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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세계에서 가장 수학적인 물리학자 중 한 명은 학부에서 물리학을 전공하지 않았어요.
에드워드 위튼은 브랜다이스대학교에서 역사학을 공부했어요.
언어학도 함께 들었죠.
오늘로 치면 문과생이 갑자기 공학 대학원에 들어가더니, 전 세계 엔지니어들이 보는 문제를 풀기 시작한 셈이에요.
처음부터 칠판 앞의 사람이 아니었어요.
위튼은 한때 저널리즘과 정치에 가까운 길도 생각했어요.
세상을 설명하는 방식이 방정식이 아니라 기사와 제도 쪽에 가까웠던 거예요.
그런데 방향이 틀어집니다.
위튼은 프린스턴에서 물리학 박사를 받아요.
프린스턴은 그냥 좋은 학교가 아니라,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규칙을 놓고 진짜로 싸우는 무대에 가까운 곳이에요.
여기서 반전이 생겨요.
위튼은 뒤늦게 들어온 사람이었는데, 오히려 남들이 보지 못한 길을 봅니다.
역사학을 공부한 사람답게 그는 문제를 한 줄 공식이 아니라 거대한 흐름으로 읽었어요.
물리학은 보통 “작은 입자가 어떻게 움직이나”를 묻는 학문처럼 보이죠.
하지만 위튼에게 물리학은 “서로 떨어진 이야기들이 사실 같은 이야기인가”를 묻는 일이 되었어요.
그래서 그의 경력은 전공 변경이 아니라, 질문의 크기를 바꾼 사건처럼 보입니다.

1990년 수학계의 가장 큰 무대에 오른 사람은 직업이 수학자인 사람이 아니었어요.
그 상은 필즈상이에요.
수학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으로, 흔히 “수학의 노벨상”처럼 불려요.
그런데 이 상을 받은 사람이 수학자가 아니라 이론물리학자 위튼이었죠.
이건 축구 선수가 야구 명예의 전당에 들어간 것 같은 일이에요.
규칙도 다르고, 쓰는 언어도 다르고, 존경받는 기술도 달라요.
그런데 관중석의 전문가들이 “저 사람은 우리 경기의 판을 바꿨어”라고 인정한 거예요.
위튼이 한 일은 수학 문제를 대신 계산해준 게 아니었어요.
그는 양자장론과 위상수학을 이어 붙였어요.
양자장론은 아주 작은 세계에서 힘과 입자가 어떻게 행동하는지 다루는 물리학의 언어예요.
위상수학은 모양의 정확한 길이나 각도보다, 구멍이 몇 개인지 같은 깊은 구조를 보는 수학이에요.
머그잔과 도넛이 비슷하다고 말하는 바로 그 분야죠.
손잡이의 구멍 하나를 기준으로 보면 둘은 같은 종류의 모양이거든요.
위튼은 물리학자의 도구를 들고 수학자들의 방에 들어갔어요.
그리고 수학자들이 보던 풍경을 다른 조명으로 비췄어요.
그래서 문제의 답만 바뀐 게 아니라, 어떤 길로 문제에 접근할지 자체가 달라졌습니다.
여기서 위튼의 이상한 힘이 드러나요.
그는 경계선을 넘는 사람이 아니라, 경계선이 원래 흐릿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람이에요.
수학과 물리학이 따로 노는 두 과목이 아니라, 같은 우주를 다른 말투로 설명하고 있었을지 모른다는 느낌을 준 거죠.
위튼의 발표 뒤, 끈이론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다섯 개의 길이 아니라 하나의 산을 오르고 있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 무대는 1995년 남캘리포니아대학교에서 열린 Strings ’95 학회였어요.
끈이론 연구자들이 모여 최신 아이디어를 나누는 국제 학술 모임이에요.
그 자리에서 위튼은 다섯 가지 끈이론이 사실 하나의 더 큰 틀의 다른 모습일 수 있다고 제안합니다.
끈이론은 세상을 점 같은 알갱이로 보지 않아요.
아주 작은 줄이 떨리는 방식에 따라 전자도 되고, 힘을 전하는 입자도 된다고 보는 생각이에요.
기타 줄 하나가 어떻게 떨리느냐에 따라 다른 음을 내는 것과 비슷해요.
문제는 끈이론이 하나가 아니었다는 점이에요.
연구자들 앞에는 다섯 가지 설명이 있었어요.
서로 경쟁하는 지도 다섯 장처럼 보였죠.
그런데 위튼은 그 지도들이 같은 도시를 다른 각도에서 그린 것일 수 있다고 말한 셈이에요.
북쪽에서 본 지도, 지하철 노선도, 오래된 골목 지도, 항공 사진, 행정 구역도가 전부 같은 서울을 가리키는 것처럼요.
그 순간 경쟁의 느낌이 합류의 느낌으로 바뀝니다.
이 더 큰 틀을 M이론이라고 불러요.
다섯 끈이론을 더 넓은 구조 안에서 함께 이해하려는 제안이에요.
완성된 교과서라기보다, 흩어진 조각들이 한 퍼즐판 위에 놓일 수 있다는 선언에 가까워요.
그래서 1995년의 위튼은 답안지를 낸 사람이 아니라, 문제지를 다시 만든 사람처럼 보여요.
“다섯 개 중 어느 것이 맞나”라는 질문이 “다섯 개가 왜 동시에 나타났나”로 바뀌었거든요.
그제야 연구자들은 자신들이 서로 다른 길에서 싸운 게 아니라, 같은 산의 다른 능선을 올라왔을지 모른다고 느낍니다.

위튼의 가장 큰 역설은 우주를 설명하려던 이론이 먼저 수학자들의 책상을 바꾸었다는 데 있어요.
끈이론은 아직 결정적인 실험 검증을 얻지 못했어요.
쉽게 말해, “이 장비로 재보니 끈이론이 맞다”라고 모두가 고개를 끄덕일 만한 순간은 아직 오지 않았다는 뜻이에요.
그래서 끈이론은 늘 묘한 긴장 속에 있어요.
하지만 이상한 일이 벌어집니다.
실험실 문은 아직 완전히 열리지 않았는데, 수학자들의 칠판은 이미 바뀌었어요.
완성된 다리를 아직 건너지 못했는데, 그 설계도가 도시 전체의 건축법을 바꾼 상황과 비슷해요.
위튼의 연구는 매듭 이론, 위상수학, 양자장론 같은 분야에 깊게 들어갔어요.
매듭 이론은 끈이 어떻게 얽혔는지, 풀 수 있는지, 정말 다른 매듭인지 따지는 수학이에요.
이어폰 줄이 엉켰을 때 “이건 그냥 당기면 풀리는가, 아니면 구조부터 다른가”를 아주 엄밀하게 보는 학문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위상수학은 앞에서 본 것처럼 모양의 깊은 성질을 보는 분야예요.
양자장론은 작은 세계의 힘과 입자를 설명하는 물리학의 언어고요.
위튼은 이 셋을 한 책상 위에 올려놓고, 서로가 서로를 설명하게 만들었어요.
그래서 역설이 생겨요.
물리학은 보통 자연이 먼저 답을 주고, 수학이 그 답을 정리한다고 생각하기 쉬워요.
하지만 여기서는 물리학의 꿈이 먼저 수학의 언어를 바꿉니다.
위튼의 이야기가 오래 남는 이유도 여기에 있어요.
그는 “우주가 이렇게 생겼다”고 끝내는 사람이 아니에요.
오히려 “우주를 묻는 방식이 아직 너무 작지 않은가”라고 질문을 밀어붙이는 사람에 가까워요.
처음엔 역사학도였던 사람이, 나중에는 수학자들이 쓰는 지도를 바꿨어요.
끈이론은 아직 실험의 마지막 문턱 앞에 서 있어요.
그런데 위튼이 남긴 질문은 이미 많은 사람의 칠판 위에서 지워지지 않고 있습니다.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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