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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고 해볼게요. "내 방에는 용이 한 마리 살아. 그런데 이 용은 눈에 보이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고, 소리도 안 나." 신기해서 "그럼 어떻게 있는 줄 알아?" 하고 물으면, 친구는 "그건 어떤 방법으로도 확인할 수 없어"라고 답해요.
자, 이 말은 참일까요, 거짓일까요? 곰곰이 따져 보면 우리는 답을 낼 방법이 아예 없어요. 눈으로 봐도 소용없고, 손을 뻗어도 소용없고, 아무리 좋은 기계를 가져와도 소용없으니까요. 분명 또박또박한 한국어 문장인데, 우리가 붙잡고 따져 볼 거리가 하나도 없는 거예요.
이 묘한 느낌, 바로 이 지점을 평생 파고든 철학자가 있어요. 그는 이런 문장을 보고 "이건 틀린 말이 아니라, 사실은 아무 뜻도 없는 말"이라고 했어요. 좀 과격하게 들리죠? 왜 그렇게 봤는지 차근차근 따라가 볼게요.

그 사람은 영국 철학자 A.J. 에이어예요. 1910년에 태어났고, 스물다섯 살이던 1936년에 '언어, 진리, 논리'라는 책을 펴냈어요. 200쪽이 조금 넘는 얇은 책인데, 영국 철학계를 한동안 들썩이게 만들었죠. 이렇게 젊은 학자가 쓴 책이 이만한 파장을 일으키는 일은 흔치 않아요.
에이어는 책을 쓰기 몇 해 전, 오스트리아 빈으로 건너가 그곳 학자들 모임에 끼어 앉아 있었어요. 빈 학파라고 불리던 이 사람들은 "말이 뜻을 가지려면 도대체 무엇이 필요한가"를 두고 골몰하고 있었어요. 에이어는 그 생각에 푹 빠졌고, 영국으로 돌아와 누구나 읽을 만한 또렷한 문장으로 정리해 냈어요. 어려운 독일어 논의를 영어권 사람들 손에 쥐여 준 셈이죠.

에이어의 핵심 생각은 의외로 단순해요. 어떤 문장이 진짜 '뜻'을 가지려면, 두 개의 체 중 적어도 하나는 통과해야 한다는 거예요. 부엌에서 가루를 거르는 체를 떠올리면 돼요.
첫째 체는 '뜻을 풀어 보면 저절로 참인 말'이에요. "삼각형은 변이 세 개다" 같은 문장이죠. 이건 확인하러 밖에 나갈 필요가 없어요. 삼각형이라는 말 안에 이미 답이 들어 있으니까요. "총각은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도 마찬가지고요. 수학과 논리가 여기에 들어가요.
둘째 체는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말'이에요. "지금 밖에 비가 와" 같은 문장이죠. 창문을 열어 보면 맞는지 틀린지 바로 알 수 있어요. 눈, 코, 귀, 손으로 언제든 확인할 길이 트여 있으면 통과예요. 설령 지금 당장 못 봐도, 어떻게 확인할지 그 방법만 그릴 수 있으면 돼요.
그럼 두 체를 모두 빠져나간 문장은 어떻게 될까요? 에이어는 그건 거짓이 아니라 '뜻이 없는 말'이라고 했어요. 틀린 게 아니라, 애초에 참인지 거짓인지 따질 거리조차 안 된다는 거죠. 맨 앞의 보이지 않는 용 이야기처럼요.

이 잣대를 들이대면 곤란해지는 말이 꽤 많아요. 예를 들어 "세상 너머에 눈에 보이지 않는 절대적인 정신이 있다" 같은 형이상학 문장은, 감각으로는 도무지 확인할 방법이 없어요. 에이어는 이런 말을 두고 틀렸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 대신 뜻 자체가 비어 있다고 봤죠. 신이 있다는 말도, 없다는 말도 똑같이 확인 밖이라 양쪽 다 뜻이 없다고 했어요.
옳고 그름을 말하는 문장도 비슷하게 다뤘어요. "거짓말은 나빠"라는 말을 두고, 에이어는 이게 세상의 어떤 사실을 가리키는 게 아니라고 했어요. 그보다는 "거짓말, 우웩!" 하고 내 기분을 소리 내는 것에 더 가깝다고요. 도덕이란 사실을 보고하는 게 아니라 감정을 드러내는 일이라는 거예요. 좀 차갑게 들리죠? 많은 사람이 반발했지만, 그는 이 입장을 끝까지 밀고 갔어요.

에이어의 잣대는 안개처럼 흐릿한 말들을 싹 걷어 내는 칼 같았어요. "그건 확인할 수 있는 말이야?" 이 한 마디가 끝없이 빙빙 돌던 토론을 또렷하게 정리해 줬거든요. 그 덕분에 영국 철학은 거창한 주장을 펴기보다, 말과 논리를 깐깐하게 따지는 쪽으로 무게가 기울었어요.
그런데 이 칼에는 꽤 유명한 흠이 하나 있어요. "확인할 수 있어야 뜻이 있다"라는 그 원리 자체를 한번 생각해 보세요. 이 말은 뜻을 풀어 저절로 참인 것도 아니고,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에요. 그러면 자기 잣대로 자기를 재면, 그 원리마저 '뜻이 없는 말'이 되어 버려요. 에이어도 세월이 지난 뒤, 이 원리에 약점이 많았다고 솔직히 인정했어요.

에이어는 "어떤 말이 뜻을 가지려면, 풀어 보면 저절로 참이거나 감각으로 확인할 수 있어야 한다"는 단순한 잣대 하나로 철학을 흔든 사람이에요. 그 잣대는 흐릿한 말을 걷어 내는 데는 날카로웠지만, 정작 자기 자신은 통과하지 못하는 흠도 함께 안고 있었죠. 그래도 "이 말, 정말 확인할 수 있나?"라고 한 번 되묻는 습관만큼은, 오늘 우리가 뉴스나 광고를 들을 때에도 꽤 쓸모가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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