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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비자는 사람의 본성이 착함이나 악함이 아니라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는 데 있다고 봤어요. 그래서 도덕적 감화로는 사람을 못 움직이고, 오직 이해득실을 건드리는 제도로만 다스릴 수 있다고 생각했지요.
전국시대 말기, 강대국 틈에서 쇠약해져 가던 한(韓)나라의 사상가 한비(韓非)는 사람을 참 냉정하게 봤어요.
그가 남긴 책 《한비자》를 관통하는 생각 하나가 있는데, 바로 "사람은 본래 자기 이익을 좇는 존재"라는 거예요.
친구 사이든 부모 자식 사이든, 겉으로는 따뜻한 정(情)처럼 보여도 속을 들여다보면 저마다 이득과 손해를 셈하고 있다고 본 거죠.
마트에서 포인트가 더 쌓이는 카드를 슬며시 꺼내 드는 우리 모습을 떠올리면 감이 와요.
한비는 이렇게 계산하는 마음이 나쁜 사람만의 예외가 아니라 사람의 기본값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그는 "착해지세요" 하고 설득하는 대신,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을 직접 건드리는 방식으로 사람을 움직이려 했지요.
'성악설(性惡說)'은 원래 한비의 스승으로 전해지는 순자(荀子)의 말이에요.
다만 이 사제 관계는 오래된 통설일 뿐 확정된 사실은 아니라고 봐요.
순자는 사람이 타고난 본성(性)을 그대로 두면 악(惡)한 쪽으로 흐르기 쉽고, 그래서 예의(禮)로 다듬어야 한다고 했어요.
한비는 스승의 이 출발점은 이어받되 결론을 틀었어요.
그에게 사람의 본성은 '악하다'기보다 '철저히 이기적이다'에 더 가까웠어요.
나쁜 마음을 먹어서가 아니라, 그냥 자기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저절로 몸이 움직인다는 거죠.
식당 주인이 손님에게 친절한 건 손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그래야 장사가 잘되기 때문이라는 식이에요.
한비는 이 이기심을 탓하지 않았어요.
오히려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이라고 인정하고, 그 성질을 그대로 이용해 나라를 다스리자고 한 거예요.
한비의 조국 한나라는 전국시대 내내 큰 나라들에 시달리며 무너져 가고 있었어요.
그는 예전처럼 어진 마음이나 옛 성군의 가르침에 기대는 방식으로는 이 위기를 넘길 수 없다고 판단했어요.
사람들이 알아서 착해지기를 기다리는 건 너무 느리고 불확실했으니까요.
그래서 한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보다, 누구에게나 똑같이 작동하는 이익과 손해에 눈을 돌렸어요.
상을 주면 달려들고 벌을 주면 피하는 이 단순한 성질이야말로 가장 믿을 만한 조종간이라고 본 거죠.
두 관점을 견줘 보면 이렇게 정리돼요.
| 관점 | 사람을 움직이는 힘 |
|---|---|
| 순자 | 예의와 교화로 타고난 본성을 다듬는다 |
| 한비 |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을 제도로 관리한다 |
한비에게 도덕은 몇몇 뛰어난 사람에게나 통하는 예외였고, 이익 계산은 만인에게 통하는 규칙이었어요.
이 인간관은 임금과 신하 사이에서 가장 날카롭게 드러나요.
한비는 신하가 임금을 진심으로 섬긴다고 순진하게 믿지 않았어요.
신하도 결국 자기 이익을 좇는 사람이니까요.
그래서 그는 이렇게 조언해요.
"君無見其所欲,君見其所欲,臣自將雕琢(군무견기소욕, 군견기소욕, 신자장조탁)."
군주는 자신이 원하는 바를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 군주가 원하는 바를 드러내면 신하들은 스스로 거기에 맞춰 꾸민다는 뜻이에요.
상사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면 그 앞에서만 열심히 일하는 척하는 사람이 생기잖아요.
임금이 속마음을 비치는 순간 신하들은 진짜 실력이 아니라 임금의 취향에 자신을 맞춰 버린다는 거예요.
한비는 임금에게 용의 비유도 들려줘요.
용은 길들이면 탈 수도 있지만 목 아래 거꾸로 난 비늘, 곧 역린(逆鱗)을 건드리면 반드시 사람을 죽인다고요.
사람은 저마다 이런 예민한 이해관계를 품고 있으니, 그 계산을 읽지 못하면 다스릴 수 없다고 본 거예요.
한비의 인간관은 날카롭지만 허점도 지적받아요.
베트남 학자 판응옥은 사람이 본래 이익만 좇는다는 전제 자체가 틀렸다고 봤어요.
재미있게도 한비 자신이 그 반례라는 거예요.
한비는 자기 이익만 챙겼다면 굳이 위험한 나라를 위해 목소리를 낼 필요가 없었는데도 그렇게 했으니까요.
한학자 채드 핸슨도 한비를 독창적 철학자라기보다, 자기중심적 현실주의자 특유의 냉소가 두드러진 논쟁가로 평가했어요.
한비자의 성악설적 인간관은 "사람은 본래 이익을 좇는다"는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그는 이 이기심을 없애야 할 죄가 아니라 다스림의 재료로 봤고, 그래서 마음의 감화가 아니라 이익과 손해라는 저울로 사람을 움직이려 했지요.
스승 순자가 본성을 예의로 다듬으려 한 것과 달리, 한비는 그 계산하는 성질을 그대로 인정하고 활용했어요.
다만 사람이 오직 이익만 좇는다는 전제는 한비 자신조차 온전히 지키지 못한 예외였다는 점도 함께 기억해 두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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