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코멘트
0
개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셸러는 남의 마음을 아는 일이 머리로 따지기 전에 함께 느끼는 감정에서 시작한다고 봤어요. 공감은 단순한 지식이 아니라, 세상이 나에게 의미를 갖기 시작하는 첫 문이라는 뜻이에요.
친구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리면, 우리는 "쟤가 왜 울까" 하고 계산하기 전에 이미 가슴이 먼저 철렁 내려앉아요.
이 순서를 진지하게 붙잡은 사람이 막스 셸러(Max Scheler, 1874~1928)예요.
독일 뮌헨에서 태어난 이 철학자는 남을 이해하는 힘이 똑똑한 머리가 아니라 함께 느끼는 감정에서 나온다고 봤어요.
'현상학'이라는 말이 어렵게 들리지만, 여기서는 '느낀 그대로를 서둘러 판단하지 말고 찬찬히 들여다보는 태도'라고 생각하면 돼요.
그래서 셸러는 공감(그가 다룬 말로는 동감, Sympathie)이라는 감정을 현미경 아래 놓듯 하나하나 살폈어요.
참고로 그는 흔히 후설의 제자로 소개되지만 실제로 후설의 학생은 아니었고, 현상학에 스스로 도달했어요.
그에게 현상학은 딱딱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의 '태도'였어요.
당시 유행하던 칸트식 윤리학은 "규칙이 옳으면 따르라"처럼 형식을 앞세웠어요.
셸러는 여기에 반대했어요.
그의 주저 『윤리학에서의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1913년 1부, 1916년 2부)에서, 좋고 나쁨은 차가운 규칙이 아니라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가치'에서 온다고 주장했어요.
더 흥미로운 건 가치에도 높낮이 순서가 있다고 본 점이에요.
마치 음식 맛부터 예술의 아름다움까지 층이 다르듯이요.
셸러는 낮은 데서 높은 데로 네 층을 나눴어요.
| 가치 층 | 느껴지는 방식 | 쉬운 예 |
|---|---|---|
| 감각적 가치 | 쾌적함과 불쾌함 | 맛있다, 시원하다 |
| 생명 가치 | 고귀함과 저속함 | 건강하다, 활기차다 |
| 정신적 가치 | 아름다움·옳음·참 | 아름답다, 옳다, 진실이다 |
| 신성한 가치 | 성스러움과 속됨 | 거룩하다 |
셸러는 낮은 가치보다 높은 가치를 먼저 선택해야 한다고 봤어요.
그리고 한 사람이 이 가치들을 어떻게 사랑하고 배열하는지를 '사랑의 질서(ordo amoris)'라고 불렀어요.
사람은 결국 자기가 무엇을 사랑하느냐로 드러난다는 이야기예요.
셸러는 『르상티망』(1915년)에서 니체가 쓴 '르상티망(원한, 앙심)'이라는 말을 빌려 왔어요.
힘없는 사람이 강한 사람을 속으로 미워하다가 그 미움을 도덕으로 포장하는 마음을 가리키죠.
여기까지는 비슷하지만 결론은 정반대예요.
니체는 기독교 도덕 자체가 이 원한에서 나왔다고 봤어요.
반대로 셸러는 원한이야말로 근대의 이해타산적 도덕의 밑바탕이며, 오히려 기독교적 사랑(아가페)은 그 원한을 뛰어넘는 힘이라고 봤어요.
같은 단어를 써도 두 사람 손끝에서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 거예요.
그러니 둘을 같은 편으로 묶으면 안 돼요.
셸러의 생각은 1921년 무렵을 기점으로 방향을 넓혀요.
앞 시기엔 가치와 감정의 층에 집중했고, 뒤엔 형이상학과 지식사회학, 그리고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묻는 '철학적 인간학'으로 나아갔어요.
그는 20세기 철학적 인간학을 연 인물로 꼽혀요.
이 전환은 현상학을 버린 게 아니라 더 깊고 넓게 밀고 간 것이라고 봐요.
오늘 우리에게 셸러가 주는 실마리는 분명해요.
누군가를 이해하려 할 때 우리는 자꾸 머리로 분석부터 하지만, 그 사람과 잠깐이라도 함께 느끼는 순간이 먼저라는 거예요.
공감은 나약함이 아니라, 세상이 의미를 갖게 되는 출발점이에요.
막스 셸러는 남을 이해하는 힘이 지성이 아니라 함께 느끼는 감정에서 시작한다고 봤어요.
그는 좋고 나쁨을 규칙이 아닌 가치의 느낌에서 찾았고, 감각·생명·정신·신성의 네 층으로 가치를 나눴어요.
사람은 자기가 무엇을 사랑하는지(사랑의 질서)로 드러나고, 원한이 아니라 사랑이 도덕의 더 높은 자리에 있다고 봤죠.
오늘 누군가가 이해되지 않을 때, 따지기 전에 먼저 함께 느껴 보라는 것, 그것이 셸러가 남긴 짧은 권유예요.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