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학교에 가는 일은 보통 설레는 일이다.
가방을 메고, 친구 옆자리에 앉고, 선생님의 질문에 손을 번쩍 드는 것.
하지만 비마라오 람지 암베드카르에게 학교란 그런 곳이 아니었다.
그는 교실에 들어갈 수 있었다.
앉는 것도 허락되었다.
다만 바닥에.
다른 아이들은 나무 의자에 앉아 수업을 들었고, 암베드카르는 그 의자들 아래 흙바닥에 앉아 같은 수업을 들었다.
그게 규칙이었다.
누군가 정한 것도, 법으로 강제된 것도 아니었다.
그냥 원래 그런 것이었다.
암베드카르는 불가촉천민, 즉 카스트 제도 바깥에 놓인 사람들의 자녀였다.
인도의 카스트 제도는 흔히 네 개의 계급으로 설명되지만, 그 네 계급조차 들어갈 수 없는 사람들이 있었다.
불가촉천민, 혹은 달리트.
이름 그대로 '닿으면 안 되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마을 공공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없었다.
같은 컵에 물을 마시는 것도 금지였다.
마을의 이발사는 달리트의 머리를 잘라주지 않았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서는 달리트가 길을 걸을 때 자신이 지나갔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목에 작은 단지를 매달아야 했다.
자신의 침이 땅에 떨어지면 그 땅이 더럽혀진다는 이유에서였다.
어린 암베드카르는 이 모든 것을 학교 흙바닥에 앉아서 배웠다.
배움이 뭔지도 배웠고, 자신이 어떤 존재로 취급받는지도 배웠다.
그는 공부를 잘했다.
놀랍도록 잘했다.
불가촉천민 자녀가 고등 교육을 받는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던 시절에, 암베드카르는 바로다의 번왕이 주는 장학금을 받아냈다.
그리고 배를 탔다.
행선지는 뉴욕이었다.
컬럼비아 대학교.
그곳에서 그는 존 듀이의 수업을 들었다.
듀이는 민주주의를 단순한 정치 체제가 아니라 삶의 방식으로 가르쳤다.
사람이 사람을 존엄하게 대하는 것, 그것이 민주주의의 기초라는 생각.
암베드카르는 그 강의실에서 인도 흙바닥에서 배운 것과 전혀 다른 세계를 만났다.
그는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다시 배를 탔다.
이번에는 런던.
런던정경대에서 법학을 공부해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학위가 두 개, 자격증이 하나.
하지만 인도로 돌아왔을 때 그를 기다리는 것은 변하지 않은 현실이었다.
바로다 번왕을 위해 일하러 갔을 때, 암베드카르가 불가촉천민임을 알게 된 사무실 사람들은 서류를 그에게 던졌다.
손에서 손으로 건네주면 자신이 오염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세계 최고의 대학에서 경제학을 연구한 사람에게.
그는 그 장면을 평생 기억했다.
기억이라는 게 때로는 연료가 된다.
마하드라는 도시에 차우다르 저수지가 있었다.
공공 저수지였다.
누구나 쓸 수 있는 물이었다.
법적으로는.
1927년, 암베드카르는 수천 명의 달리트를 이끌고 그 저수지로 행진했다.
그들이 한 일은 물을 마신 것이었다.
그게 전부였다.
공공 저수지에서 물을 마신 것.
그것이 당시 인도에서 시위였다.
암베드카르는 직접 손으로 물을 떠서 마셨다.
그 뒤를 따라 수천 명이 차례로 물을 마셨다.
저수지 주변에 모인 상위 카스트 주민들의 표정이 어떠했는지는 기록에 여러 증언이 남아 있다.
폭력이 따라왔다.
군중이 흩어진 뒤 달리트들이 머물던 숙소가 습격당했다.
코코넛과 우유로 저수지를 '정화'하는 의식이 거행되었다.
달리트가 마신 물은 더럽혀진 물이라는 의미였다.
같은 해, 암베드카르는 집회에서 마누법전을 불태웠다.
마누법전은 수천 년간 카스트 제도의 근거로 인용되어 온 고대 법전이었다.
불꽃이 종이를 태우는 동안 그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조용했다고 전해진다.
저수지 행진과 법전 소각.
두 사건은 같은 해에 일어났다.
하나는 몸으로, 하나는 상징으로 싸운 것이었다.
마하트마 간디는 불가촉천민을 '하리잔', 신의 자녀들이라고 불렀다.
암베드카르는 그 호칭을 싫어했다.
간디는 카스트 제도의 폐해를 인정했지만, 카스트 제도 자체는 인도 사회의 근간이라고 보았다.
달리트 문제는 힌두교 내부에서 해결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암베드카르는 달랐다.
힌두교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다.
1932년, 영국 식민 정부가 하나의 결정을 내놓았다.
불가촉천민에게 별도의 선거구를 주겠다는 것이었다.
공동체상이라고 불린 이 안은, 달리트가 달리트 후보에게만 투표하고 달리트 후보만이 달리트를 대표할 수 있게 하는 분리 선거 방식이었다.
암베드카르는 이를 지지했다.
자신들의 대표를 자신들이 직접 뽑아야 진짜 대표가 생긴다는 논리였다.
간디는 단식에 들어갔다.
분리 선거는 인도를 영구히 분열시킬 것이라는 이유였다.
단식은 암베드카르에 대한 압박이었다.
간디가 죽으면 전국의 달리트가 폭력에 희생될 것이라는 공포가 퍼졌다.
암베드카르는 협상 테이블에 앉았다.
이후 체결된 푸나 협정은 분리 선거 대신 달리트를 위한 의석 수를 대폭 늘리는 방식으로 타협했다.
암베드카르는 그 협정에 서명했다.
나중에 그는 이 결정을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남겼다.
협정이 달리트에게 충분한 정치적 힘을 주지 못했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존중했다.
그리고 서로를 용납하지 않았다.
그 둘이 동시에 사실이었다.
간디와 암베드카르의 논쟁은 결국 한 가지 질문으로 수렴된다.
억압받는 집단이 스스로를 구해야 하는가, 아니면 구해줄 누군가를 기다려야 하는가.
두 사람은 각자 다른 답을 갖고 있었다.
1947년 8월 15일, 인도가 독립했다.
초대 총리 네루는 암베드카르에게 연락을 취했다.
법무장관 자리였다.
암베드카르는 수락했다.
그리고 곧 헌법 초안위원회 위원장직도 맡게 되었다.
2년 11개월.
세계에서 가장 긴 성문 헌법 중 하나를 작성하는 데 걸린 시간이다.
헌법 초안위원회 위원장은 말 그대로 인도 공화국의 기초 규칙을 쓰는 사람이었다.
무엇이 허용되고 무엇이 금지되는가.
누가 권리를 갖고 누가 보호받는가.
이 질문들에 대한 답을 종이에 새기는 작업이었다.
암베드카르는 그 종이에 17조를 썼다.
"불가촉천민제는 폐지된다."
한 문장이었다.
하지만 그 문장이 도달하기까지 그는 교실 흙바닥에 앉아야 했고, 서류를 손이 아닌 허공으로 받아야 했고, 공공 우물에서 물 한 모금 마시는 것이 시위가 되어야 하는 세상을 살아왔다.
헌법 제17조.
불가촉천민 제도를 실천하는 행위는 법으로 금지되며 처벌받는다.
1950년 1월 26일, 헌법이 발효되었다.
그리고 암베드카르는 삶의 마지막 무렵에 한 가지 결정을 더 내렸다.
그는 힌두교를 떠났다.
1956년 10월, 나그푸르에서 그는 50만 명의 추종자들과 함께 불교로 집단 개종하는 의식을 거행했다.
불교를 선택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카스트 제도를 용납하지 않는 종교를 찾은 결과였다.
그해 12월, 암베드카르는 세상을 떠났다.
그의 초상은 지금도 인도 전역의 달리트 집집마다 걸려 있다.
정부 청사에도, 대학 강의실에도 있다.
그 강의실에는 이제 바닥에 앉는 아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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