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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스캔런은 어떤 행동이 옳은지 따질 때, 서로 규칙을 정하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을 따르는지를 봐요. 관용과 표현의 자유도 이 기준을 통과할 때 정당해집니다.
혹시 미국 시트콤 《굿 플레이스》를 보셨나요?
거기서 등장인물들이 계속 붙들고 읽는 책이 하나 있어요.
바로 토머스 스캔런의 『What We Owe to Each Other(우리가 서로에게 지는 것)』입니다.
시즌1의 한 화 제목이 이 책에서 그대로 나왔고, 마지막 화까지 이 책의 생각이 이야기의 뼈대가 돼요.
스캔런은 1940년 미국에서 태어난 철학자예요.
1984년부터 하버드대에서 가르쳤고, 2016년에 은퇴했습니다.
그가 평생 파고든 질문은 딱 하나로 줄일 수 있어요.
"우리는 왜 서로에게 잘 대해야 할까?"
그 답으로 그는 계약주의(contractualism)라는 생각을 다듬었습니다.
존 롤스, 칸트, 루소로 이어지는 계보를 잇지만, 스스로 「나는 어떻게 칸트주의자가 아닌가」라는 글까지 써서 자기 입장은 조금 다르다고 밝혔어요.
친구들끼리 놀이 규칙을 정하는 장면을 떠올려 볼게요.
한 명이 "이렇게 하자"고 하면, 다른 친구가 "그건 나한테 너무 불리해서 못 받아들여"라고 말할 수 있죠.
모두가 이렇게 거부할 기회를 가진 채로, 그래도 아무도 합당하게 물리치지 못하는 규칙이 남으면, 그게 공정한 규칙이에요.
스캔런의 핵심 문장이 딱 이거예요.
"어떤 행동은, 그것을 허용하는 원칙을 누군가가 합당하게 거부할 수 있다면 그것을 할 때 잘못이다"라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합당하게'예요.
그냥 싫다고 떼쓰는 게 아니라,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이유가 있어야 해요.
다만 스캔런은 이 이론이 도덕 전체를 설명한다고 하지 않았어요.
가족과 친구에 대한 특별한 사랑, 자연을 대하는 태도 같은 건 더 넓은 영역이라며 따로 두었죠.
그가 다루는 건 '이성을 가진 사람으로서 서로에게 지는 의무'라는 한 부분입니다.
이 계약주의를 관용과 표현의 자유에 대보면 재미있어져요.
스캔런은 1972년에 「표현의 자유 이론(A Theory of Freedom of Expression)」이라는 논문을 썼고, 2003년에는 『관용의 어려움(The Difficulty of Tolerance)』이라는 정치철학 논문집도 냈어요.
제목에 '어려움'이 들어간 게 핵심이에요.
관용은 그냥 참는 게 아니에요.
내가 정말 싫어하는 생각, 틀렸다고 믿는 말을 하는 사람과도 같은 사회에서 함께 살겠다고 받아들이는 일이거든요.
왜 그래야 할까요?
스캔런의 답은 이래요.
내가 남의 입을 막는 규칙을 원한다면, 언젠가 남도 내 입을 막는 규칙을 합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요.
그러니 누구도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은, 서로의 표현을 함부로 억누르지 않는 쪽에 가깝습니다.
그가 옳고 그름의 근거를 "타인과 함께 사는 삶의 긍정적 가치"에 두었기 때문이에요.
이 대목에서 스캔런은 공리주의와 선을 확실히 그어요.
공리주의는 여러 사람의 이익을 다 더해서, 합이 큰 쪽을 고르죠.
그러면 다수가 원하면 한 사람쯤 희생돼도 괜찮다는 계산이 나올 수 있어요.
| 구분 | 공리주의 | 스캔런의 계약주의 |
|---|---|---|
| 판단 방식 | 모두의 이익을 합산 | 개인마다 따로 이유를 견줌 |
| 소수의 처지 | 다수에 묻힐 수 있음 | 한 사람도 합당한 거부권을 가짐 |
| 옳음의 기준 | 이익의 총합이 큼 | 누구도 합당하게 못 거부함 |
스캔런은 이유를 합산하지 않고, 사람 한 명 한 명 단위로 견줘요.
그래서 '다수가 좋으니까'라는 이유만으로 소수를 밟는 걸 막습니다.
표현의 자유를 지킬 때도, 인기 없는 목소리 하나가 다수의 편함에 눌리지 않게 지켜주는 힘이 여기서 나와요.
댓글창에서 마음에 안 드는 말을 볼 때, 우리는 쉽게 "저런 말은 막아야 해"라고 생각해요.
스캔런은 여기서 한 번 멈추게 해요.
내가 세우려는 그 규칙을, 입장이 뒤바뀐 사람도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만으로도, 관용은 참기 힘든 감정이 아니라 함께 살기 위한 약속으로 바뀝니다.
스캔런은 어떤 행동이 옳은지를 '결과의 합'이 아니라 '누구도 합당하게 거부할 수 없는 원칙인가'로 판단했어요.
관용과 표현의 자유가 어려운 이유는, 싫은 생각을 가진 사람과도 함께 살 규칙을 서로 인정해야 하기 때문이죠.
그 규칙은 다수의 편함으로 소수를 지우지 않고, 한 사람의 합당한 이유도 무겁게 셈합니다.
다음에 누군가의 말을 막고 싶어질 때, '입장이 바뀌어도 이 규칙을 받아들일까'를 떠올려 보면 스캔런의 생각에 한 발 다가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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