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pyright © Origin Corp. All Rights Reserved.
v1.0.10
로딩 중입니다
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1812년 봄, 한 제본공 도제가 자기가 받아적은 강연 노트를 직접 가죽 표지로 제본해 영국 최고의 화학자에게 보냈어요.
노트는 386쪽이었어요.
보낸 사람은 마이클 패러데이, 당시 21살의 도제였어요.
정규 교육은 고작 2년이었고, 학위는 없었어요.
손에는 가죽 냄새가 배어 있었어요.
그가 노트를 보낸 상대는 험프리 데이비, 당대 영국에서 가장 유명한 화학자였어요.
데이비는 왕립연구소에서 강연을 하고 있었는데, 오늘날로 치면 노벨상 수상자가 직접 강단에 서는 특별 강좌 같은 거예요.
패러데이는 그 강연에 네 번 참석해 모든 내용을 받아적었어요.
그리고 그 노트를 그냥 두지 않았어요.
직접 가죽 표지를 씌우고, 그림을 보충하고, 목차를 달아 한 권의 책으로 완성했어요.
이력서 대신 상대의 강연을 통째로 책으로 만들어 보낸 거예요.
데이비는 그 노트를 받고 패러데이를 조수로 채용했어요.
학위도, 연줄도, 추천서도 없이 영국 최정상 과학자의 옆자리에 앉게 된 거예요.
그 순간부터 패러데이의 과학 인생이 시작됐어요.

패러데이는 미적분을 거의 몰랐어요.
그런데 그가 1831년에 손으로 확인한 현상이 오늘날 지구의 발전소를 전부 돌리고 있어요.
자석을 코일 안에서 움직이면 전류가 흐른다는 걸 그는 실험으로 직접 발견했어요.
오늘날 전자기 유도라고 부르는 이 원리가 모든 발전기와 전동기의 기본이에요.
스마트폰을 충전할 때도, 기차가 달릴 때도, 이 원리 없이는 아무것도 작동하지 않아요.
보통 이런 발견은 수식으로 먼저 예측하고 실험이 뒤따라요.
하지만 패러데이는 반대로 갔어요.
수식을 몰랐으니까, 대신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생각했어요.
그가 만든 개념이 역선(field line)이에요.
자석 주변에 눈에 보이지 않는 선들이 퍼져 있고, 그 선을 따라 힘이 전달된다는 생각이에요.
오늘날 우리가 자석 주위에 그리는 화살표 그림이 바로 패러데이가 손으로 그린 거예요.
30년쯤 뒤, 스코틀랜드의 수리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패러데이의 그림을 방정식으로 옮겼어요.
레시피를 공식 없이 손맛으로 완성한 요리사의 음식이 전 세계 식당의 표준이 된 격이에요.
수학으로 풀어야 했던 자연 현상을, 수학 못 하는 사람이 먼저 찾아낸 거예요.

빅토리아 여왕이 두 번이나 손을 내밀었지만, 패러데이는 두 번 다 정중히 작위를 돌려보냈어요.
1850년대의 일이에요.
기사 작위만이 아니었어요.
왕립학회 회장 자리도, 영국과학진흥협회 회장직 제의도 차례로 거절했어요.
당대 최고로 인정받은 과학자가 사회가 줄 수 있는 모든 영예를 차례로 돌려보낸 거예요.
노벨상을 받을 수 있는데 거절하는 건 상상하기도 어렵잖아요.
패러데이는 거기에 학회장 자리와 귀족 작위까지 더한 걸 한꺼번에 사양했어요.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그는 산데마니안(Sandemanian) 신자였어요.
산데마니안은 영국의 소수 기독교 분파로, 모든 신자가 신분이나 재산과 무관하게 평등하다는 걸 핵심으로 믿는 공동체예요.
패러데이는 그 믿음을 삶에서 그대로 실천했어요.
"평민으로 살다 평민으로 죽겠다."
그의 말이에요.
작위를 거절하면서 한 말이 아니라, 그의 삶 전체가 그 문장의 증명이었어요.

같은 손이 발전기를 만들 수도, 독가스를 만들 수도 있었어요.
패러데이는 한쪽 손만 내밀었어요.
1854년, 크림 전쟁이 한창이었어요.
크림 전쟁은 러시아와 영국·프랑스·오스만 연합군이 충돌한 전쟁으로, 세바스토폴 항구를 빼앗으려는 공방이 핵심이었어요.
영국 정부는 그 항구를 빠르게 공략하기 위해 패러데이에게 화학무기, 즉 독가스 개발 자문을 요청했어요.
패러데이는 기술적으로는 가능하다고 답했어요.
하지만 딱 거기서 멈췄어요.
자신은 어떤 식으로도 참여하지 않겠다고 거절했어요.
오늘날로 치면 AI를 만든 연구자가 그 기술의 군사 응용에는 자기 이름을 빼달라고 요구한 상황이에요.
기술이 가능하다는 것과, 그 기술에 손을 보태는 것은 다른 문제라고 그는 생각했어요.
1867년 패러데이는 햄프턴 코트의 작은 집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어요.
빅토리아 여왕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국장을 치러주겠다고 제안했어요.
그것도 거절이었어요.
그는 런던 하이게이트 묘지의 평민 구역에 묻혔어요.
발전기를 만들고, 작위를 거절하고, 무기를 거부하고, 마지막엔 국장마저 사양한 사람이에요.
그가 남긴 건 어디에도 새겨지지 않은 몇 번의 거절이었어요.
그리고 지금 당신 손에 쥔 스마트폰이 충전되는 그 원리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2
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