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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상품 물신성은 사람들이 노동으로 맺은 관계가, 마치 물건 자체에 원래 값어치가 박혀 있는 것처럼 뒤바뀌어 보이는 착시예요. 값을 만든 건 사람인데, 값이 물건의 타고난 성질처럼 느껴지는 거죠.
마트에서 우유 한 팩을 집었다고 해볼게요.
팩에는 가격표가 붙어 있어요.
우리는 흔히 "이 우유는 원래 이만큼의 값어치가 있는 물건"이라고 느껴요.
값어치가 우유 안에 처음부터 들어 있는 것처럼요.
그런데 정말 그럴까요?
그 우유가 값을 가지려면 젖소를 키운 사람, 우유를 짜고 데운 사람, 팩을 만들고 트럭으로 실어 나른 사람이 있어야 해요.
값어치는 이 수많은 사람의 일과 관계에서 생겨난 거예요.
하지만 우리 눈에는 그 사람들이 안 보이고, 오직 "우유 대 가격표"만 보여요.
사람 사이의 관계가 물건 사이의 관계처럼 보이는 이 뒤바뀜을, 사회철학자 카를 마르크스(1818년부터 1883년까지 살았어요)는 «자본론» 제1권(1867년)에서 '상품의 물신성'이라고 불렀어요.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이렇게 시작해요.
"Der Reichtum der Gesellschaften, in welchen kapitalistische Produktionsweise herrscht, erscheint als eine ungeheure Warensammlung" — "자본주의적 생산양식이 지배하는 사회의 부는 하나의 거대한 상품 더미로 나타난다"는 뜻이에요.
여기서 눈여겨볼 낱말이 '나타난다(erscheint)'예요.
마르크스는 "부는 상품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지 않고, 부가 상품 더미로 "보인다, 나타난다"고 적었어요.
실제 알맹이와 우리 눈에 보이는 모습이 다를 수 있다는 신호를 처음부터 깔아 둔 거죠.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서로 물건을 사고팔 때만 관계를 맺어요.
그래서 정작 중요한 사람들의 노동은 뒤로 숨고, 물건과 가격만 앞에 나서요.
마르크스는 이 착시를 콕 집어내려 했어요.
'물신(物神)'은 물건을 신처럼 떠받든다는 말이에요.
옛날에 사람이 나무나 돌을 깎아 조각상을 만들고는, 그 조각상이 스스로 힘을 가진 신인 것처럼 절을 하는 모습을 떠올려 보세요.
힘을 준 건 사람인데, 사람은 자기가 만든 물건 앞에 도리어 무릎을 꿇어요.
상품도 똑같다는 게 마르크스의 생각이에요.
값어치를 만든 건 사람의 노동인데, 사람은 "이 물건은 원래 비싼 물건"이라며 값 앞에서 쩔쩔매요.
내가 만든 것이 나를 다스리는 것처럼 보이는 거죠.
그래서 마르크스는 종교의 비유를 즐겨 썼어요.
다만 이건 물건에 진짜 영혼이 들어 있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사회의 구조가 있다는 뜻이에요.
첫째, 상품 물신성은 "물건을 좋아하면 나쁘다"거나 "욕심이 많다"는 도덕 이야기가 아니에요.
개인이 착하냐 나쁘냐의 문제가 아니라, 시장에서 물건으로만 만나다 보니 누구에게나 자연스럽게 생기는 착시예요.
둘째, 마르크스의 다른 개념들과 헷갈리기 쉬워요.
예를 들어 노동이 사람에게 남처럼 느껴지는 '소외된 노동'이나, 사장이 노동의 몫을 가져가는 '잉여가치와 착취'는 상품 물신성과 이어져 있지만 서로 다른 주제예요.
여기서는 딱 하나, "사람들의 관계가 물건들의 관계처럼 보이는 착시"만 기억하면 돼요.
요즘 우리는 가격표를 보며 살아요.
"이 신발은 원래 이 값", "이 브랜드는 원래 이만큼"이라고 자연스럽게 느껴요.
그런데 그 값 뒤에는 어디선가 밤새 신발을 꿰맨 사람, 상자를 나른 사람이 있어요.
상품 물신성을 배우면, 물건 뒤에 숨은 사람들을 다시 떠올리게 돼요.
마르크스가 옳으냐 그르냐를 지금 다 판단할 필요는 없어요.
다만 값이 물건에 저절로 붙어 있는 게 아니라 사람들의 일과 관계에서 나온다는 시선 하나는, 물건이 넘치는 오늘날 꽤 쓸모 있는 안경이 되어 줘요.
상품 물신성은 사람들이 노동으로 맺은 관계가 물건과 가격 사이의 관계처럼 뒤바뀌어 보이는 착시예요.
값어치는 사람의 노동에서 나오는데, 우리 눈에는 물건이 원래부터 값을 지닌 것처럼 나타나죠.
마르크스는 자기가 만든 조각상을 신처럼 떠받드는 모습에 빗대 이걸 '물신'이라 불렀어요.
이건 욕심을 나무라는 도덕 이야기도, 물건에 영혼이 있다는 말도 아니에요.
물건 뒤에 숨은 사람을 다시 보게 하는 하나의 시선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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