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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952년 여름, 미국의 부모들은 날씨가 따뜻해지는 것을 저주했다.
전쟁이 난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아이들은 수영장에 갈 수 없었다.
소아마비가 그해 여름 미국을 덮쳤다.
소아마비는 바이러스가 신경계를 공격해 팔다리를 마비시키는 병이다.
그해에만 5만 8천 명이 감염되었고, 3천 명이 죽었다.
더 두려운 건 살아남은 아이들이었다.
수천 명의 어린이가 철폐(iron lung)에 갇혀 살아야 했다.
철폐는 스스로 숨을 쉬지 못하는 사람의 폐를 기계가 대신 움직여주는 철제 원통이다. 거기서 나오면 죽을 수도 있으니, 그 안에서 먹고 자고 크는 아이들이 있었다.
코로나 초기, 아이를 학교에 보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했던 그 감각을 기억할 것이다.
70년 전 미국 부모들도 똑같이 그 공포를 느꼈다.
다만 그때는 백신도, 치료제도, 끝이 보이는 희망도 없었다.

소크는 임상시험 승인을 받기 전에, 먼저 자기 아들의 팔에 주사를 놓았다.
자기 아이를 실험 대상 1호로 삼은 것이다.
조너스 소크는 뉴욕 이민자 가정 출신이었다.
등록금이 없어 무료 공립대학인 뉴욕시립대(CCNY)에 들어갔고, 거기서 의학의 길로 들어섰다.
그는 처음부터 주류와 달랐다.
당시 과학계의 상식은 이랬다. "살아있는 바이러스만이 면역을 만들 수 있어."
그런데 소크는 반대로 생각했다.
죽인 바이러스를 몸에 넣어도 면역이 생긴다는 가설을 세우고,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 방법으로 백신을 만들기 시작했다.
1953년, 그는 자신과 아내, 세 아들에게 먼저 백신을 접종했다.
그 다음에야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직장에서 "그건 안 된다"는 말을 들었을 때 자기 돈이라도 걸어서 증명하고 싶었던 순간과 비슷하다. 다만 소크가 건 것은 돈이 아니라 자기 아이들의 생명이었다.

1955년 4월 12일, 미국인들은 종전 이후 처음으로 거리에서 울었다.
소크의 백신이 공식 승인된 날이었다.
교회 종이 울렸고, 낯선 사람들끼리 거리에서 껴안았다.
그날 저녁, 당시 미국 최고의 방송기자였던 에드워드 머로가 소크에게 카메라 앞에서 물었다.
"이 백신의 특허는 누가 갖고 있습니까?"
소크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았다.
"국민이요. 태양에 특허를 낼 수 있나요?"
나중에 경제학자들이 추산한 그 특허의 가치는 약 70억 달러였다.
인류 역사상 가장 비싼 거절이었다.
그리고 그 거절은 즉흥적으로 나온 멋진 말이 아니라, 처음부터 특허를 생각해본 적 없는 사람의 자연스러운 대답이었다.
평생 모은 돈으로 살 수 있는 집을 그냥 무료로 나눠주겠다고 선언한 것과 비슷하다.
다만 그 집이 아파트 한 채가 아니라 도시 전체 규모일 때의 이야기다.

4억 명의 아이를 소아마비에서 구한 남자는 과학자 명예의 전당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다.
미국 과학자 최고 영예인 미국국립과학아카데미(NAS) 회원. 소크는 끝내 선출되지 못했다.
동료 과학자들은 그를 '진짜 과학자'로 보지 않았다.
경구용 소아마비 백신을 개발한 라이벌 앨버트 세이빈은 소크의 연구를 공개적으로 "주방 화학"이라고 조롱했다.
대중은 그를 영웅이라 불렀지만, 그가 진짜 인정받고 싶었던 과학자들의 세계에서 그는 영원한 아웃사이더였다.
회사에서 가장 큰 실적을 올렸는데 승진 명단에는 이름이 없는 상황을 상상해보라.
그것이 소크에게는 평생 계속된 것이다.
소크는 만년에 소크 연구소(Salk Institute)를 세웠다.
지금은 세계 최고 수준의 생물학 연구소 중 하나다.
그는 거기서 에이즈 백신 연구에 매진하다 1995년 세상을 떠났다.
수억 명을 살린 것으로도 채울 수 없는 인정이 있었다.
그 빈자리가 그를 죽는 날까지 연구실로 밀어넣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선택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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