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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하루 일해서 만든 가치 중에서, 임금으로 돌려받는 몫을 뺀 나머지예요. 자본가가 이 나머지를 아무 대가 없이 가져가는 구조를 마르크스는 착취라고 불렀어요.
여러분이 어느 빵집에서 하루 여덟 시간 일한다고 해볼게요.
그런데 놀랍게도, 여러분이 만든 빵을 팔아서 여러분의 하루치 임금을 다 벌어들이는 데는 딱 네 시간이면 충분해요.
그럼 나머지 네 시간 동안 만든 빵은요?
그 빵이 만들어 낸 가치는 여러분 지갑으로 오지 않고, 빵집 주인 몫이 돼요.
바로 이 '내가 만들었지만 내 임금에는 안 들어간 나머지 가치'가 잉여가치예요.
마르크스가 독일어로 쓴 말은 메어베르트(Mehrwert), 즉 '더 생긴 가치'라는 뜻이에요.
카를 마르크스(1818~1883년)는 «자본론» 제1권(1867년)에서 자본주의가 어떻게 굴러가는지를 파고들었는데, 그 핵심 장치가 바로 이 잉여가치였어요.
비밀은 노동자가 파는 것이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라는 데 있어요.
조금 어렵죠?
쉽게 말하면, 여러분은 하루 동안 '일할 수 있는 능력'을 빌려주고 그 값(임금)을 받는 거예요.
그런데 이 능력의 값은 여러분이 하루를 살아가는 데 드는 만큼으로 정해져요.
밥 먹고, 자고, 내일 또 일하러 나올 수 있을 정도요.
문제는, 사람이 하루에 만들어 내는 가치가 자기 하루 생활비보다 훨씬 크다는 점이에요.
그래서 하루 노동은 두 토막으로 나뉘어요.
| 구분 | 하는 일 | 누구 몫 |
|---|---|---|
| 필요노동시간 | 자기 임금만큼 벌어들이는 앞부분 | 노동자 |
| 잉여노동시간 | 임금 다 채우고도 더 일하는 뒷부분 | 자본가 |
앞의 빵집 예로 보면 네 시간이 필요노동, 뒤의 네 시간이 잉여노동이에요.
자본가의 이윤은 바로 이 잉여노동시간에서 나와요.
마르크스는 이 구조를 착취(Ausbeutung)라고 불렀어요.
여기서 많이들 오해해요.
착취라고 하면 월급을 떼먹거나 몰래 속이는 못된 사장이 떠오르죠.
하지만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는 그런 게 아니에요.
사장이 임금을 한 푼도 안 떼고 '정해진 값'을 정직하게 다 줘도, 잉여가치는 그대로 생겨요.
왜냐하면 노동력의 값(임금)과 노동력이 실제로 만들어 내는 가치가 처음부터 다르기 때문이에요.
그러니까 착취는 어느 개인의 못된 마음이 아니라, 임금을 주고 사람을 고용하는 이 방식 자체에 박혀 있는 구조라는 거예요.
마르크스가 파헤치려 한 건 나쁜 사장 한 명이 아니라, 이런 자본주의 시스템의 뼈대였어요.
마르크스의 이 분석이 100% 맞느냐를 두고는 지금도 논쟁이 이어져요.
실제로 «자본론»은 제1권만 마르크스 생전에 나왔고, 제2권(1885년)과 제3권(1894년)은 그가 죽은 뒤 친구 엥겔스가 정리해 펴냈어요.
그래서 오이겐 폰 뵘바베르크 같은 학자는 제1권의 가치 이론과 제3권의 이윤 이론이 서로 안 맞는다고 비판했고, 이 문제는 오늘날까지도 해석이 갈려요.
그래도 '내가 만든 가치'와 '내가 받는 돈' 사이의 간격을 한번 따져 보게 만든다는 점에서, 잉여가치라는 개념은 여전히 힘이 있어요.
아르바이트를 하든 회사를 다니든, 내 노동이 만든 것 중 얼마가 나에게 돌아오는지를 묻게 하니까요.
잉여가치는 노동자가 만든 가치에서 임금을 뺀 나머지고, 자본가는 이 나머지를 이윤으로 가져가요.
이때 노동자가 파는 것은 '노동'이 아니라 '노동력'이라서, 임금을 정직하게 다 줘도 이 나머지는 생겨요.
그래서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는 못된 사장의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 구조의 문제였어요.
이 이론은 지금도 논쟁 중이지만, '내가 만든 몫이 어디로 가는가'를 묻게 한다는 점만은 오래 남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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