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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저녁 하늘이 빨갛게 물든 걸 보고 친구에게 말해 봐요. "하늘이 주황색이고 구름이 분홍빛이었어." 틀린 말은 아닌데, 그때 가슴이 살짝 먹먹했던 그 느낌은 이상하게 빠져나가요. 그런데 누가 그 노을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잔잔한 피아노곡으로 들려주면, 설명도 없이 그 먹먹함이 그대로 전해질 때가 있어요.
똑같은 노을인데 왜 말로 옮기면 새고, 그림이나 음악으로는 통째로 건너올까요? 이 수수께끼를 평생 파고든 철학자가 있어요. 바로 수전 랭어예요.

수전 랭어는 미국 사람으로, 1895년부터 1985년까지 아흔 살을 꽉 채워 살았어요. 미국에서 철학으로 이름을 얻은 여성 철학자가 손에 꼽히던 시절에 활동했고, 카시러와 화이트헤드 같은 선생들의 생각을 이어받았어요.
그가 1942년에 낸 책은 어려운 철학책인데도 보기 드물게 많이 팔렸어요. 거기서 던진 질문이 이거예요. 사람은 어떻게 '상징'으로 생각하고 마음을 나눌까. 여기서 상징이란 거창한 게 아니라, 어떤 것을 대신 가리키는 모든 표시예요. '사과'라는 글자도, 빨간 하트 그림도 다 상징이지요. 랭어는 이 상징이 한 종류가 아니라 크게 두 갈래라고 봤어요.

첫 번째는 우리가 쓰는 '말'이에요. 랭어는 이걸 논증적 상징이라고 불렀는데, 어려우면 '줄줄이 꿰는 상징'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말은 구슬을 실에 꿰듯 한 단어씩 차례로 늘어놔야 뜻이 생겨요. "나는 사과를 먹었다"는 단어 순서를 바꾸면 뜻이 망가지지요. 또 말에는 사전이 있어요. 단어 하나하나에 정해진 뜻이 있고, 그래서 다른 나라 말로 옮길 수도 있어요. '사과'를 영어 'apple'로 바꾸는 것처럼요.
이런 말은 정확해서 좋아요. 길 찾기, 약속, 과학 같은 건 다 말로 또박또박 풀어야 하지요. 하지만 한 줄로 세워야 한다는 바로 그 점 때문에, 한꺼번에 밀려오는 느낌은 잘 못 담아요.

두 번째는 그림, 음악, 춤 같은 예술이에요. 랭어는 이걸 현시적 상징, 쉽게 말해 '한눈에 보여 주는 상징'이라고 했어요.
친구 얼굴을 떠올려 봐요. 우리는 "눈썹이 먼저, 그다음 코" 이렇게 부분을 차례로 읽어서 누구인지 아는 게 아니에요. 얼굴 전체가 한 번에 들어와서 단번에 알아보지요. 그림이나 음악도 똑같아요. 부분을 떼어 사전에서 뜻을 찾을 수가 없어요. 노을 그림에서 분홍 구름 한 조각만 오려 내면 '분홍 구름'이라는 정해진 뜻이 남는 게 아니라, 그냥 의미가 흩어져 버려요. 전체가 한 덩어리로 있을 때만 무언가를 말하거든요.
그래서 예술은 번역이 안 돼요. 슬픈 곡을 들려주는 대신 말로 풀어 주겠다고 아무리 떠들어도, 그 곡이 주던 느낌은 고스란히 옮겨지지 않아요.

여기서 랭어의 가장 멋진 생각이 나와요. 예술은 그냥 예쁜 장식이나 기분 풀이가 아니라는 거예요. 예술은 말이 못 담는 것을 담는 또 하나의 '상징의 논리'라는 거죠.
우리 마음속 느낌은 흐르고, 부풀고, 가라앉아요. 한 줄로 세운 말로는 이 출렁임을 그대로 못 옮겨요. 그런데 음악의 높낮이나 그림의 색과 선은 그 출렁이는 모양을 닮은 꼴로 보여 줄 수 있어요. 랭어는 그래서 예술을 '인간 느낌의 모양을 보여 주는 상징'이라고 했어요. 예술은 느낌을 터뜨리는 게 아니라, 느낌이 어떤 모양인지 우리가 알아보게 해 주는 거예요.
이 생각은 미학, 그러니까 아름다움을 따지는 철학과, 마음을 다루는 철학에 큰 흔적을 남겼어요. 예술을 그저 말보다 못한 것으로 깔보지 않고, 말과는 다른 방식으로 '아는' 길이라고 자리를 잡아 줬으니까요.

수전 랭어는 사람이 두 가지 상징으로 세상을 붙든다고 봤어요. 하나는 구슬처럼 한 단어씩 꿰는 '말'이라, 정확하지만 한 줄로 세워야 해요. 다른 하나는 그림과 음악처럼 한눈에 통째로 들어오는 '예술'이라, 사전으로 쪼갤 수 없고 번역도 안 돼요. 노을을 말로 옮기면 느낌이 새고 음악으로는 통째로 건너오던 이유가 여기 있어요. 그래서 예술은 말의 아랫것이 아니라, 말이 못 담는 느낌의 모양을 보여 주는 또 다른 논리예요. 다음에 어떤 노래가 설명 없이 마음을 건드리거든, 지금 두 번째 상징이 일하는 중이라고 떠올려 보면 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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