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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셸러는 인간을 이해하는 출발점이 차가운 머리, 곧 지성이 아니라 감정이라고 봤어요. 우리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면서 비로소 세계가 어떤 의미인지 느끼고, 그 느낌의 순서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낸다는 뜻이에요.
혹시 이런 생각을 해 본 적 있나요? "나는 대체 어떤 존재일까?"
이 질문에 학교는 여러 과목으로 나눠 답해요.
생물학은 우리 몸을, 심리학은 마음을, 사회학은 사람들 사이의 관계를 따로따로 연구하죠.
마치 코끼리를 만지는 여러 사람이 각자 다리, 코, 귀만 만지는 것과 비슷해요.
막스 셸러(Max Ferdinand Scheler)는 이 조각들을 한자리에 모아 "그래서 인간이란 도대체 무엇인가"를 철학이 직접 묻자고 했어요.
이렇게 인간을 부분이 아니라 전체로 묻는 분야를 철학적 인간학이라고 부르고, 셸러는 20세기에 이 분야를 처음 연 창시자로 꼽혀요.
셸러는 1874년 8월 22일 독일 뮌헨에서 태어나 1928년 5월 19일에 세상을 떠났어요.
아버지는 루터파, 어머니는 유대계였고, 셸러 자신은 나중에 가톨릭으로 개종했죠.
서로 다른 신앙이 뒤섞인 집안에서 자라며 "사람은 무엇을 소중히 여기며 사는가"를 일찍부터 곱씹었을 법해요.
예나 대학에서 루돌프 오이켄(Rudolf Eucken)의 지도로 공부해 1897년에 박사학위를 받았고, 예나·뮌헨·쾰른 대학에서 강의했어요.
흔히 그를 후설의 제자라고 소개하지만 이건 사실이 아니에요.
셸러는 후설에게 배운 학생이 아니라, 스스로 현상학이라는 태도에 도달했거든요.
그에게 현상학은 딱 정해진 방법이라기보다 세상을 있는 그대로 들여다보는 자세에 가까웠어요.
보통 우리는 "제대로 알려면 머리를 써야지"라고 말해요.
그런데 셸러는 반대로 봤어요.
세계가 나에게 의미를 갖는 첫 순간은 계산이 아니라 감정에서 온다는 거죠.
갓난아기가 엄마 품을 "따뜻하다, 좋다"고 느끼는 게 먼저이고, 그게 무엇인지 설명하는 건 한참 뒤예요.
셸러는 우리가 무언가를 사랑하고 미워하는 그 작용 속에서 비로소 세계가 의미를 얻는다고 했어요.
그리고 사람마다 무엇을 더 사랑하고 무엇을 덜 사랑하는지에는 저마다의 순서가 있는데, 이 순서를 라틴어로 '사랑의 질서'(ordo amoris)라고 불렀어요.
내가 무엇을 가장 아끼는지를 보면 내가 어떤 사람인지가 보인다는 뜻이에요.
셸러의 주저는 『윤리학에서의 형식주의와 실질적 가치윤리학』(Der Formalismus in der Ethik und die materiale Wertethik)으로, 1913년에 1부, 1916년에 2부가 나왔어요.
여기서 그는 칸트를 비판해요.
칸트는 "무엇이 옳은가"를 텅 빈 규칙 형식으로만 따졌는데, 셸러는 우리가 실제로 느끼는 구체적인 가치에는 객관적인 높낮이 순서가 있다고 봤죠.
그 순서는 네 단계예요.
| 순서 | 가치 양태 | 예 |
|---|---|---|
| 낮음 | 감각적 가치 | 쾌적함 / 불쾌함 |
| ↓ | 생명 가치 | 고귀함 / 저속함 |
| ↑ | 정신적 가치 | 아름다움·옳음·참 / 그 반대 |
| 높음 | 신성한 가치 | 성스러움 / 속됨 |
배가 부른 즐거움보다 옳고 아름다운 것이 더 높다는 식이에요.
그래서 우리는 낮은 가치보다 높은 가치를 더 좋아하고 선택해야 한다고 봤죠.
참고로 대중 책에서는 이걸 다섯 단계로 소개하기도 하는데, 셸러가 처음 나눈 기본은 네 가지예요.
'유용함'은 감각적 가치에서 갈라져 나온 곁가지로 다뤘답니다.
세 가지만 기억하면 오해를 피할 수 있어요.
첫째, 앞서 말했듯 셸러는 후설의 제자가 아니에요.
둘째, 그는 『르상티망』(Ressentiment, 1915)에서 니체가 쓴 개념을 빌려오지만 결론은 정반대예요.
니체는 기독교 도덕 자체가 약자의 뒤틀린 원한, 곧 르상티망에서 나왔다고 봤지만, 셸러는 근대 시민사회 도덕이야말로 원한에 뿌리를 두었고 오히려 기독교적 사랑은 그 원한을 넘어선다고 봤어요.
셋째, 1921년 무렵부터 셸러는 가치윤리에서 형이상학과 철학적 인간학으로 관심을 옮겨 1928년 『우주에서 인간의 지위』(Die Stellung des Menschen im Kosmos)를 써요.
이걸 두고 "현상학을 버렸다"고 오해하기 쉬운데, 버린 게 아니라 더 깊고 넓게 밀고 나간 거예요.
셸러는 인간을 조각내 연구하는 대신 "인간이란 전체로서 무엇인가"를 철학이 직접 묻게 한 사람이에요.
그 출발점은 지성이 아니라 감정이고, 무엇을 더 사랑하느냐의 순서인 사랑의 질서가 나를 보여줘요.
가치에는 감각·생명·정신·신성이라는 네 층의 높낮이가 있고, 낮은 것보다 높은 것을 택하는 삶이 더 나은 삶이라고 봤어요.
오늘 내가 무엇에 가장 마음을 쓰는지 돌아보면, 셸러가 던진 물음이 생각보다 가까이 있다는 걸 알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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