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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카멜레온이 주변 색에 맞춰 몸빛을 바꾸듯, 피코 델라 미란돌라는 인간에게 미리 정해진 본성이 없어서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될지 고를 수 있다고 봤어요. 바로 이 선택의 자유가 인간을 가장 존엄한 존재로 만든다는 뜻이에요.
카멜레온을 떠올려 보세요.
나뭇잎 위에 있으면 초록색, 흙 위에 있으면 갈색으로 몸빛을 바꾸죠.
정해진 제 색이 딱 하나로 굳어 있지 않아요.
이탈리아 르네상스 시대의 철학자 조반니 피코 델라 미란돌라(1463년부터 1494년까지 살았어요)는 사람도 바로 이런 카멜레온 같다고 말했어요.
무슨 말이냐면, 사자는 태어날 때부터 사자의 본성이 정해져 있고 나무는 나무의 본성이 정해져 있는데, 오직 인간만은 '너는 이런 존재다'라고 미리 못 박힌 게 없다는 거예요.
그래서 인간은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될지 정할 수 있어요.
이 '정해지지 않음' 자체가 인간에게 주어진 가장 큰 선물이라는 게 피코 생각의 핵심이에요.
피코는 신이 인간을 만들 때 다른 피조물처럼 고정된 자질을 주는 대신, 아무 방향으로도 정해지지 않은 상태를 줬다고 봤어요.
이탈리아어 자료는 이걸 '미결정성(indeterminatezza)'이라고 표현해요.
쉽게 말하면 '아직 빈칸으로 남겨 둔 상태'예요.
피코는 인간 안에 '온갖 종류의 씨앗'이 다 들어 있다고 했어요.
동물이 될 씨앗도 있고, 천사처럼 높이 올라갈 씨앗도 있어요.
어떤 씨앗에 물을 주고 키우느냐는 사람 자신에게 달렸어요.
짐승 같은 욕심을 가꾸면 아래로 내려가고, 지혜와 사랑을 가꾸면 위로 올라가요.
그래서 피코는 인간이 제 운명을 스스로 '벼려낸다(forgiare)'고 표현했어요.
대장장이가 쇠를 두드려 칼을 만들듯, 사람은 자기 자신을 두드려 만들어 가는 존재라는 거죠.
이 자기 결정의 힘을 피코는 자유의지(arbitrio)라고 불렀어요.
피코의 생각을 표로 정리하면 이렇게 돼요.
| 존재 | 본성 | 위치 |
|---|---|---|
| 동물·식물 | 태어날 때 고정됨 | 정해진 자리에 머묾 |
| 천사 | 이미 높은 자리로 정해짐 | 위쪽에 고정됨 |
| 인간 | 정해지지 않음(빈칸) | 스스로 오르내림을 선택 |
재미있는 건, 피코에게 인간은 천사보다도 더 존엄하다는 점이에요.
천사는 이미 훌륭하지만 그 자리에 고정되어 있어서 '선택'을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인간은 어떤 존재가 될지 스스로 고를 수 있죠.
이 선택할 수 있음이 존엄의 뿌리라는 거예요.
훗날 17세기 철학자 파스칼도 '인간은 천사도 짐승도 아니다'라고 했는데, 피코와는 결이 조금 달라요.
파스칼에게 그 중간은 어정쩡한 평범함이지만, 피코에게 그 중간은 자기 자리를 스스로 고르게 해 주는 '의지' 그 자체예요.
같은 중간이라도 피코 쪽이 훨씬 밝고 능동적이죠.
이 이야기는 500년도 더 지난 지금도 힘이 있어요.
'나는 원래 이런 사람이야'라는 말은 사실 절반만 맞아요.
피코라면 이렇게 말할 거예요.
당신 안에는 아직 키우지 않은 씨앗이 여럿 있고, 어느 씨앗을 가꿀지는 지금부터 당신이 정한다고요.
물론 이 생각이 세상 모든 걸 마음대로 바꿀 수 있다는 뜻은 아니에요.
다만 사람을 '이미 다 정해진 존재'로 가두지 않고, 매일의 선택으로 자기를 조금씩 빚어 가는 존재로 본다는 점이 중요해요.
그래서 이 비유가 르네상스 인문주의를 대표하는 인간관으로 오래 기억되는 거예요.
피코 델라 미란돌라의 '카멜레온 같은 인간'은 이 한 문장으로 요약돼요.
인간에게는 미리 정해진 본성이 없어서, 스스로 어떤 존재가 될지 고를 수 있다.
카멜레온이 색을 바꾸듯 사람은 자기 안의 씨앗 중 무엇을 키우느냐로 위로도 아래로도 갈 수 있고, 바로 그 선택의 자유가 인간을 가장 존엄하게 만든다고 피코는 봤어요.
오늘 당신이 어떤 씨앗에 물을 주는지가 곧 당신이 되어 갈 모습이라는 이야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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