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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숫자의 계산과 도형의 모양은 전혀 다른 세계인 줄 알았지만, 마이클 아티야는 이 둘이 사실 쌍둥이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그는 방정식의 정답이 몇 개인지는 사실 그 방정식이 그려내는 공간이 어떻게 생겼는지에 달려 있다는 기막힌 연결고리를 찾아냈거든요.
이것이 바로 현대 수학의 가장 위대한 업적으로 꼽히는 아티야-싱어 지표 정리입니다.
아티야-싱어 지표 정리는 대수학이라는 '숫자의 언어'와 기하학이라는 '모양의 언어'를 하나로 통합한 일종의 통번역 장치입니다.
쉽게 말해 도넛에 구멍이 몇 개인지를 세는 것만으로도 아주 복잡한 물리 방정식의 해를 구할 수 있게 된 것이죠.
당시 사람들은 이 발견을 두고 "수학의 대륙 두 개를 잇는 거대한 다리가 놓였다"며 경악했습니다.
이 발견은 단순히 종이 위의 수학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사는 우주의 비밀을 푸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현대 물리학의 핵심인 초끈 이론도 이 정리가 없었다면 이론적 토대를 세우기 훨씬 어려웠을 것입니다.
초끈 이론은 우주의 가장 기본 단위가 점이 아니라 진동하는 아주 작은 끈이라고 보는 현대 물리학의 가설입니다.
아티야는 "수학은 파편화된 조각이 아니라, 하나의 거대한 생명체와 같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며 학문의 경계를 허물었습니다.

수학자와 물리학자는 같은 우주를 연구하면서도 서로의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다른 부족과 같았지만, 아티야는 그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습니다.
그는 추상적인 수식에만 매몰되어 있던 수학자들에게 "물리학자들의 직관 속에 정답이 있다"며 새로운 길을 제시했습니다.
동시에 수학적 엄밀함이 부족했던 물리학자들에게는 정교한 수학의 칼날을 쥐여주었죠.
그 덕분에 에드워드 위튼 같은 천재 물리학자가 수학계의 노벨상인 필즈상을 받는 전무후무한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에드워드 위튼은 현대 물리학의 황제로 불리는 인물로, 아티야의 도움을 받아 물리학 이론으로 수학의 난제들을 해결했습니다.
아티야는 이들 사이를 오가며 지식을 연결하는 '수학계의 교황'이자 가장 뛰어난 외교관 역할을 자처했습니다.
그가 보여준 소통의 능력은 단순히 매너가 좋아서가 아니라 수학의 본질이 연결에 있다는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진정한 발견은 서로 다른 두 아이디어가 충돌할 때 일어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죠.
그래서 그의 주변에는 항상 전 세계에서 몰려온 젊은 천재들이 북적였습니다.
그는 복잡한 수식보다 "이게 어떤 의미인지 그림으로 그려보게"라는 질문을 던지며 제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했습니다.

여든아홉 살의 노학자가 전 세계 수학자들 앞에서 "160년 된 난제를 풀었다"고 선언했을 때, 현장은 얼음물이라도 끼얹은 듯 조용해졌습니다.
그가 도전한 것은 수학의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리만 가설이었습니다.
리만 가설이란 소수, 즉 1과 자신으로만 나눠지는 숫자들의 불규칙한 행진 속에 숨겨진 완벽한 규칙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 가설이 풀리면 현대 보안 시스템의 근간인 암호 체계가 통째로 무너질 수도 있을 만큼 엄청난 파급력을 가졌습니다.
수많은 천재가 이 벽에 부딪혀 정신을 잃거나 학문적 생명을 다했지만, 아티야는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 괴물과 마주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2018년 독일의 강연장에서 "나는 이제 명성을 잃을까 봐 두려워할 나이가 아니다"라며 당당하게 단상에 올랐습니다.
아티야는 수천 장의 계산 서류 대신 직관이라는 단 몇 장의 아이디어로 승부수를 던졌습니다.
물리학의 미세 구조 상수를 수학적으로 정의하면 리만 가설이 자연스럽게 풀린다는 파격적인 주장이었습니다.
미세 구조 상수는 우주의 기본 힘인 전자기력이 얼마나 강한지를 나타내는 물리량입니다.
비록 수많은 학자가 그의 증명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했지만, 아티야는 끝까지 자신의 눈에 보이는 진리의 빛을 믿었습니다.

아티야의 마지막 증명은 결국 수학계에서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지만, 사람들은 그를 비웃는 대신 뜨거운 박수를 보냈습니다.
아흔에 가까운 나이에도 "아직 모르겠다"는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멈추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미 모든 것을 이룬 거장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오류 가능성 앞에 기꺼이 몸을 던졌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남긴 진짜 유산은 '맞느냐 틀리느냐'의 결과가 아니라 끝까지 질문을 던지는 용기 그 자체였습니다.
아티야는 생전 인터뷰에서 "수학자는 죽을 때까지 학생이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의 도전은 후배 수학자들에게 난공불락의 요새였던 리만 가설을 다시금 바라보게 만드는 강력한 영감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정답을 맞춰야만 가치 있는 삶이라고 생각하지만, 아티야의 삶은 그렇지 않다고 말해줍니다.
때로는 실패할 것을 알면서도 그 길을 걷는 사람만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사실을 그는 온몸으로 보여주었죠.
강연장에서 내려오던 그의 굽은 등은 "당신은 지금 무엇을 향해 질문을 던지고 있는가"라고 묻는 듯했습니다.
그의 삶은 이제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도 당신만의 리만 가설에 도전할 준비가 되었나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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