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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고르기아스는 학생들에게 말의 힘을 팔면서, 동시에 말로는 진실을 전할 수 없다고 책으로 증명했다.
오늘날로 치면 영어 학원 원장이 "사실 언어로는 진심을 전달할 수 없어요"라는 책을 출간한 셈이다.
기원전 5세기, 시칠리아 섬 출신의 고르기아스는 그리스 최고의 말 선생이었다.
그의 수업에서 배운 학생들은 법정에서 이기고, 민회에서 군중을 움직였다.
수업료는 어마어마했고, 그는 여러 도시를 돌며 부를 쌓았다.
그런 그가 저작 『비존재에 관하여』를 남겼다.
"자연에 관하여"라고도 불리는 이 책에서 그는 세 가지를 논증한다.
첫째,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
둘째, 설령 무언가 존재해도 우리는 알 수 없다.
셋째, 알 수 있어도 다른 사람에게 전달할 수 없다.
그는 이것을 단순한 주장이 아니라 논리적 논증으로 밀고 나갔다.
말의 힘을 평생 팔아온 사람이 "말로는 결국 아무것도 전할 수 없다"를 증명한 것이다.
그것도 책으로.

헬레네는 그리스인이 가장 미워한 여자였다.
고르기아스는 그녀를 변호했고, 그 변호문이 곧 자기 수사학의 광고였다.
헬레네는 트로이 전쟁의 원인으로 지목된 여성이다.
트로이 전쟁은 기원전 12세기 무렵, 트로이 왕자 파리스가 그리스 왕비 헬레네를 데려가면서 벌어진 10년 전쟁이다.
그리스 전체가 헬레네를 원흉으로 지목하며 분노했다.
고르기아스가 그녀를 변호하겠다고 나선 것은, 전국민이 미워하는 피고인을 자청해 맡는 변호사와 같았다.
그가 쓴 『헬레네 찬가』는 가능한 네 가지 면죄부를 차례로 제시한다.
하나, 신의 뜻이었다면 헬레네에게 책임이 없다.
둘, 강제로 끌려간 것이라면 피해자다.
셋, 말의 마법에 홀린 것이라면 속은 것이다.
넷, 사랑에 빠진 것이라면 자연을 거스를 수 없었다.
그리고 이 변호문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말(로고스)은 아주 작은 것이지만 가장 신성한 행위를 해낼 수 있다. 말은 두려움을 없애고, 고통을 지우고, 기쁨을 불러오고, 자비를 키운다."
헬레네를 변호하는 척하면서, 그는 동시에 수사학의 힘을 실연했다.
가장 미움 받는 사람을 무죄로 만드는 논증이, 그대로 자신의 수업 교과서가 됐다.

기원전 427년, 60대 외국인 노인이 아테네 민회 단상에 올랐고, 내려올 때 함대 파병이 결정되어 있었다.
당시 레온티니는 시칠리아 섬의 작은 도시국가였다.
강대국 시라쿠사의 위협을 받던 레온티니는 고르기아스를 사절로 아테네에 보냈다.
아테네의 함대를 빌려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고르기아스가 민회 단상에 올라 연설을 시작하자 청중은 얼어붙었다.
그가 구사하는 문체가 그때껏 아무도 들어본 적 없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대구, 운율, 동음 반복을 자유자재로 썼다.
대구란 한 문장 안에서 반대되는 의미를 나란히 배치하는 기법이다.
"우리는 이기고, 적은 진다" 같은 식으로 리듬과 대조를 동시에 만든다.
이 기법이 그때 청중에게 처음 도착했다.
오늘날로 치면 외국인 강사가 국회 본회의장에 올라 한 번의 연설로 국방 예산안을 통과시킨 것과 같다.
아테네는 결의했다. 함대를 보내기로.
이 사건 이후 그리스 전역에 수사학 열풍이 불었다.
수사학(rhētorikē)은 말 그대로 "말하는 기술"이다.
단순한 화술이 아니라 논리와 감정, 리듬을 결합해 청중을 설득하는 학문으로, 고르기아스의 아테네 연설이 그 출발점이 됐다.
부유한 가문의 자제들이 그를 찾아왔다.
아테네에서 코린토스로, 코린토스에서 테살리아로.
그는 도시를 옮길 때마다 새 청중을 사로잡았고, 그때마다 수업료를 받았다.

존재를 부정한 철학자가 가장 신성한 신전 한가운데에 자기 황금상을 세웠다.
그것도 순금으로.
델포이 신전은 당시 그리스에서 가장 신성한 장소였다.
"너 자신을 알라"는 격언이 새겨진 아폴론 신전이 있는 곳으로, 도시국가들이 경쟁적으로 봉헌물을 바치던 그리스의 성지였다.
고대 작가 플리니우스와 파우사니아스는 고르기아스의 황금상이 실제로 거기에 있었다고 기록으로 남겼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증한 사람이 가장 눈에 띄는 방식으로 자신의 존재를 각인시킨 것이다.
'재산도 명예도 다 허무하다'는 책을 쓴 작가가 광화문 한복판에 자기 동상을 세운 꼴이다.
그리고 그는 오래 살았다.
일부 고대 기록은 그가 108세까지 살았다고 전한다.
"아무것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논증한 사람이 동시대 그 누구보다 오래 존재했다.
비존재를 가르친 자가 가장 길게 존재했다.
황금상은 델포이에 서 있었고, 수업료는 쌓였고, 제자들은 법정을 누볐다.
어쩌면 고르기아스는 철학이 아니라 삶 자체로 자신의 역설을 완성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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