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햇빛 좀 가리지 마라디오게네스
수학 시간을 떠올려 보자. 선생님이 칠판에 십자 모양 선을 긋는다. 가로는 x축, 세로는 y축. 그리고 점을 찍어 선을 연결한다. 우리는 이걸 '좌표평면'이라 부르고, 만든 사람은 르네 데카르트라고 배웠다.
그런데 잠깐. 데카르트가 태어나기 무려 300년 전, 프랑스의 한 신부님이 이미 이런 그래프를 그리고 있었다면?
그의 이름은 니콜라 오렘. 14세기 프랑스에서 활동한 신학자이자 과학자다. 그는 그래프를 발명했고, 지구가 돈다고 주장했으며, 경제학 교과서에 나올 법한 화폐 이론까지 썼다. 그것도 흑사병이 유럽 인구의 절반을 쓸어버리던 시대에.
이 사람, 도대체 누구일까?
니콜라 오렘은 1320년경 프랑스 노르망디 지방에서 태어났다. 정확한 출생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당시 농촌 출신 아이의 기록 따위는 아무도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 청년에게는 남다른 게 있었다. 머리가 비상하게 좋았다. 그는 파리 대학에 입학한다. 당시 파리 대학은 유럽 지성의 심장이었다. 지금으로 치면 하버드와 MIT를 합쳐놓은 곳이다.
오렘이 공부하던 시절, 유럽은 지옥이었다. 1347년 흑사병이 상륙했다. 유럽 인구의 3분의 1에서 절반이 죽었다. 거리에 시체가 넘쳤고, 교회마다 장례 미사가 끊이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영국과 프랑스는 백년전쟁 중이었다. 전쟁에 돈이 필요하니 왕은 화폐를 마구 찍어냈다. 동전 속 금과 은의 함량을 슬쩍 줄이면서.
빵 한 덩이 가격이 어제와 오늘이 달랐다. 사람들은 혼란스러웠다.
오렘은 이 문제를 가만히 보고 있지 않았다. 그는 《화폐론(De Moneta)》이라는 책을 썼다. 핵심은 간단했다. "화폐는 왕의 것이 아니라 백성의 것이다. 왕이 함부로 가치를 바꾸면 안 된다."
지금 우리가 '인플레이션'이나 '화폐 가치 안정'이라고 부르는 개념의 씨앗이 여기에 있었다. 600년 전, 흑사병이 창궐하는 파리에서.
자, 여기서부터가 진짜 재밌는 부분이다.
당신이 자전거를 탄다고 상상해 보자. 처음에는 천천히 출발한다. 페달을 밟으며 점점 빨라진다. 내리막길에서 최고 속도에 도달한다. 그리고 브레이크를 잡으며 서서히 멈춘다.
이 과정을 말로 설명하면 길고 복잡하다. 하지만 그래프로 그리면? 가로축에 시간을, 세로축에 속도를 놓으면 된다. 한눈에 보인다.
니콜라 오렘이 정확히 이 생각을 했다.
그는 이걸 '형상의 위도(latitudo formarum)'라고 불렀다. 이름은 어렵지만, 개념은 단순하다. "변하는 것을 눈에 보이게 그려보자."
오렘은 이렇게 생각했다. 물체가 일정한 속도로 움직이면, 그건 직사각형으로 나타낼 수 있다. 가로가 시간이고 세로가 속도니까, 넓이는 '이동한 거리'가 된다.
그렇다면 속도가 점점 빨라지는 물체는? 삼각형이 된다. 처음에 속도가 0이었다가 점점 빨라지니까, 왼쪽은 낮고 오른쪽은 높은 삼각형 모양이다.
여기서 오렘은 놀라운 걸 발견한다. 속도가 일정하게 증가하는 물체의 이동 거리는, 중간 속도로 일정하게 달린 물체의 이동 거리와 같다. 삼각형의 넓이가 같은 밑변과 같은 높이 절반을 가진 직사각형의 넓이와 같으니까.
이걸 수학에서는 '평균속도 정리(mean speed theorem)'라고 부른다. 훗날 갈릴레오가 낙하 운동을 설명할 때 쓴 바로 그 정리다. 갈릴레오보다 200년 앞서서.
더 놀라운 건 이것이다. 넓이로 거리를 구한다? 이건 사실상 적분의 개념이다. 뉴턴과 라이프니츠가 미적분학을 정립하기 300년 전에, 오렘은 이미 그 핵심 아이디어를 손에 쥐고 있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변하는 것을 그림으로 그려보자"라는, 너무나 단순한 생각이었다.
중세 유럽에서 우주는 단순했다. 지구가 중심이고, 해와 달과 별이 그 주위를 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렇게 말했고, 성경도 그런 것 같았으니까.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별들이 동쪽에서 서쪽으로 움직인다. 이걸 가장 쉽게 설명하는 방법은? "저 별들이 우리 주위를 돌고 있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오렘은 다르게 생각했다.
비유를 하나 들어보자. 당신이 기차 안에 앉아 있다. 창밖의 나무가 뒤로 쭉 지나간다. 나무가 움직이는 걸까, 당신이 움직이는 걸까? 답은 뻔하다. 당신이 탄 기차가 움직이는 것이다.
오렘은 똑같은 논리를 하늘에 적용했다. "별이 우리 주위를 도는 게 아니라, 우리가 서 있는 지구가 돌고 있는 것 아닐까?"
그는 《천구와 지구에 관하여(Le Livre du Ciel et du Monde)》에서 이 주장을 펼쳤다. 지구가 매일 한 바퀴씩 자전한다면, 우리가 보는 별의 움직임을 똑같이 설명할 수 있다고.
심지어 반론까지 예상하고 답했다. "지구가 돌면 우리가 왜 안 날아가느냐"는 질문에, 오렘은 "배 안에서 공을 던져도 배와 함께 움직이지 않느냐"고 대답했다. 이건 훗날 갈릴레오가 말한 '관성'의 원리와 거의 같은 생각이다.
다만 오렘은 끝내 한 발 물러섰다. 논리적으로는 지구 자전이 가능하지만, 확실히 증명할 수는 없다고. 그리고 성경 말씀을 따르겠다고.
이걸 비겁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시대를 생각해야 한다. 200년 뒤 갈릴레오가 같은 주장을 했다가 종교재판에 끌려갔다. 오렘의 시대에 끝까지 밀어붙였다면? 그의 모든 저작이 불태워졌을지도 모른다.
오렘은 영리했다. 씨앗을 심되, 자신이 불타지 않는 방법을 알았다.
자, 정리해 보자. 니콜라 오렘은 이런 사람이다.
이 정도면 과학 교과서 첫 페이지에 나와야 할 사람 아닌가? 그런데 왜 우리는 그를 모를까?
첫 번째 이유는 시대다. 오렘은 1382년에 세상을 떠났다. 구텐베르크가 인쇄기를 발명한 건 1440년경이다. 오렘의 책은 수도사들이 손으로 베껴 쓴 필사본으로만 존재했다. 몇 권 안 되는 사본이 수도원 서가에 꽂혀 먼지를 뒤집어썼다.
두 번째 이유는 언어다. 오렘은 라틴어와 중세 프랑스어로 글을 썼다. 근대 과학자들이 이걸 읽기란 쉽지 않았다. 데카르트가 좌표평면을 발표했을 때, 오렘의 저작을 읽어본 사람이 몇이나 됐을까?
세 번째, 그리고 가장 큰 이유는 편견이다. "중세는 암흑기"라는 생각. 이 말은 르네상스 시대 학자들이 만들어낸 것이다. "우리 이전에는 아무것도 없었다"는 자기 자랑이었다. 이 편견은 너무 강력해서, 아직도 많은 사람이 중세 하면 마녀사냥과 무지만 떠올린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중세 유럽의 대학에서는 치열한 지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었다. 오렘만이 아니다. 옥스퍼드의 머튼 학파는 운동 법칙을 연구했고, 로저 베이컨은 실험의 중요성을 주장했다.
과학은 한 명의 천재가 번쩍 하고 만들어낸 게 아니다. 수백 년에 걸쳐 수많은 사람이 쌓아올린 것이다. 뉴턴이 "거인의 어깨 위에 섰다"고 말했을 때, 그 거인들 중 한 명이 바로 니콜라 오렘이었다.
다음에 수학 시간에 그래프를 그릴 때, 잠깐 생각해 보자. 600년 전, 흑사병이 휩쓸고 전쟁이 터지던 파리에서, 한 신부님이 촛불 아래 앉아 양피지 위에 선을 긋고 있었다. "변하는 것을 눈에 보이게 그려보면 어떨까?" 하면서.
그 단순한 생각 하나가,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영원히 바꿔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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