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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라일은 '안다'에 두 종류가 있다고 봤어요. 사실을 머리에 담는 '~라는 걸 안다'와, 몸으로 해내는 '할 줄 안다'예요. 그리고 자전거 타는 법은 머릿속 지식이 아니라 직접 해 봐야 생기는 능력이라고 했어요.
수영하는 법을 책으로만 읽은 사람이 물에 들어가면 어떻게 될까요?
영국 철학자 길버트 라일은 바로 이런 장면에서 출발했어요.
그는 1949년에 펴낸 책 '마음의 개념'에서, 우리가 '안다'는 말을 너무 뭉뚱그려 쓴다고 콕 집어 말했어요.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안다'가 사실은 서로 다른 두 가지였다는 걸 알게 돼요.
라일은 '안다'를 두 갈래로 나눴어요.
하나는 '~라는 것을 안다(knowing-that)'예요. '물이 섭씨 백 도에서 끓는다는 걸 안다' 같은 거죠.
머리에 담아 두는 사실이에요.
다른 하나는 '할 줄 안다(knowing-how)'예요.
자전거를 탈 줄 알고, 김치찌개를 끓일 줄 아는 거예요.
재미있는 건 둘이 따로 논다는 점이에요.
자전거 타는 법을 입으로 줄줄 설명하는 사람도 막상 안장에 앉으면 넘어질 수 있어요.
반대로 멋지게 타는 아이에게 '어떻게 타는 거니?' 하고 물으면 '그냥 타요'라고 답하죠.
그 아이는 할 줄은 알지만 말로 옮기진 못해요.
| 구분 | 안다(knowing-that) | 할 줄 안다(knowing-how) |
|---|---|---|
| 뜻 | 사실을 머리에 담음 | 몸으로 해냄 |
| 예 | 물이 섭씨 백 도에서 끓는다는 걸 안다 | 자전거를 탈 줄 안다 |
| 확인하는 법 | 말로 설명해 보면 됨 | 직접 해 보면 됨 |
| 배우는 길 | 듣고 외워서 | 연습하고 익혀서 |
라일이 보기에 그동안 철학자들은 모든 앎을 윗줄, 그러니까 머릿속 사실로만 여겼대요.
하지만 우리 삶의 솜씨 대부분은 아랫줄에 있어요.
라일은 여기서 더 큰 싸움을 걸었어요.
당시 많은 사람은 '마음'을 몸 안에 들어 있는 보이지 않는 무언가라고 생각했어요.
그는 이걸 '기계 속 유령'이라고 비꼬았죠.
어디가 잘못됐을까요?
라일은 '범주 오류'라는 말을 만들어요.
비유를 들게요.
친구가 대학에 놀러 와서 강의실, 도서관, 운동장을 다 둘러봤어요.
그런데 '그래서 대학은 어디 있어?'라고 물어요.
대학은 그 건물들과 따로 있는 게 아니라, 그것들이 모여 이루는 거잖아요.
친구는 '대학'을 건물과 같은 종류로 착각한 거예요.
이게 범주 오류예요.
라일은 '마음'도 똑같다고 봤어요.
머리 안에 숨은 비밀의 방이 아니라, 우리가 똑똑하게, 조심스럽게, 재치 있게 행동하는 바로 그 방식이 곧 마음이라는 거죠.
그래서 마음을 안다는 건 결국 '할 줄 아는' 능력을 본다는 뜻이 돼요.
라일은 거창한 이론을 새로 짓기보다, 우리가 매일 쓰는 말을 찬찬히 뜯어봤어요. '안다', '믿는다', '주의한다' 같은 평범한 단어가 실제로 어떻게 쓰이는지 살피면 꼬였던 문제가 풀린다고 봤죠.
이런 방식을 일상언어 분석이라고 해요.
예를 들어 '주의 깊게 운전한다'는 말은 머릿속에서 '주의'라는 별도의 일을 따로 한다는 뜻이 아니에요.
그냥 천천히, 거울을 보며, 신호를 지키며 운전하는 그 모습 전체를 가리키죠.
보이지 않는 마음을 찾을 게 아니라, 눈에 보이는 행동의 방식을 보면 된다는 거예요.
라일은 '안다'를 둘로 나눠 보라고 했어요.
사실을 담는 앎과, 몸으로 해내는 앎이에요.
그리고 마음은 몸속에 숨은 유령이 아니라, 우리가 행동하는 솜씨와 방식이라고 봤죠.
다음에 누군가 '나 그거 알아'라고 하면 살짝 물어보세요.
사실을 아는 건지, 할 줄 아는 건지.
이 둘은 생각보다 자주 어긋나니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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