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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인류 최초의 계산기는 한 19세 천재가 아버지의 야근을 줄여주려고 만든 효도 선물이었어요.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의 아버지는 프랑스 왕실 소속 세무 공무원이었어요.
매일 밤 산더미 같은 장부를 앞에 두고 숫자를 더하고 또 더했어요.
아들은 그 모습을 보다 못해 직접 기계를 만들기로 했어요.
1642년, 열아홉 살의 파스칼은 3년에 걸쳐 파스칼린(Pascaline)을 완성했어요.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며 덧셈과 뺄셈을 자동으로 처리하는, 인류 역사상 최초의 기계식 계산기예요.
매일 야근하는 부모를 보고 엑셀 매크로를 짜드리는 고등학생을 떠올리면 딱 맞아요.
하지만 그 고등학생이 만든 매크로가 300년 뒤 컴퓨터의 조상이 됐다면 어떨까요.
파스칼린이 바로 그랬어요.

1648년 9월, 한 남자가 화산 정상으로 올라가 2000년 된 진리를 무너뜨렸어요.
아리스토텔레스 이래로 서양 철학과 과학은 "자연은 진공을 싫어한다(horror vacui)"고 가르쳤어요.
빈 공간은 존재할 수 없다는 뜻이에요.
2000년 동안 아무도 의심하지 않은, 상식보다 더 상식 같은 진리였어요.
파스칼은 달랐어요.
그는 매부 페리에(Florin Périer)에게 부탁해, 프랑스 중부의 사화산 퓌드돔(Puy de Dôme) 정상과 산기슭에서 각각 수은 기둥의 높이를 측정하게 했어요.
사화산이란 지금은 폭발하지 않는, 다만 그 자리에 우뚝 서 있는 화산이에요.
결과는 단순했어요.
산 위에서 수은 기둥이 더 낮았어요.
즉 공기 압력은 높이에 따라 달라지고, 진공은 실제로 존재한다는 뜻이었어요.
측정 한 번으로 2000년이 틀렸어요.

확률론은 학회가 아니라 17세기 파리의 도박판에서 시작됐어요.
1654년, 사교계를 누비던 귀족 슈발리에 드 메레(Chevalier de Méré)가 파스칼에게 물었어요.
"두 사람이 게임 도중에 멈추면, 판돈을 어떻게 나눠야 공평한 거냐?"
오늘로 치면 친구와 내기를 하다가 중간에 그만뒀을 때 돈을 어떻게 쪼개냐는 질문이에요.
파스칼은 이 질문을 툴루즈의 수학자 페르마(Pierre de Fermat)와 편지로 주고받으며 함께 풀었어요.
페르마는 낮에는 변호사로 일하고 밤에 수학을 하던 사람이었어요.
두 사람의 편지에서 기댓값의 개념이 처음 탄생했어요.
기댓값이란 "이 선택을 계속 반복하면 평균적으로 얼마를 얻느냐"를 숫자로 나타낸 것이에요.
이게 왜 중요하냐면, 오늘날 보험료 계산, 주식 리스크 평가, AI 학습 알고리즘이 전부 이 개념 위에서 작동하거든요.
술자리 다툼 하나가 현대 문명의 설계도가 됐어요.

1662년 8월, 파스칼의 하인은 주인의 낡은 외투 안감에서 작은 양피지 한 장을 발견했어요.
8년 전인 1654년 11월 23일 밤 10시 30분, 파스칼은 약 두 시간 동안 무언가를 경험했어요.
그는 그 직후 손에 잡히는 양피지에 단편적인 문장들을 급하게 적어 내려갔어요.
"불(Feu). 아브라함의 신, 이삭의 신, 야곱의 신. 철학자와 학자의 신이 아니다."
그는 이 양피지를 외투 안감에 직접 꿰매 넣었어요.
새 옷으로 갈아입을 때마다 양피지도 함께 옮겼어요.
39세로 죽을 때까지 단 하루도 몸에서 떼지 않았어요.
후대 연구자들은 이 메모를 '메모리얼(Mémorial)'이라 불러요.
그날 밤 파스칼이 무엇을 봤는지,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파스칼 자신도 설명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날 이후, 계산기를 만들고 2000년 된 도그마를 깨고 확률론을 창시한 천재는 수학과 물리를 사실상 그만뒀어요.
남은 시간을 신과 인간에 관한 글을 쓰는 데 쏟았어요.
그 글들이 사후에 묶여 《팡세(Pensées)》로 출판됐어요. 팡세는 프랑스어로 "생각들"이라는 뜻이에요.
가장 날카로운 이성을 가졌던 사람이 가장 설명하기 어려운 경험을 하고, 그것을 죽을 때까지 옷 속에 품고 살았어요.
양피지가 발견된 건 그가 숨을 거둔 뒤였어요.
파스칼이 그걸 누군가에게 보여주고 싶었는지, 아니면 그냥 혼자 간직하고 싶었는지, 우리는 영영 알 수 없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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