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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신학의 정점에 오른 수도사가 어느 설교에서 이렇게 기도했어요.
"Ich bitte Gott, dass er mich Gottes ledig mache."
독일어로 된 이 문장의 뜻은 "신이여, 나를 신으로부터 자유롭게 해주소서"예요.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1260년 무렵 태어나 도미니크회 수도사로 살았어요.
파리 대학에서 두 차례 신학 교수 자리에 오른 사람이었는데, 이건 토마스 아퀴나스 외에 거의 받지 못한 영예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전국 최고 로스쿨에서 두 번 학장을 지낸 법학자 같은 존재였죠.
그 사람이 평생 연구한 '신'을 떠나달라고 기도했어요.
평생을 모셔온 사장에게 "사장님, 제발 좀 떠나주세요"라고 진지하게 부탁하는 것과 같아요.
그런데 그가 떠나달라 한 건 신 자체가 아니었어요.
그가 떠나달라 한 건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신의 이미지'였어요.
원하는 것을 들어주고 벌을 내리는, 인간이 자기 편의대로 조각해 놓은 신의 모습이에요.
에크하르트는 그 이미지가 오히려 진짜 신을 가린다고 봤어요.

라틴어로 쓰지 않으면 신학이 아니던 시대에, 그는 독일어로 설교했어요.
14세기 유럽에서 신학은 라틴어 전용이었어요.
라틴어를 모르면 신학 논의에 낄 수 없었고, 그건 평민 여성들에게 신학의 문이 닫혀 있다는 뜻이었어요.
하지만 에크하르트는 이 원칙을 깨고 독일 모국어로 설교한 첫 번째 주류 신학자가 됐어요.
그의 청중은 베긴회 여성들이었어요.
베긴회는 수녀원에 들어가지 않고 도시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기도와 노동을 하던 평신도 여성 모임이에요.
신학적 권위는 전혀 없었지만, 그가 가장 깊은 신학을 들고 찾아간 곳이 바로 그 자리였어요.
오늘날로 치면 이런 거예요.
옥스퍼드 물리학 정교수가 동네 노인 복지관에서 한국어로 양자역학을 강의하는 것과 같아요.
학계의 위계와 언어의 위계를 동시에 무너뜨린 행동이었어요.
그가 남긴 독일어 설교는 110여 편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어요.
그런데 이 선택은 결국 그를 위험한 자리로 밀어넣었어요.

도미니크회의 최고 신학자가, 같은 교회의 이단심문 법정에 섰어요.
1326년, 쾰른 대주교 하인리히 폰 비르네부르크가 에크하르트의 설교를 이단으로 기소했어요.
쾰른은 에크하르트가 수도회 총장직을 수행하며 가르치던 도시였어요.
자기 집 앞에서 고발당한 셈이었죠.
에크하르트는 무너지지 않았어요.
직접 변호문을 써서 제출했고, 법정에서 자신의 신학이 왜 이단이 아닌지를 조목조목 논증했어요.
그 변호서를 Rechtfertigungsschrift, 즉 "정당성을 밝히는 글"이라고 불러요.
하지만 쾰른 법정이 결론을 낼 기미를 보이지 않자, 그는 더 높은 곳으로 항소했어요.
당시 교황청이 있던 프랑스 아비뇽으로 재판을 넘긴 거예요.
그리고 1328년 무렵, 항소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그는 어딘가에서 조용히 세상을 떠났어요.

교황은 그의 28개 명제를 단죄했어요.
단죄된 글은 600년을 살아남았어요.
에크하르트가 죽은 이듬해인 1329년 3월 27일, 교황 요한 22세는 칙서를 발표했어요.
라틴어로 'In agro dominico', "주님의 들판에서"라는 제목의 이 문서에서 교황은 에크하르트의 명제 28개를 심판했어요.
17개는 이단으로, 11개는 이단에 가깝거나 의심스럽다고 선고했어요.
피고인은 이미 없었어요.
그래서 형벌은 그의 영혼에 씌워졌어요.
죽은 사람에게 이단 낙인을 찍는 것, 그게 당시 교회가 할 수 있는 가장 강한 조치였어요.
그런데 교회는 한 가지를 놓쳤어요.
에크하르트의 독일어 설교는 이미 수도원 안에서 필사본으로 퍼져 있었어요.
교황의 금서 선언 이후에도 수도사들은 책장 뒤에 필사본을 숨겨두고 몰래 읽고 또 베껴 썼어요.
그의 사상은 제자 타울러와 조이세에게 전해져 '라인 신비주의'라는 흐름을 만들었어요.
라인 신비주의는 신과 인간 영혼의 완전한 합일을 추구하는 독일 지역의 신학 전통이에요.
결국 600년 뒤, 헤겔이 그를 꺼내 읽었고, 쇼펜하우어가 읽었고, 하이데거가 읽었어요.
정부가 금서로 지정해 모두 태우라 명령한 책이, 수도원 책장 뒤에 살아남아 600년 뒤 철학과 학생들의 첫 교과서가 된 거예요.
교회가 지우려 했던 목소리가 독일 철학 전체의 지하 수원이 됐어요.
신에게 신을 떠나달라 빌었던 수도사.
그의 기도는 과연 들어졌을까요, 아니면 신은 끝내 그를 떠나지 않았던 걸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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