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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나치 독일은 매일 자정, 전 세계 통신의 자물쇠를 새로 갈았다.
앨런 튜링에게 주어진 시간은 해가 뜨기까지였다.
1939년, 영국 정부는 런던 외곽의 낡은 저택 블레츨리 파크에 수학자들을 몰래 불러 모았다.
독일군이 쓰는 암호 체계 에니그마를 깨기 위해서였다.
에니그마는 군사 통신을 암호로 바꾸는 기계인데, 설정값이 매일 자정에 바뀌었다.
조합의 수가 159,000,000,000,000,000,000개였다.
인간이 손으로 하나씩 대입하면 수십 년이 걸리는 숫자다.
해독팀에게 주어진 시간은 매일 24시간뿐이었다.
튜링이 꺼낸 답은 당시로선 존재하지 않던 발상이었다.
"기계가 기계를 이기면 된다."
그는 에니그마의 패턴을 역으로 추적하는 기계 봄브(Bombe)를 설계했다.
봄브는 사람이 평생 돌려도 못 풀 조합을 몇 시간 만에 통과했다.

전쟁이 끝난 뒤 튜링의 이웃들은 그가 전쟁 중에 무슨 일을 했는지 몰랐다.
정부가 30년 동안 입을 막았기 때문이다.
역사학자들은 블레츨리 파크의 암호 해독이 제2차 세계대전을 최소 2년 단축시켰다고 추산한다.
그 2년 동안 죽었을 사람이 약 1,400만 명이었다.
튜링은 그 1,400만 명을 살린 작전의 핵심이었다.
그러나 이 작전은 1974년까지 국가 기밀이었다.
튜링은 자기가 한 일을 가족에게도 말할 수 없었다.
회사에서 가장 큰 프로젝트를 성공시켰는데, 이력서에도 쓸 수 없고 동료에게도 말할 수 없는 것처럼.
전쟁 영웅은 보통 훈장을 받고 거리를 행진한다.
튜링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사람"으로 전후를 살았다.
그리고 조국은 곧 그에게 전혀 다른 이유로 주목하게 된다.

컴퓨터가 아직 방 하나를 가득 채우던 시절, 한 수학자가 물었다.
"기계도 생각할 수 있을까?"
1950년, 튜링은 논문 하나를 발표했다.
제목은 「계산 기계와 지능」이었고, 그 안에 튜링 테스트라는 개념이 담겨 있었다.
기계가 대화를 통해 인간을 속일 수 있다면, 그 기계는 '생각한다'고 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 논문이 나왔을 때 현대적인 컴퓨터는 아직 존재하지 않았다.
트랜지스터 컴퓨터도, 스마트폰도, 인터넷도 없었다.
그런데 튜링은 이미 "기계의 지능을 어떻게 판별할 것인가"를 논하고 있었다.
2024년 현재, 전 세계가 AI가 진짜로 생각하는지를 두고 논쟁 중이다.
ChatGPT에게 "너 진짜 생각해?"라고 물어본 적 있다면, 그 질문의 틀을 짠 사람이 바로 튜링이다.
그것도 74년 전에.

1952년, 영국 법정은 제2차 세계대전의 숨은 영웅에게 두 가지 선택지를 줬다.
감옥에 가거나, 몸이 변하는 약물을 맞거나.
당시 영국법은 동성 간 성관계를 범죄로 규정했다.
튜링은 동성애 혐의로 체포되어 유죄 판결을 받았다.
징역형과 화학적 거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는데, 화학적 거세란 에스트로겐 호르몬을 강제로 주입해 성욕을 억제하는 처치였다.
튜링은 연구를 계속하고 싶었다.
그래서 약물을 택했다.
1954년 6월 7일, 그는 41세의 나이로 숨진 채 발견됐다.
원인은 청산가리 중독이었다.
침대 옆에는 한 입 베어 먹은 사과가 있었다.
영국 정부의 공식 사과는 2009년, 여왕의 사면은 2013년에 이루어졌다.
그가 죽은 지 55년이 지나서였다.
1,400만 명의 생명을 구한 사람에게 조국이 먼저 건넨 것은 범죄자 낙인이었고, 사과는 반세기가 지나서야 왔다.
그 55년 동안 살아남은 1,400만 명은 그의 이름도 몰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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