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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화성기위(化性起僞)는 타고난 거친 본성을 예(禮)라는 규범과 배움으로 갈고 바꿔서 반듯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뜻이고, 예치(禮治)는 그렇게 다듬은 예로 사회를 다스린다는 순자의 생각이에요. 사람은 저절로 착해지는 게 아니라 다듬어져야 사람다워진다고 본 거죠.
방금 산에서 막 베어 온 나무토막을 떠올려 보세요.
울퉁불퉁하고 옹이도 박혀 있어서 그대로는 앉을 의자가 못 되죠.
그런데 목수가 대패로 밀고 깎고 다듬으면 반듯한 의자가 됩니다.
순자가 사람을 보는 눈이 딱 이래요.
타고난 그대로의 사람은 거친 나무토막 같고, 그걸 다듬는 대패가 바로 예(禮)라는 겁니다.
여기서 두 단어가 나와요.
화성기위(化性起僞)는 "본성을 변화시켜 인위(人爲)를 일으킨다"는 뜻이에요.
성(性)은 타고난 본바탕, 위(僞)는 사람이 노력해서 만들어 낸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위(僞)는 '거짓'이 아니라 '사람 인(人)'과 '할 위(爲)'가 합쳐진 글자, 즉 '사람이 애써 만든 것'이에요.
그리고 예치(禮治)는 그렇게 다듬어 낸 예의 질서로 나라와 사람 사이를 다스린다는 말이고요.
즉 순자가 그리는 그림은 '거친 본성 → 예로 다듬음 → 반듯한 사람과 사회'로 이어집니다.
순자는 유명한 한마디를 남겼어요.
"人之性惡,其善者偽也(인지성악, 기선자위야)", 즉 "사람의 본성은 악하며, 그 선한 것은 인위다"라는 말이에요.
여기서 '악(惡)'이라는 글자 때문에 오해가 많은데, 서양에서 말하는 종교적인 '악마 같은 악'이 아니라 '거칠다·저열하다·다듬어지지 않았다'에 가까운 뜻이에요.
학자들도 이걸 'bad(나쁘다)' 정도로 옮기죠.
왜 이 말을 했을까요?
사람은 배고프면 먹고 싶고 이익을 보면 갖고 싶은 게 자연스러운데, 다들 제 욕심대로만 굴면 서로 다투고 사회가 무너지니까요.
그래서 그냥 두면 안 되고 다듬을 규칙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 규칙이 예예요.
(본성이 왜 거친지 자세한 이야기는 성악설 편에서 따로 다룰게요. 여기서는 '그래서 예가 필요하다'는 데까지만.)
순자에게 예는 그냥 인사 잘하고 예의 바른 태도가 아니에요.
순자는 예가 "人之所以爲人者(인지소이위인자)", 곧 "사람을 사람이게 하는 것"에 딱 맞기 때문에 정당하다고 봤어요.
사람은 자연스럽게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를 나누고 구별하죠(이 나눔을 변(辨)이라고 해요).
예는 그 자연스러운 구별을 확인하고 자리를 잡아 주는 질서라는 거예요.
그래서 예는 누가 멋대로 정한 관습이 아니라, 사람 사는 결에 맞는 틀이 됩니다.
타고난 본성과 예로 다듬은 결과를 나란히 놓으면 이렇게 정리돼요.
| 구분 | 성(性), 타고난 본바탕 | 위(僞), 예로 다듬어 낸 것 |
|---|---|---|
| 어디서 오나 | 태어날 때부터 그러함 | 배우고 애써서 만듦 |
| 그냥 두면 | 서로 다투고 어지러워짐 | 질서가 서고 함께 살 수 있음 |
| 목수 비유 | 거친 나무토막 | 다듬어진 반듯한 의자 |
예치란 이 오른쪽 칸을 나라 전체로 넓힌 거예요.
사람마다 자리와 몫을 예로 정해 주면, 다툼이 줄고 함께 어울려 살 수 있다고 본 겁니다.
"본성이 거칠다면 아무리 애써도 소용없는 거 아니야?" 하고 물을 수 있어요.
그런데 순자는 정반대로 봤어요.
오히려 사람은 '완전히 고쳐질 수 있는' 존재라고 믿었죠.
순자는 누구든 배우고 다듬으면 옛 성군인 우(禹)임금 같은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어요.
비결이 바로 화성기위예요.
타고난 게 거칠다는 건 끝이 아니라 시작점이에요.
대패질을 멈추지 않으면 나무토막도 의자가 되듯, 예를 배우고 몸에 붙이는 노력을 쌓으면 사람은 얼마든지 반듯해집니다.
순자가 사람을 두고 "人有氣有生有知,亦且有義(인유기유생유지, 역차유의)", 곧 "사람은 기운과 생명과 지각이 있고 또한 의(義)가 있어" 천하에서 가장 존귀하다고 한 것도 이 때문이에요.
사람에게는 옳고 그름을 알고 스스로를 다듬을 힘이 있으니까요.
그러니 성악은 사람을 깎아내리는 말이 아니라, '그러니 배우고 다듬자'는 권유에 가깝습니다.
순자의 예치와 화성기위는 결국 한 문장으로 묶여요.
사람은 거친 나무토막처럼 태어나지만, 예라는 대패로 다듬으면 반듯한 의자가 된다는 것.
화성기위는 그 다듬는 과정(본성을 바꿔 인위를 일으킴)이고, 예치는 그 예로 사회를 다스리는 일이에요.
두 가지를 기억하면 됩니다.
첫째, 순자가 본성을 거칠다고 본 건 포기가 아니라 '그러니 예로 다듬자'는 출발이라는 것.
둘째, 예는 잔소리 같은 격식이 아니라 사람을 사람이게 하고 함께 살게 하는 질서라는 것.
다듬는 손을 멈추지 않는 한 누구나 반듯해질 수 있다는 게 순자가 건넨 믿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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