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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한비자는 유가가 요·순 같은 먼 옛날 성군을 본받자고 하지만, 그런 옛말과 도덕 타령으로는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는 나라를 지킬 수 없고, 누구에게나 똑같이 적용되는 법으로 다스려야 한다고 보았어요. 그의 유가 비판은 곧 "옛 성군 예찬을 걷어치우라"는 말이었지요.
한비(韓非)는 지금으로부터 약 2300년 전, 중국 전국시대 말기에 살았던 사상가예요.
그의 조국 한(韓)나라는 강대국들 사이에 끼여 계속 침략을 받으며 쪼그라들고 있었어요.
한비는 "이대로 옛날 방식만 붙들고 있다가는 나라가 망한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법으로 다스리자는 새 이념을 내놓았지요.
그런데 그 시대에 가장 목소리가 컸던 학파가 바로 유가였어요.
유가는 "옛 성군인 요(堯)임금과 순(舜)임금처럼 어질고 덕 있게 다스리면 나라가 저절로 잘 된다"고 가르쳤지요.
한비가 보기엔 이게 문제였어요.
불이 난 집 앞에서 "옛 어른들은 참 훌륭했지" 하고 이야기만 나누는 것과 같았거든요.
그의 유가 비판은 여기서 출발해요.
한비는 재미있는 이야기 하나로 유가를 콕 찔렀어요.
여러분도 아는 '모순(矛盾)'이라는 말의 출처예요.
楚人有鬻楯與矛者,譽之曰︰「吾楯之堅,物莫能陷也。」又譽其矛曰︰「吾矛之利,於物無不陷也。」 —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방패를 자랑하며 "내 방패는 하도 튼튼해 뭘로도 못 뚫는다" 하고, 창을 자랑하며 "내 창은 하도 날카로워 안 뚫는 게 없다"고 했어요. 그러자 누가 "그럼 그 창으로 그 방패를 찌르면?" 하고 묻자 대답을 못 했다는 이야기지요.
흔히 이건 그냥 논리 퀴즈로 알려져 있지만, 원래 맥락은 유가 비판이었어요.
유가는 요임금도 성군, 순임금도 성군이라며 둘 다 칭송했거든요.
한비는 이렇게 따졌어요.
요임금이 정말 완벽했다면 순임금이 고칠 게 없어야 하고, 순임금이 세상을 바로잡았다면 요임금 때가 완벽하진 않았던 거예요.
두 사람을 동시에 완벽한 성군이라 부르는 건, 뚫리지 않는 방패와 못 뚫는 게 없는 창을 나란히 파는 장사꾼과 똑같다는 거죠.
한비의 비판은 더 매서워져요.
그는 49편 〈오두(五蠹)〉에서 나라를 좀먹는 다섯 부류의 벌레(蠹)를 꼽는데, 그 첫째가 바로 유가 선비인 학자였어요.
책만 읽고 옛말을 읊는 사람들이 실제 농사나 전쟁에는 보탬이 안 되면서 나라의 힘을 갉아먹는다고 본 거예요.
그럼 나라는 무엇으로 가르쳐야 할까요?
한비는 이렇게 말해요.
明主之國,無書簡之文,以法為教;無先王之語,以吏為師。 — 밝은 군주의 나라에는 서책의 글이 없이 법으로써 가르침을 삼고, 옛 임금의 말이 없이 관리로써 스승을 삼는다.
쉽게 말하면 "낡은 위인전 대신 지금의 규칙을 가르치고, 옛날 이야기꾼 대신 실무자를 선생님으로 삼아라"예요.
유가가 그토록 떠받드는 선왕(先王)의 말씀을, 한비는 교실에서 아예 빼버리자고 한 셈이죠.
여기서 흔한 오해 하나를 풀어야 해요.
한비가 유가를 이렇게 몰아붙였으니 효(孝)나 충(忠) 같은 가치까지 몽땅 부정했으리라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학자 유리 파인즈(Yuri Pines)는 한비가 효의 '정치적 한계'를 비판한 것이지, 효와 충 그 자체의 가치를 완전히 부정한 건 아니라고 봐요.
게다가 한비는 유가의 큰 스승인 순자(荀子)에게서 배웠다는 이야기가 전해져요.
다만 이 사제관계는 확정된 사실이라기보다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온 주장으로 여겨져요.
어느 쪽이든 한비의 뿌리에는 유가가 얽혀 있었던 셈이에요.
그러니 그의 유가 비판은 유가를 통째로 미워한 게 아니라, "도덕은 개인의 몫이고 나라를 굴러가게 하는 건 법"이라며 역할을 갈라놓은 비판에 가까워요.
한비의 유가 비판은 2300년이 지난 지금도 곱씹을 거리를 줘요.
"좋은 사람이 윗자리에 있으면 다 잘 될 거야"라는 기대와, "누구에게나 똑같은 규칙이 있어야 조직이 굴러간다"는 생각은 지금도 부딪히거든요.
학교의 교칙, 회사의 규정을 떠올려 보면 한비의 목소리가 낯설지 않아요.
물론 한비도 완벽하진 않았어요.
후대 학자들은 사람이 오직 이익만 좇는다는 그의 전제 자체가 지나쳤다고 지적하기도 해요.
한비자의 유가 비판은 세 가지로 기억하면 좋아요.
첫째, 요·순 같은 옛 성군을 동시에 떠받드는 건 창과 방패처럼 앞뒤가 안 맞아요.
둘째, 책과 옛말만 읊는 유가 선비는 나라를 좀먹는 벌레이니, 나라는 옛 임금의 말 대신 법으로 가르쳐야 해요.
셋째, 그렇다고 효와 충 자체를 버리라는 건 아니고, 도덕과 통치의 역할을 갈라놓자는 뜻이었어요.
무너져 가는 나라를 지키려던 한 사상가의 절박한 현실론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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