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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43년, 호퍼는 해군 신체검사에서 두 가지 이유로 떨어졌다.
나이가 너무 많고, 몸무게가 7kg 모자랐다.
그레이스 호퍼(Grace Hopper)는 당시 36세의 예일대 수학 박사였고, 바사 칼리지(Vassar College, 뉴욕의 명문 여대)에서 교수로 재직 중이었다.
해군의 기준은 34세까지, 체중은 최소 54kg이었는데 그녀는 47kg이었다.
하지만 호퍼는 포기하지 않았고, 결국 면제를 받아 입대에 성공했다.
전쟁에 목숨을 바치겠다고 안정된 교수직을 버린 그녀에게 해군이 배정한 자리는 전함 위가 아니었다.
배치된 곳은 하버드 지하실이었다.
그 지하실에는 길이 15m짜리 거대한 기계가 있었는데, 하버드 마크 I(Harvard Mark I)이라는 세계 최초의 범용 전자기계식 컴퓨터였다.
오늘날 스마트폰보다 성능이 형편없지만, 당시엔 아무도 어떻게 다루는지 몰랐다.
호퍼는 운영 매뉴얼조차 없는 그 기계 앞에 혼자 앉았다.
그리고 그 자리가 컴퓨팅 역사의 시작점이 됐다.

호퍼는 컴파일러를 완성하고도 3년을 더 싸워야 했다.
상대는 기술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1952년, 호퍼는 컴파일러(compiler)라는 것을 세상에 처음 선보였다.
컴파일러란 사람이 쓴 언어를 컴퓨터가 이해하는 0과 1의 기계어로 번역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오늘날 모든 개발자가 당연하게 쓰는 이 도구가, 당시엔 황당한 아이디어 취급을 받았다.
당시 프로그래머들은 0과 1로 직접 명령을 입력해야 했다.
숫자 하나를 틀리면 기계는 멈췄고, 오류를 찾으려면 수백 줄의 숫자를 눈으로 뒤져야 했다.
호퍼가 "영어로 명령을 쓰면 컴퓨터가 알아서 번역하게 하자"고 제안하자, 동료들은 3년 동안 이렇게 말했다. "컴퓨터는 산수만 할 수 있어. 영어를 이해한다는 건 말이 안 돼."
그때 호퍼가 남긴 말이 있다.
"가장 위험한 문장은 'We've always done it this way'야."
번역하면: "우린 원래 이렇게 해왔잖아."
회사에서 새 방식을 제안했을 때 "원래 이렇게 해왔어"라는 말에 막혀본 적 있다면, 호퍼의 분노를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거다.
그녀는 결국 3년의 저항을 뚫었고, 그 컴파일러는 현대 프로그래밍 언어의 뿌리가 됐다.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나방은 박물관에 살고 있다.
1947년에 컴퓨터를 멈춰 세운 죄로.
1947년 9월 9일, 하버드 마크 II 컴퓨터가 갑자기 오작동을 일으켰다.
호퍼의 팀원들이 원인을 추적하기 시작했고, 발견한 것은 릴레이(relay, 전기 신호를 연결하는 스위치 부품) 사이에 끼어 죽은 나방 한 마리였다.
팀원들은 그 나방을 핀셋으로 꺼낸 뒤, 운항일지에 테이프로 붙였다.
기록도 남겼다. "First actual case of bug being found." 진짜 벌레를 발견한 최초의 사례.
이 운항일지는 현재 워싱턴의 스미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Smithsonian National Museum of American History)에 전시되어 있다.
그 나방 한 마리 덕분에, 오늘날 전 세계 수백만 프로그래머가 오류를 "버그(bug)"라 부르고, 오류를 잡는 일을 "디버깅(debugging)"이라고 부른다.
스마트폰 앱이 갑자기 멈출 때 "버그가 있네"라고 말하는 그 단어의 출발점이 바로 이 나방이다.
IT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곤충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해군은 호퍼를 세 번 퇴역시켰다.
그리고 세 번 다 다시 불렀다.
호퍼는 1966년, 1971년, 1986년에 퇴역 명령을 받았다.
그때마다 해군은 얼마 지나지 않아 다시 전화를 걸었다.
1986년 마지막 퇴역 당시, 그녀는 79세였고, 미 해군 현역 최고령 장교이자 준장(Rear Admiral) 계급이었다.
퇴역식 장소가 인상적이다.
해군은 USS 컨스티튜션(USS Constitution)이라는 배 위에서 행사를 열었는데, 1797년에 진수된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현역 군함이었다.
200년 된 목선 위에서, 현대 컴퓨팅을 만든 79세의 할머니가 마지막 거수경례를 했다.
호퍼는 강연마다 30cm짜리 전선 한 토막을 가지고 다니는 버릇이 있었다.
빛이 1나노초 동안, 즉 10억 분의 1초 동안 이동하는 거리가 딱 30cm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컴퓨터가 얼마나 빠른지 이해하려면, 그것이 얼마나 짧은 순간을 다루는지 느껴야 해"라고 그녀는 말했다.
1943년에 체중 미달로 입대를 거절당했던 그 여성이, 결국 해군이 세 번 쫓아내도 세 번 다시 불러들인 사람이 됐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의 스마트폰 안에서, 호퍼가 만든 컴파일러의 후손이 돌아가고 있다.
그 지하실에서 그녀가 "다른 부서로 보내달라"고 했더라면, 어땠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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