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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녀가 채용된 이유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었다.
1960년, 루이스 리키는 고민에 빠져 있었다.
아프리카에서 수십 년간 인류의 화석을 캐온 이 고인류학자는, 이번엔 살아있는 침팬지를 연구할 사람이 필요했다.
그런데 그가 고른 사람은 26세의 비서였다.
대학 학위가 없었다.
현장 경험도 없었다.
과학 훈련을 받은 적도 없었다.
과학계는 들고 일어났다.
"전문가를 보내야 한다", "이건 연구가 아니라 관광이다"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하지만 리키가 원한 건 정확히 그것이었다.
리키의 논리는 이랬다.
"과학 훈련을 받은 사람은 이미 동물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를 배운 사람이다.
그 눈으로 보면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면접에서 '경력 없음'이 탈락 사유가 되는 세상에서, 제인 구달은 경력이 없기 때문에 선택받았다.
자격 미달이 곧 자격 조건이었다.

침팬지 한 마리가 나뭇잎을 뜯는 동작 하나로, 교과서 속 '인간'의 정의가 쓸모없어졌다.
1960년 11월의 일이었다.
구달은 탄자니아 곰베 숲에서 침팬지 한 마리를 몇 달째 추적하고 있었다.
그녀가 이름을 붙인 첫 번째 침팬지,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였다.
그날 데이비드는 나뭇가지를 골랐다.
잎을 하나하나 뜯어냈다.
그리고 그 맨 가지를 흰개미 굴 속에 집어넣었다가 천천히 꺼내 붙은 흰개미를 핥아먹었다.
도구를 '사용'한 게 아니었다.
처음부터 목적에 맞게 '제작'한 것이었다.
당시 인간의 공식 정의는 '도구를 만드는 동물'이었다.
그 정의가 5분 만에 무너졌다.
구달이 이 소식을 전보로 보내자, 리키의 답장이 왔다.
"이제 우리는 도구를 재정의하든, 인간을 재정의하든, 아니면 침팬지를 인간으로 받아들이든 해야 합니다."
요리를 할 줄 아는 존재는 인간뿐이라고 굳게 믿었는데, 옆집 고양이가 라면을 끓이는 걸 목격한 충격이라고 보면 된다.
오늘날 동물행동학 교과서는 그 충격을 기점으로 다시 쓰였다.

케임브리지 교수들은 그녀에게 말했다.
"침팬지는 '그'가 아니라 '그것'이라고 써야 합니다."
구달은 곰베에서 침팬지들에게 번호를 붙이지 않았다.
이름을 붙였다.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 어미 플로, 딸 피피.
그리고 각각의 성격과 감정, 관계를 일지처럼 기록했다.
케임브리지 대학원에 제출한 논문은 돌아왔다.
지도교수들의 판정은 단호했다.
"동물에게 감정을 투영하는 것은 비과학적 의인화다."
의인화란, 사람이 아닌 것을 사람처럼 대하는 태도를 말한다.
과학계는 감정 없는 기계로 동물을 다루는 것이 객관적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구달이 기록한 것들이 있었다.
어미를 잃은 새끼가 몇 주간 음식을 거부하다 죽는 장면.
죽은 동료를 두고 집단이 조용히 자리를 지키는 장면.
다른 무리와 충돌하며 영역 전쟁을 벌이는 장면.
슬픔, 애도, 입양, 전쟁.
"감정이 없다"고 규정한 동물들에게서 나온 기록들이었다.
결국 그녀가 "틀렸다"고 했던 방법론이 영장류학의 표준이 되었다.
오늘날 연구자들이 관찰 대상에게 이름을 붙이고 개별 특성을 기록하는 것은, 구달이 틀렸기 때문에 생긴 관행이 아니다.
구달이 옳았기 때문에 생긴 관행이다.

1986년 이후 제인 구달은 침팬지를 거의 보지 못했다.
침팬지를 살리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1986년, 아프리카 각지의 침팬지 연구자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지도에 침팬지 서식지를 표시했더니, 1960년대와 비교해 절반 이상이 사라져 있었다.
숲이 벌목되고 농경지로 바뀌는 속도를 연구 논문으로 막을 수 없다는 것이 분명했다.
구달은 결정을 내렸다.
26년간 몸담았던 곰베를 떠나기로 했다.
이후 그녀는 매년 300일 이상을 비행기로 이동했다.
학교, 기업, 의회, 유엔.
어디든 불러주는 곳이면 갔다.
숲에서 가장 행복했던 사람이, 숲을 지키기 위해 숲을 떠나야 했다.
서점을 사랑하는 사람이 서점을 살리려고 마케팅 일을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가장 좋아하는 것을 포기해야 그것을 지킬 수 있는 딜레마.
90세가 넘은 지금도 구달은 멈추지 않는다.
학위 없이 시작한 비서가, 인간의 정의를 바꾸고, 과학계의 방법론을 뒤집고, 이제는 지구 전체를 향해 말하고 있다.
그녀가 1960년 처음 곰베 숲에 발을 디뎠을 때, 아무도 그녀의 이름을 몰랐다.
지금 우리는 데이비드 그레이비어드의 이름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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