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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하와이의 작은 마을에서 한 소녀가 선생님에게 들은 말은 단순했다.
"여자는 과학을 못 해."
그 소녀는 나중에 지구상 모든 생명체의 설계도를 고치는 도구를 발명한다.
제니퍼 다우드나는 하와이 힐로에서 자랐다.
6학년 담임교사가 진로상담에서 꺼낸 그 한마디는, 다우드나의 길을 막지 못했다.
오히려 그 교실이 출발점이 되었다.
전환점은 침대맡에 놓인 책 한 권에서 왔다.
아버지가 가져다준 제임스 왓슨의 『이중나선』은 DNA 구조 발견을 다룬 자서전이다.
DNA가 어떻게 생겼는지, 그것을 어떻게 찾아냈는지를 담은 그 책을 읽으면서 다우드나는 분자생물학에 빠져들었다.
"생명이 이렇게 아름다운 구조로 되어 있다니."
그 감각이 그녀를 과학자로 만들었다.

박테리아는 수십억 년 동안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며 자기만의 무기를 갈고닦았다.
2012년, 두 과학자가 그 무기를 빌려 인류의 도구로 바꿨다.
CRISPR-Cas9을 쉽게 말하면 스마트폰의 '찾기 및 바꾸기' 기능과 같다.
문서에서 오탈자를 찾아 정확한 단어로 교체하듯, DNA 텍스트에서 원하는 염기서열을 찾아 잘라내거나 붙인다.
단백질 가위가 특정 위치를 인식하고, 정밀하게 절단한다.
다우드나와 프랑스 미생물학자 에마뉘엘 샤르팡티에가 이 시스템을 발견한 게 아니다.
박테리아 안에 원래부터 있었다.
바이러스가 침입하면 박테리아는 그 바이러스의 유전자 서열을 기억해뒀다가 다음에 같은 바이러스가 오면 Cas9 단백질을 보내 잘라버리는 방식으로 싸웠다.
두 사람이 한 일은 이 시스템을 프로그래밍 가능하게 바꾼 것이다.
이전 유전자 편집 기술은 원하는 위치를 찾아가는 데만 수개월이 걸렸다.
CRISPR는 며칠이면 됐다.
2012년 『사이언스』지에 발표된 그 논문은 생물학 교과서를 다시 쓰게 만들었다.

2018년 11월, 다우드나의 전화기에 뜬 뉴스 알림 한 줄이 그녀가 가장 두려워하던 미래를 현실로 만들었다.
누군가가 CRISPR로 아기를 만들었다.
다우드나의 논문이 나온 직후부터 과학계는 들끓기 시작했다.
MIT-하버드 산하 브로드연구소의 펑 장이 인간 세포에서 CRISPR를 먼저 적용했다며 특허를 선점했고, 수십억 달러가 걸린 법정 다툼이 시작됐다.
내가 만든 기술인데 내 특허가 아닐 수도 있다는, 어떤 개발자도 겪고 싶지 않은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충격적인 소식이 왔다.
중국 과학자 허젠쿠이가 HIV 감염을 막겠다며 인간 배아의 유전자를 CRISPR로 편집해 쌍둥이를 태어나게 한 것이다.
과학계의 어떤 합의도, 어떤 윤리 검토도 없이.
다우드나는 이미 이 상황을 막으려 했다.
CRISPR 기술이 본격화되던 시점, 그녀는 과학자들이 스스로 인간 생식세포 편집을 중단하자는 모라토리엄을 주도했다.
모라토리엄은 연구를 금지하는 게 아니라,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자발적으로 멈추자는 선언이다.
하지만 허젠쿠이는 그 선언 바깥에 있었다.
"내가 만든 도구가 이렇게 쓰일 거라고는, 이렇게 빨리 쓰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어요."

다우드나는 노벨상 수상 연설 이후에도 잠을 설친다.
그녀의 악몽에는 히틀러가 등장해 CRISPR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한다.
2020년 노벨화학상을 에마뉘엘 샤르팡티에와 공동 수상한 이후, 다우드나는 UC버클리에 혁신유전체학연구소(IGI)를 세웠다.
연구소는 겸상적혈구빈혈증 치료에 집중하고 있다. 이 병은 낫 모양으로 변형된 적혈구가 혈관을 막아 극심한 통증을 유발하는 유전 질환으로, CRISPR 치료제가 가장 현실적인 해결책으로 꼽힌다.
그러면서 동시에 그녀는 CRISPR의 국제 윤리 기준을 만드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대부분의 발명가는 기술을 세상에 내놓고 다음 발명으로 넘어간다.
다우드나는 자기 발명의 위험성을 가장 크게 경고하는 사람이 발명가 자신이어야 한다고 믿는다.
부엌칼을 만든 대장장이가 칼의 사용법까지 책임져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다우드나는 아직 답하는 중이다.
잠을 설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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