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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과학적 진리는 이전의 이단적인 방식으로 전파되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의 방식으로, 즉 그것을 믿게 된 후배 과학자들의 죽음을 통해 전파된다."
이 말은 과학의 발전이 단순히 오래된 이론을 뛰어넘는 새로운 발견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과학은 대체 어떻게 발전해 왔을까요? 마치 오래된 안경을 벗고 세상을 새롭게 보게 되는 순간처럼, 과학계에도 거대한 '인지의 전환'이 일어난다고 주장한 한 학자가 있습니다. 바로 토머스 쿤입니다. 그의 '패러다임'이라는 개념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겼던 과학 발전의 모습을 완전히 뒤흔들어 놓았습니다.
우리가 흔히 과학 발전이라고 하면, 낡은 이론을 폐기하고 더 정확하고 완벽한 새 이론을 차곡차곡 쌓아 올리는 모습만 상상하기 쉽습니다. 하지만 쿤은 이러한 '누적적 발전'이라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그는 과학자들이 특정 시대에 공유하는 '믿음 체계' 또는 '사고방식'을 '정상 과학'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정상 과학'의 틀 안에서는 현재 받아들여지는 이론과 방법론이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고, 이 틀에 맞지 않는 현상들은 '이상 현상'으로 치부되거나 무시되기 일쑤였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믿었던 시절, 천동설에 맞지 않는 별들의 움직임은 그저 복잡하거나 설명하기 어려운 '이상 현상'에 머물렀던 식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이상 현상'이 점점 쌓이고, 기존의 틀로는 더 이상 설명하기 어려워지면 어떻게 될까요? 이때가 바로 과학 혁명의 씨앗이 뿌려지는 순간입니다.
쿤에 따르면, 과학 발전은 '정상 과학'과 '과학 혁명'이라는 두 단계를 주기적으로 반복합니다. '정상 과학' 단계에서는 기존 패러다임 안에서 문제 해결에 집중하며 과학이 정교해집니다. 하지만 아무리 견고해 보이는 패러다임이라도 모든 현상을 완벽하게 설명할 수는 없으며, 결국 '이상 현상'이라는 형태로 균열이 발생합니다. 이러한 '이상 현상'이 누적되어 기존 패러다임으로 더 이상 해결 불가능하다고 인식될 때, 과학자들은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합니다. 바로 '패러다임의 위기'입니다. 이 위기 상황에서 기존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집는 혁신적인 아이디어가 등장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탄생하게 됩니다. 이 과정은 마치 흑백 영화만 보던 세상에 갑자기 컬러 TV가 등장하는 것처럼, 세상을 보는 근본적인 방식 자체가 바뀌는 '게슈탈트 전환'과 같습니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이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로 바뀐 것이나, 뉴턴 역학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으로 확장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흥미로운 점은, 패러다임이 바뀌면 과학자들이 세상을 '보는 방식' 자체가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쿤은 이를 '세계관의 변화'라고 설명했습니다. 새로운 패러다임을 받아들인 과학자들은 이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보게 되고, 이전에는 중요하지 않았던 것을 중요하게 여기게 됩니다. 예를 들어, 지동설을 받아들인 코페르니쿠스 이후의 천문학자들은 행성의 움직임을 훨씬 더 간결하고 일관되게 설명할 수 있었으며, 이는 우주에 대한 인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이러한 패러다임 전환은 단순히 지식의 축적이 아니라, 과학 공동체 전체의 인식론적, 방법론적 대격변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쿤은 과학 발전이란 직선적인 진보가 아니라, 혁명적인 단절과 전환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는 '과학 지식이란 영원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특정 시대의 과학 공동체가 공유하는 합의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토머스 쿤의 '패러다임' 이론이 과학 철학에 가져온 가장 큰 충격이자, 우리가 과학을 이해하는 방식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킨 이유입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사실'조차도 시대와 관점에 따라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면, 우리는 현재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에 대해 얼마나 깊이 성찰하고 있을까요? 어쩌면 우리 역시 스스로의 '패러다임'이라는 안경을 쓰고 세상을 바라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이 '안경'을 의식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둘 때, 우리는 진정으로 혁신적인 사고와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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