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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존 롤스는 처음부터 정의의 철학자가 되려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한때 그는 성공회 성직자가 되는 길을 생각했어요.
쉽게 말해, 대학생 롤스의 머릿속에는 “나는 신을 섬기며 살아갈 수도 있겠구나”라는 인생 계획표가 있었던 셈이에요.
그런데 그 계획표가 전쟁터에서 찢겨요.
제2차 세계대전은 나라들이 전 세계를 무대로 싸운 거대한 전쟁이에요.
롤스는 그 전쟁에 참전한 뒤 신앙을 잃고, 철학으로 방향을 틀어요.
이 대목이 이상하게 강하게 남아요.
공정한 사회를 설계한 사람의 출발점이 조용한 도서관이 아니라 전쟁터였다는 사실 말이에요.
그는 처음부터 “정의란 무엇인가”를 멋지게 말하려던 사람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이런 쪽에 가까워요.
“내가 믿고 있던 기준이 무너졌다면, 이제 무엇을 기준으로 살아야 하지?”
그래서 롤스의 철학은 시험 문제처럼 시작되지 않아요.
진로를 정해 놓은 사람이 어느 날 삶의 기준표를 다시 쓰는 장면에서 시작돼요.
목사가 되려던 청년이 전쟁을 지나며 묻기 시작한 거예요.
“사람들이 함께 사는 규칙은 대체 어떻게 정해야 하지?”

전쟁터에서 롤스가 본 것은 용기만이 아니라 운의 잔인함이었어요.
같은 부대에 있어도 누군가는 살아남고, 누군가는 돌아오지 못해요.
그 차이가 늘 노력이나 성격으로 설명되지는 않아요.
롤스는 태평양 전쟁에서 보병으로 복무했어요.
보병은 전쟁에서 직접 땅을 밟고 이동하며 싸우는 병사예요.
멀리서 지도를 보는 사람이 아니라, 죽음이 바로 옆에 있는 자리였죠.
그 경험은 나중에 그의 질문을 바꿔요.
“누가 더 열심히 살았나”만 묻는 질문으로는 부족하다는 걸 본 거예요.
왜냐하면 삶에는 내가 고르지 않은 출발선이 너무 많으니까요.
태어난 집, 몸의 재능, 부모의 돈, 사는 나라, 만나는 선생님.
이런 것들은 시험장에서 연필을 들기 전에 이미 주어진 조건이에요.
그런데 우리는 너무 자주 결과만 보고 “네가 잘했네, 네가 못했네”라고 말해요.
롤스가 붙든 문제는 바로 그 지점이에요.
“내가 지금 가진 것이 전부 내 공로일까?”
이 질문은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어요.
하지만 그 불편함이 롤스를 앞으로 밀어요.
전쟁은 그에게 인간이 얼마나 쉽게 우연에 흔들리는지 보여줬어요.
그래서 그는 공정함을 말할 때, 착한 마음보다 먼저 운을 의심하기 시작해요.

롤스의 가장 유명한 아이디어는 더 똑똑해지는 법이 아니라 잠시 자신을 잊는 법이었어요.
공정한 사회를 만들려면 정보를 더 모아야 할 것 같잖아요.
그런데 롤스는 반대로 말해요. “네가 누구인지 잠깐 모른다고 해보자.”
이 아이디어가 무지의 베일이에요.
무지의 베일은 자기 계급, 재능, 성별, 재산, 태어난 집을 모른다고 가정하는 생각 실험이에요.
생각 실험은 실제로 실험실에서 하는 게 아니라, 머릿속에서 조건을 바꿔보는 방법이에요.
비유하면 케이크 자르기예요.
친구들과 케이크를 나누는데, 내가 어느 조각을 받을지 몰라요.
그러면 이상하게도 가장 공정하게 자르게 돼요.
왜냐하면 큰 조각을 몰래 내 쪽으로 빼둘 수 없으니까요.
내가 마지막 조각을 받을 수도 있거든요.
그래서 칼을 든 사람은 갑자기 신중해져요.
롤스는 이 장면을 사회 전체로 키워요.
“네가 부잣집 아이인지, 가난한 집 아이인지 모른다면 어떤 학교 제도를 고를래?”
“네가 건강한 사람인지, 아픈 사람인지 모른다면 어떤 병원 제도를 고를래?”
이 질문이 무서운 이유는 간단해요.
우리가 평소에 공정하다고 말하던 규칙이 사실은 내 자리에서만 편한 규칙일 수 있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정의론』은 단순한 철학책이 아니라 자리 바꾸기 장치에 가까워요.
『정의론』은 1971년에 나온 롤스의 대표 저작이에요.
이 책에서 그는 사회의 규칙을 정하려면 먼저 자기 이름표를 떼어보라고 해요.
부자, 남자, 여자, 재능 있는 사람, 건강한 사람, 다 지운 뒤에 남는 질문을 보라는 거예요.

롤스의 정의는 착한 마음이 아니라 규칙을 고르는 방식에서 시작됐어요.
그는 “모두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말한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불평등이 있을 수 있다는 점을 알아요.
하지만 조건이 붙어요.
그 불평등이 가장 불리한 사람에게도 도움이 될 때만 괜찮다는 거예요.
이게 롤스가 말한 정의의 핵심 중 하나예요.
게임으로 바꿔보면 바로 느껴져요.
축구 경기 규칙을 정해야 하는데, 아직 내가 강팀인지 약팀인지 몰라요.
그러면 강팀만 유리한 규칙을 만들기는 어려워져요.
“몸싸움은 무조건 허용하자”라고 말하려다 멈칫할 거예요.
내가 작고 약한 팀일 수도 있으니까요.
“심판은 강팀 주장 말만 듣자” 같은 규칙은 더더욱 고르기 힘들어요.
롤스가 원한 건 바로 그 멈칫함이에요.
사회 규칙을 만들기 전에 자신이 어디에 태어날지 모르게 만들면, 사람들은 최악의 자리도 생각하게 돼요.
그제야 규칙은 힘센 사람의 취향이 아니라 모두가 견딜 수 있는 약속에 가까워져요.
여기서 중요한 반전이 있어요.
롤스는 가난한 사람을 불쌍히 여기자고만 말하지 않아요.
그는 “네가 그 자리에 태어났을 수도 있잖아”라고 말하는 쪽에 가까워요.
그래서 그의 정의는 감정에 기대지 않아요.
동정심이 식어도 남아 있을 규칙을 찾으려 해요.
내가 어느 집 문을 열고 태어날지 모른다면, 나는 어떤 사회를 고를까.
롤스가 전쟁 뒤에 붙든 질문은 결국 여기까지 와요.
삶은 우연으로 흔들리지만, 사회의 규칙마저 우연을 편들 필요는 없다는 것.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규칙들은, 베일 뒤에서도 고를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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