로운가'라는 하나의 질문으로 걸러내자는 겁니다.
묵자는 유가의 성대한 의례가 산 사람의 살림을 해친다고 보고, 배를 헤아려 먹고 몸을 헤아려 입듯 딱 쓸모까지만 쓰자고 했어요.
아끼는 것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겉치레를 덜어 정말 필요한 곳에 힘을 모으자는 실용의 철학.
이 잣대 하나만 기억하면 절용과 절장은 다 이해한 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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