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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이 말, 한 번쯤 들어 봤을 거예요. 학교 칠판이나 역사책 첫 장에 자주 적히는 문장이죠. 그런데 이 말을 처음 한 사람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의외로 드물어요. 바로 조지 산타야나예요. 스페인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자란 철학자죠. 이름은 낯설어도, 그가 남긴 한 문장은 백 년 넘게 살아남아 지금도 우리 곁에 있는 셈이에요. 오늘은 이 한 문장 뒤에 어떤 사람이 있었는지 천천히 따라가 볼게요.

산타야나는 1863년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태어났어요. 여덟 살 때 가족을 따라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갔죠.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아이가 낯선 나라에서 새 언어를 처음부터 배운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는 자라서 미국에서 손꼽히는 대학인 하버드에서 철학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돼요. 스무 해 넘게 학생들을 가르쳤는데, 그 제자 중에는 훗날 노벨문학상을 받는 시인 티 에스 엘리엇도 있었어요. 두 나라, 두 언어 사이에서 산 덕분에 그는 어느 쪽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가졌어요.

산타야나 철학의 한 축은 '자연주의'예요. 어려운 말 같지만 뜻은 단순해요. 세상에 진짜로 있는 건 자연, 그러니까 물질뿐이라는 거예요. 우리 생각도, 마음도, 사랑도 다 몸과 자연에서 자라난다고 봤어요. 꽃이 흙에서 피어나는 것처럼요. 흙 없이 꽃만 공중에 떠 있을 수 없듯, 몸과 세상이라는 바탕 없이 마음만 따로 존재하지는 않는다는 거죠. 신비한 영혼이 어딘가에 둥둥 떠 있는 게 아니라, 살아 있는 몸이 있어서 마음도 생긴다는, 꽤 담담한 생각이에요.

여기서 재미있는 고민이 생겨요. 빨간 사과를 볼 때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빨강'이라는 느낌, 그건 도대체 뭘까요? 사과는 만질 수 있는 물질이지만, '빨강 그 자체'는 만질 수도 무게를 잴 수도 없어요.
옛날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이런 완벽한 '빨강'이나 '동그라미'가 어딘가 진짜 세계에 따로 존재한다고 믿었어요. 산타야나는 이걸 '본질'이라 부르며 비슷하게 보았지만, 한 가지를 비틀었어요. 그런 본질이 어딘가에 진짜로 '있는' 건 아니라고요. 그건 힘도 없고 무게도 없이, 그저 우리 마음에 떠오르는 그림일 뿐이라는 거예요. 플라톤을 따르되 한 발 물러서서 의심했다고 해서, 이런 태도를 '회의적 플라톤주의'라고 불러요.

산타야나는 의심을 끝까지 밀어붙이면 묘한 곳에 닿는다고 했어요. 사실 우리는 바깥 세상이 진짜로 있다는 걸 완벽히 증명할 수 없어요. 지금 이 순간이 아주 길고 생생한 꿈이 아니라고 어떻게 확신하겠어요?
그런데도 우리는 아침마다 일어나 밥을 먹고 길을 걸어요. 왜일까요? 증명을 끝내서가 아니라, 그냥 믿기 때문이에요. 강아지가 땅을 의심하지 않고 신나게 달리는 것처럼요. 산타야나는 이걸 '동물적 믿음'이라고 불렀어요. 우리는 머리로 따지기 전에 이미 몸으로 세상을 믿고 살아가는 동물이라는 거죠. 똑똑한 척 의심만 하다 멈추는 게 아니라, 그 의심을 솔직히 인정한 다음 다시 평범하게 살아가는 태도예요.

산타야나는 마흔여덟 살이던 1912년, 잘나가던 하버드 교수 자리를 스스로 내려놨어요. 어머니에게 물려받은 돈으로 검소하게 살 수 있게 되자, 안정된 직장 대신 자유를 골라 유럽으로 떠난 거예요. 그 뒤로 미국에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어요. 말년에는 로마의 한 수녀원에서 수녀들의 돌봄을 받으며 글을 쓰다가, 1952년 여든여덟 나이로 세상을 떠났죠. 평생 어느 나라에도, 어느 직장에도 매이지 않고 한 발짝 떨어져 생각하는 삶을 택한 사람이었어요.

조지 산타야나는 두 가지를 한 손에 쥔 철학자예요. 세상에 진짜 있는 건 물질과 자연뿐이라는 담담한 생각인 자연주의와, '빨강 그 자체' 같은 본질은 마음에 떠오를 뿐 따로 존재하진 않는다는 의심인 회의적 플라톤주의를요. 그러면서도 그는 세상을 못 미더워하며 멈춰 서지 않았어요. 증명하지 못해도 우리는 동물처럼 세상을 믿고 살아가니, 그 믿음 위에서 차분히 살면 된다고 말했죠. 다음에 "과거를 기억 못 하는 사람은 그것을 되풀이한다"는 문장을 보면, 한 발 떨어져 세상을 바라보던 이 사람을 떠올려 봐도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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