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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슬로터다이크는 문화와 문명이 인간을 저절로 자라게 두지 않고, 일정한 방향으로 길들이고 키워 온 '인공 온실'이라고 봤어요. 그래서 유전공학 시대에는 그 '기르기'를 이제 누가, 어떤 규칙으로 할지 물어야 한다는 거예요.
1999년 독일 남부의 엘마우 성에서 한 철학자가 강연을 했어요.
제목이 좀 섬뜩했죠.
'인간농원을 위한 규칙(Regeln für den Menschenpark)'.
사람을 농원, 그러니까 식물을 기르는 정원처럼 다룬다는 말이니까요.
이 강연을 한 사람이 독일 철학자 피터 슬로터다이크(1947년생)예요.
핵심은 이래요.
우리는 보통 인간이 자유롭게 태어나 스스로 자란다고 생각하죠.
그런데 슬로터다이크는 그렇지 않다고 봐요.
문화와 문명은 사실 인간을 특정한 모습으로 길들이고 키워 온 '인공 온실'이라는 거예요.
온실은 밖의 추위를 막고, 어떤 싹은 살리고 어떤 잡초는 뽑죠.
사람도 오랜 세월 교육과 종교와 법이라는 온실 안에서 그렇게 다듬어져 왔다는 거예요.
참고로 이 강연 제목은 자료에 따라 '인간농원'으로도, '인간동물원'으로도 옮겨져요.
독일어 원제 Menschenpark를 어떻게 읽느냐의 차이예요.
집에서 화분 하나 키운다고 생각해 볼까요.
물 주는 때, 햇빛 방향, 잘라 낼 가지를 전부 우리가 정하죠.
식물은 그 규칙 안에서 자라요.
슬로터다이크는 문명을 바로 이런 온실, 곧 '인간을 배양하는 인위적 온실(anthropogenic hothouses)'에 비유했어요.
옛날에는 이 '기르기'를 주로 책과 교육이 맡았어요.
좋은 글을 읽히고 거친 본성을 다듬는 일이 사람을 길들이는 방식이었죠.
그런데 슬로터다이크가 이 강연을 하던 1990년대 말은 유전공학이 빠르게 발전하던 때예요.
그래서 그는 물었어요.
이제 인간을 '기르는' 일이 책이 아니라 유전자 기술의 손으로 넘어간다면, 그 규칙은 대체 누가 정하느냐고요.
온실 주인이 바뀌는 순간을 미리 내다본 셈이에요.
재미있는 건, 슬로터다이크가 2년 전에도 같은 강연을 했는데 그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1999년엔 난리가 났죠.
대표적으로 위르겐 하버마스라는 유명한 철학자와 크게 부딪혔어요.
하버마스는 편지와 전화로 비판했고, 슬로터다이크는 그가 '뒤에서 몰래 비판한다'며 맹렬히 되받았어요.
비판의 핵심은 이랬어요.
인간을 '기르고 골라낸다'는 발상이 자칫 나치가 했던 우생학, 즉 사람을 선별하고 인구를 통제하려던 파시즘의 말투와 닮았다는 거죠.
다만 여기서 꼭 짚을 게 있어요.
'파시스트'라는 낙인은 하버마스 쪽의 비판이지, 학계가 합의한 평가가 아니에요.
슬로터다이크 본인은 자기 논지를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왜곡했다고 반박했고, 이 논쟁을 어떻게 읽을지는 지금도 갈려요.
슬로터다이크는 종종 '냉소적인 사람'으로 오해받아요.
그의 출세작이 1983년에 나온 『냉소적 이성 비판(Kritik der zynischen Vernunft)』이라 더 그렇죠.
하지만 이건 오독이에요.
그는 이 책에서 근대 냉소주의를 오히려 날카롭게 비판했거든요.
그가 말한 냉소주의는 "계몽된 허위의식(enlightened false consciousness)"이에요.
무슨 뜻이냐면, 뭐가 옳은지 다 알면서도 "그래 봤자 세상은 안 변해" 하며 실천하지 않는 마음이에요.
배울 만큼 배웠는데 그 교훈을 삶으로 옮기지 못하는, 그래서 잘살면서도 어딘가 불행한 의식이죠.
인간농원 강연도 마찬가지예요.
"이렇게 기르자"는 답이 아니라, "그럼 이제 그 규칙은 누가 정할 거냐"는 질문을 던진 거예요.
이 물음은 옛날얘기가 아니에요.
유전자 편집으로 아기의 특성을 고르는 실험이 나오고, 알고리즘이 우리가 볼 정보를 매일 골라 주는 시대잖아요.
어쩌면 우리는 이미 보이지 않는 온실 안에서 조금씩 '재배'되고 있는지도 몰라요.
슬로터다이크의 힘은 시원한 답을 준 게 아니라, 우리가 못 본 척하던 사실을 들춘 데 있어요.
인간은 그냥 자라는 게 아니라 늘 누군가의 규칙 아래 길러진다는 것.
그렇다면 남는 질문은 하나예요.
그 규칙을 누가, 무엇을 위해 정하느냐.
슬로터다이크의 '인간농원의 규칙'은 한 문장으로 이래요.
문명은 인간을 저절로 두지 않고 특정한 방향으로 길러 온 온실이라는 것.
그는 이걸 두고 "이렇게 하자"고 부추긴 게 아니라, 유전공학 시대에 그 '기르기'의 규칙을 누가 정할지 물었을 뿐이에요.
그 물음이 하버마스와의 논쟁에서 파시즘이라는 비판까지 불렀지만, 그 평가는 지금도 갈려요.
그를 냉소주의자로 읽는 것도 오해고요.
알고리즘과 유전자 기술 앞에 선 우리가 다시 떠올릴 질문을, 그는 이미 던져 둔 셈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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