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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순자는 욕망 자체를 나쁘게 보지 않았어요.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바라는 마음을 갖고 있으니 그걸 없앨 수도 없고, 대신 예(禮)라는 사회적 규칙과 마음의 힘으로 알맞게 조절하면 욕망도 삶을 지탱하는 힘이 된다고 보았습니다.
먹고 싶고, 갖고 싶고, 편하고 싶은 마음.
우리는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이런 마음을 갖고 태어나요.
순자(荀子)는 이걸 아주 솔직하게 인정한 사람이에요.
그는 성(性)을 "태어날 때부터 그러한 것"이라고 정의했는데, 욕망도 바로 그 타고난 것 중 하나예요.
순자의 생각을 한마디로 하면 이래요.
"욕망은 없앨 수 없다. 그러니 잘 조절하자."
배가 고픈 걸 억지로 안 고프게 만들 수는 없잖아요.
대신 언제, 얼마나, 어떻게 먹을지를 정하면 되지요.
순자에게 욕망의 조절이란 마음을 텅 비우고 감정을 지우는 게 아니라, 타고난 바람을 알맞은 자리에 놓아 주는 일이었어요.
순자는 유명한 말을 남겼어요.
人之性惡,其善者偽也.
"사람의 본성은 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人爲)다"라는 뜻이에요.
여기서 악(惡)은 서양에서 말하는 '사악함'이 아니라 '거칠다, 다듬어지지 않았다'에 가까워요.
학자들도 이걸 'bad(나쁘다)'나 'problematic(다루기 까다롭다)'로 옮기지요.
그러니까 순자가 본 인간은 '악당'이 아니라 '아직 다듬지 않은 원석'이에요.
욕망은 그 원석의 일부라서 부순다고 없어지지 않아요.
오히려 순자는 사람이 "완전히 좋아질 수 있다"고 믿었어요.
누구나 옛 성인 우(禹)임금처럼 될 수 있다고 했지요.
열쇠는 욕망을 뿌리 뽑는 게 아니라, 그것을 길들이고 방향을 잡아 주는 데 있었어요.
그가 말한 化性起僞, 즉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를 일으킨다"가 바로 이 다듬는 과정이에요.
그럼 무엇으로 욕망을 다듬을까요?
순자의 답은 예(禮)예요.
예를 학교의 시간표에 비유해 볼게요.
아이들은 저마다 놀고 싶고 쉬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시간표가 있으면 모두가 배우고 쉬고 놀 시간을 골고루 나눠 가질 수 있어요.
시간표는 놀고 싶은 마음을 벌하는 게 아니라, 그 마음이 서로 부딪치지 않게 자리를 정해 주는 거예요.
순자는 예가 그냥 아무렇게나 만든 관습이 아니라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것"(人之所以爲人者)에 맞기 때문에 옳다고 보았어요.
사람은 자연스럽게 어른과 아이, 남과 여 같은 분별(辨)을 짓는데, 예는 그 분별을 확인해 주면서 서로의 욕망이 충돌하지 않게 질서를 잡아 준다는 거예요.
욕망을 억누르는 벽이 아니라, 욕망이 흐를 물길을 내주는 셈이지요.
| 흔한 오해 | 순자의 생각 |
|---|---|
| 욕망은 나쁘니 없애야 한다 | 욕망은 타고난 것이라 없앨 수 없다 |
| 예는 자유를 막는 규칙이다 | 예는 욕망이 다투지 않게 자리를 나눈다 |
| 사람은 원래 못 고친다 | 사람은 얼마든지 좋아질 수 있다 |
조절에는 조절하는 주체가 필요해요.
순자는 그 역할을 마음(心)에 맡겼어요.
그는 마음에 세 가지 힘이 있다고 했는데, 虛一而靜 즉 비움(虛)과 하나됨(一)과 고요함(靜)이에요.
마음이 편견으로 가득 차 있지 않고(虛), 한 곳에 집중하며(一), 흔들리지 않고 고요할 때(靜) 상황을 바르게 볼 수 있다는 뜻이에요.
순자는 눈·귀·입·코·몸 같은 감각 기관을 천관(天官)이라 불렀어요.
이 기관들은 각자 보고 듣고 맛볼 뿐이에요.
그걸 통솔하는 건 오직 마음이지요.
마치 오케스트라에서 악기 하나하나는 소리를 내지만, 지휘자가 있어야 음악이 되는 것과 같아요.
욕망은 감각에서 올라오지만, 그것을 언제 따르고 언제 멈출지 정하는 지휘자가 바로 마음이에요.
순자가 말한 욕망의 절제는 이 마음이 감각을 이끄는 상태였어요.
스마트폰 알림, 달콤한 간식, 자고 싶은 아침.
우리 하루도 욕망과의 밀당이에요.
순자의 조언은 뜻밖에 담백해요.
"그 마음을 미워하지 마라. 다만 자리를 정해 주어라."
게임을 아예 끊으라는 게 아니라 시간을 정해 즐기라는 것, 이게 순자식 조절이에요.
욕망을 죄로 여기며 억누르기만 하면 오히려 마음이 지쳐요.
순자는 없애는 대신 길들이자고 했고, 그 도구로 함께 지키는 규칙(예)과 나를 이끄는 마음을 들었어요.
참는 힘이 아니라 방향을 잡는 힘, 그것이 순자가 본 절제의 참뜻이에요.
순자는 욕망을 타고난 것으로 인정하고, 없애는 대신 알맞게 조절하자고 했어요.
사람의 거친 본성은 벌할 대상이 아니라 다듬을 원석이고(化性起僞), 그 다듬는 도구가 함께 지키는 규칙인 예(禮)와 감각을 이끄는 마음(心)이에요.
예는 욕망이 서로 부딪치지 않게 자리를 나눠 주고, 비우고(虛) 집중하고(一) 고요한(靜) 마음은 언제 따르고 멈출지를 정해요.
결국 순자의 절제는 욕망을 지우는 금욕이 아니라, 욕망에 물길을 내어 삶을 지탱하는 힘으로 바꾸는 일이었다고 기억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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