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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겸애(兼愛)는 내 편과 남의 편을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똑같은 무게로 위하자는 묵자의 주장이에요. 남을 내 몸처럼 아끼면 서로 해치는 다툼의 뿌리가 사라진다고 봤기 때문이죠.
혹시 이런 경험 있으세요?
똑같은 잘못을 해도 친한 친구는 슬쩍 봐주고, 모르는 사람한테는 엄격해지는 일이요.
우리 마음은 대개 가까운 사람 쪽으로 기울죠.
그런데 지금부터 2400년쯤 전, 그 기울어짐 자체가 세상 모든 다툼의 원인이라고 딱 잘라 말한 사람이 있어요.
바로 묵자(墨子)예요.
묵자는 목수 출신에 성을 지켜내는 방어 전문가로 이름났던, 기원전 5세기 무렵의 사상가예요.
그가 평생 외친 핵심이 바로 겸애(兼愛)입니다.
'겸(兼)'은 '두루, 아울러'라는 뜻이고 '애(愛)'는 사랑이니, 겸애는 '두루 아울러 사랑함', 곧 차별 없는 사랑이에요.
내 가족이든 남의 가족이든, 내 나라 사람이든 이웃 나라 사람이든 똑같은 무게로 아끼자는 거죠.
묵자가 살던 시대는 나라끼리 쉴 새 없이 칼을 겨누던 난세였어요.
그는 이 모든 혼란의 뿌리를 '사랑을 차별하는 마음'에서 찾았어요.
내 것과 남의 것을 자꾸 나누니까, 내 이득을 위해 남을 해치게 된다는 거죠.
도둑이 남의 집을 터는 일이나, 큰 나라가 이웃 나라를 침략하는 일이나, 결국 '내 편만 사랑하는 마음'의 작고 큰 판본일 뿐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묵자의 판단 기준은 무척 실용적이었어요.
바로 利(이로움), 그중에서도 國家百姓人民之利, 곧 '나라와 백성 모두의 이로움'이었죠.
어떤 행동이 옳은지 따질 때 그는 늘 "이게 모두에게 이로운가?"를 물었어요.
서로 차별 없이 사랑하면 다들 이롭고, 편을 갈라 사랑하면 다들 손해라는 계산이었죠.
이 때문에 오늘날 학자들은 묵자를 세계에서 가장 이른 결과주의(행동의 결과로 옳고 그름을 따지는 입장) 사상가로 꼽기도 해요.
겸애를 또렷하게 이해하려면 같은 시대 유가(공자·맹자 쪽)의 사랑과 견줘 보면 좋아요.
유가는 사랑에 순서와 차등이 있다고 봤어요.
이걸 親有差, 즉 '친하고 먼 정도에 따라 사랑에 차이가 있다'고 해요.
부모를 남보다 더 사랑하는 게 자연스럽고 옳다는 거죠.
묵자는 바로 이 지점을 정면으로 반박했어요.
| 구분 | 유가의 사랑(親有差) | 묵자의 겸애(兼愛) |
|---|---|---|
| 사랑의 크기 | 가까운 사람일수록 크게 | 누구에게나 똑같이 |
| 출발점 | 내 부모, 내 가족 | 세상 모든 사람 |
| 근거 | 자연스러운 정(情) | 모두의 이로움(利) |
연못에 돌을 던지면 물결이 가운데는 세고 바깥으로 갈수록 옅어지죠.
유가의 사랑이 이 물결과 비슷해요.
반대로 묵자의 겸애는 수면을 통째로 평평하게 채운 저수지에 가깝죠.
어디를 떠도 물의 높이가 같은 거예요.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풀고 갈게요.
"그럼 겸애는 내 부모를 남처럼 대하라는 거야?"
실제로 맹자 같은 유가 학자들이 이렇게 날카롭게 비판했어요.
하지만 묵자 본인의 말을 보면 결이 좀 달라요.
묵자는 修身(자기 수양)편에서 '가까운 사람과 잘 지내지 못하면서 먼 사람을 끌어들이려 애써봐야 소용없다'고 했어요.
사랑의 실천은 가까운 데서부터 시작한다는 뜻이죠.
그러니 겸애는 "가족을 사랑하지 말라"가 아니라, "가족을 아끼는 그 마음을 남에게까지 넓혀라"에 훨씬 가까워요.
현대 학자들도 겸애의 실제 요구 수준은 흔히 알려진 것보다 온건하다고 봐요.
게다가 묵자는 말만 하지 않았어요.
摩頂放踵,利天下,為之, 곧 '정수리부터 발꿈치까지 다 닳더라도 천하에 이롭다면 그것을 행한다'는 자세로 검소하게 살았죠.
실제로 초나라가 송나라를 치려 하자 열흘을 걸어가 전쟁을 막아낸 일화가 유명해요.
겸애는 그에게 멋진 구호가 아니라 몸으로 밀어붙이는 실천이었던 거예요.
겸애는 지금도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져요.
얼굴 한 번 본 적 없는 먼 나라 아이의 굶주림을, 나는 내 이웃의 배고픔만큼 신경 쓰고 있을까요?
완벽히 똑같이 사랑하기는 어려워도, '내 편이라서 봐주고 남이라서 모른 척하는' 마음을 한 겹씩 벗겨 보자는 제안만큼은 여전히 살아 있어요.
편 가르기가 늘 시끄러운 시대라 더 그렇죠.
겸애(兼愛)는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똑같이 사랑하자는 묵자의 핵심 사상이에요.
그는 편을 가르는 사랑이 다툼과 전쟁의 뿌리라고 보고, '모두의 이로움(利)'을 기준 삼아 두루 사랑하기를 권했죠.
유가의 차등적 사랑(親有差)과 정면으로 갈라지지만, 가족을 버리라는 뜻은 아니에요.
가까운 사랑을 남에게까지 넓히자는 초대에 가깝고, 묵자는 이를 말이 아니라 발로 걸어가 증명한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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