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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존 설은 말이 세상을 설명하는 도구일 뿐 아니라, 약속하고 명령하고 선언하는 '행동' 그 자체라고 본 철학자예요. 그는 말 한마디가 어떻게 현실을 바꾸는지를 평생 파고들었어요.

결혼식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주례가 "이제 두 사람은 부부입니다"라고 말하는 그 순간, 정말로 두 사람은 부부가 돼요. 이 문장은 어떤 사실을 설명한 게 아니에요. 말하는 행위 자체가 없던 현실을 새로 만들어 낸 거죠. 영국 철학자 J.L. 오스틴이 1950년대에 먼저 발견한 이 생각을, 그의 제자였던 미국 철학자 존 설(1932년생)이 훨씬 촘촘한 이론으로 다듬었어요. 설은 1969년에 펴낸 책 『언어 행위』에서, 우리가 입으로 내뱉는 거의 모든 문장이 사실은 하나의 '행동'이라고 못 박았어요. 말은 그저 공기를 울리는 소리가 아니라, 세상에 무언가를 일으키는 사건이라는 거예요.

"창문 좀 열어 줄래요?"라는 문장을 살펴볼게요. 글자만 보면 분명히 질문이에요. 하지만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창문을 열지 말지를 고민하지, '네, 열 수 있어요'라고 대답하지는 않죠. 겉모습은 질문인데 진짜 하는 일은 부탁인 거예요. 게다가 같은 문장도 누가 말하느냐에 따라 달라져요. 친구가 말하면 가벼운 부탁이고, 군대 상관이 말하면 명령에 가까워지죠. 설은 이렇게 말의 '겉모습'과 '진짜 하는 일'을 또렷이 구분했어요. 그리고 사람이 말로 하는 행동을 크게 다섯 갈래로 정리했어요. 사실을 주장하기, 무언가를 시키기, 약속하기, 감정을 드러내기, 그리고 선언하기예요. "비가 와요"는 첫째, "문 닫아"는 둘째, "도와줄게"는 셋째인 식이죠.

"내일 갚을게"라고 말하는 순간, 조금 전까지 없던 의무가 나에게 생겨요. 종이에 서명하지 않아도, 돈을 손에 쥐여 주지 않아도, 입 밖으로 낸 말이 나를 단단히 묶어요. 설은 이런 약속이야말로 말이 곧 행동이라는 가장 깔끔한 증거라고 봤어요. 그런데 여기엔 숨은 조건이 있어요. 약속은 혼자서는 성립하지 않는다는 점이에요. 듣는 사람이 그 말을 약속으로 받아들여야 하고, 그 사회가 '약속은 지키는 것'이라는 규칙을 함께 나눠야 비로소 효력이 생겨요. 혼잣말로 "갚을게"를 백 번 외쳐도 아무 의무가 안 생기는 이유가 여기 있어요. 말은 늘 사람과 사람 사이에 깔린 약속이라는 바닥 위에서만 작동하는 셈이에요.

1980년, 설은 아주 유명한 사고실험 하나를 내놨어요. 흔히 '중국어 방'이라고 불러요. 중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이 방 안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그 앞에는 "이런 모양의 기호가 들어오면 저런 모양의 기호를 내보내라"고 적힌 두꺼운 규칙책이 놓여 있어요. 밖에서 누군가 중국어로 쓴 질문을 종이에 적어 넣으면, 방 안의 사람은 규칙책만 뒤져서 알맞은 중국어 답을 척척 만들어 내보내요. 밖에서 보면 영락없이 중국어를 술술 아는 사람 같죠. 그런데 정작 본인은 자기가 뭘 주고받는지 한 글자도 이해하지 못해요. 설은 컴퓨터가 바로 이 방과 똑같다고 했어요. 규칙에 따라 기호를 빠르게 처리할 뿐, 그 뜻을 진짜로 '이해'하는 건 아니라는 거예요. 말의 진짜 의미는 규칙 너머에, 그 말로 무엇을 하려는 사람의 마음속에 있다는 그의 생각이 여기서도 그대로 이어져요.

존 설이 우리에게 건넨 깨달음은 의외로 단순해요. 말은 세상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세상에 무언가를 일으키는 손이라는 거예요. "부부입니다"라는 한마디가 부부를 만들고, "갚을게"라는 한마디가 의무를 만들어요. 그리고 규칙을 아무리 빠르고 정확하게 따라도 이해가 저절로 따라오지는 않는다는 중국어 방의 교훈은, 인공지능이 사람처럼 말하는 지금 오히려 더 묵직하게 다가와요. 다음에 누군가에게 말을 건넬 때, 내가 지금 말로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한 번쯤 떠올려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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