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1989년, 드레스덴의 두 살배기는 아무것도 몰랐어요.
하지만 그 아이는 훗날 수학이라는 학문 안의 보이지 않는 장벽을 허물게 돼요.
페터 숄츠는 1987년 동독의 도시 드레스덴에서 태어났어요.
동독은 냉전 시대 소련 편이었던 독일의 절반이에요. 장벽이 무너지고 독일이 하나가 됐지만, 동쪽과 서쪽 사이의 사회적 격차는 한동안 남아 있었어요.
그런데 수학은 출신지를 묻지 않았어요.
교과서만 있으면 누구든 같은 출발선에 설 수 있거든요.
숄츠는 고등학생 시절, 학원 한 번 안 다니고 혼자 대학 수학 교재를 독파했어요.
학원 없이 독학으로 대학원 수준 수학을 정복한 셈이에요.
그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어요. 국제수학올림피아드(IMO)에서 금메달을 세 번 땄어요.
IMO는 고등학생 대상 세계 최고 수학 대회예요. 한 번 입상해도 전국에 이름이 알려지는 무대죠.

수학에는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 대륙들이 있어요.
24세의 박사과정 학생이 그 대륙들 사이에 다리를 놓았을 때, 수학계는 경악했어요.
숄츠는 2012년, 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어요.
그 논문에서 내놓은 개념이 '퍼펙토이드 공간(perfectoid spaces)'이에요.
낯선 이름이지만 하는 일은 단순해요. 수십 년간 따로 발전해온 세 분야, 즉 대수기하학·수론·위상수학을 하나로 잇는 언어를 만든 거예요.
비유하면 이래요.
서울·부산·제주 지사가 10년째 따로 쓰던 전산 시스템을, 신입사원이 수습 기간에 하나로 통합하는 플랫폼을 만들어버린 것과 같아요.
그것도 첫 프로젝트에서.
보통 수학자는 평생 한 분야에서 작은 벽돌 하나를 쌓는 것도 대단한 성취예요.
그런데 숄츠는 분야 자체를 새로 만들어버렸어요.
같은 해, 그는 본 대학교 정교수로 임용되며 독일 역사상 최연소 정교수 기록을 세웠어요. 그의 강의실에는 그보다 나이 많은 학생들이 앉아 있었어요.

보통 정상에 오르면 깃발을 꽂아요.
페터 숄츠는 정상에서 삽을 들었어요. 산 자체를 다시 쌓기 위해서.
2018년, 숄츠는 필즈상(Fields Medal)을 받았어요.
4년에 한 번, 40세 이하 수학자에게만 주는 상이에요. 수학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죠.
수상 당시 그는 30세였어요.
대부분의 학자는 최고 영예를 받으면 그 업적을 다듬고 확장하는 데 남은 경력을 써요.
숄츠는 정반대로 움직였어요.
수상 직후, 수학자 더스틴 클라우센과 함께 '응축 수학(condensed mathematics)'이라는 또 다른 프레임워크를 구축하기 시작했어요.
응축 수학은 기존 수학의 기초 구조 자체를 재설계하려는 시도예요.
벽돌 하나를 바꾸는 게 아니라, 건물의 설계 도면 자체를 새로 그리는 작업이에요.
올림픽 금메달을 딴 선수가 시상대에서 내려오자마자 "종목 규칙 자체를 바꿔야 해요"라고 말한 것과 같아요.
이미 증명된 것을 더 근본적으로 다시 묻는 태도. 그것이 숄츠를 숄츠이게 만드는 것이었어요.

"이 증명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세계 최고의 수학자가 인터넷에 이 문장을 올렸을 때, 수학계는 술렁였어요.
2020년, 숄츠는 클라우센과 함께 작성한 응축 수학의 핵심 증명에 확신이 없었어요.
그래서 그는 전 세계 수학자들에게 공개 검증을 요청했어요.
단순히 "봐주세요"가 아니었어요. 컴퓨터가 한 줄씩 검증하는 린(Lean)이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형식 증명 커뮤니티 전체의 힘을 빌린 거예요.
린은 수학 증명을 컴퓨터 언어로 번역해서 기계가 논리적 오류 없이 맞는지 확인하는 도구예요.
베스트셀러 작가가 자기 원고를 AI에 돌리는 정도가 아니라, 전 세계에 공개하고 "틀린 곳 찾아주세요"라고 말한 것과 같아요.
그것도 수십 년 경력의 수학계 최고 권위자가.
수학자의 권위는 "내 증명은 맞다"는 확신에서 나와요.
숄츠는 그 권위를 스스로 내려놓았어요.
그리고 기계에게 판단을 맡겼어요.
'리퀴드 텐서 실험(Liquid Tensor Experiment)'이라 불린 이 프로젝트는 약 1년 만에 결론을 냈어요.
증명은 완벽히 맞았어요.
하지만 더 중요한 건 그 과정이었어요. 이 실험은 형식 증명이라는 분야, 즉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수학을 검증하는 방법론의 가능성을 전 세계에 입증했어요.
숄츠는 틀리지 않았다는 걸 증명한 게 아니라, 앞으로 수학이 어떻게 검증되어야 하는지를 보여줬어요.
장벽을 넘는 것, 대륙을 잇는 것, 정상에서 다시 파는 것, 그리고 자신을 의심하는 것.
그 모든 것이 수학이라는 언어로 가능하다는 걸, 드레스덴의 두 살배기는 결국 전 세계에 증명해냈어요.
그렇다면 다음에 그가 의심할 것은 무엇일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0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