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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그는 시 한 편을 낭송하면 동전 한 줌을 받는 떠돌이였어요.
그런데 그가 외워 다닌 시 중 절반은 그리스 시 전체를 비웃는 자작시였습니다.
크세노파네스는 기원전 570년경 콜로폰, 지금의 터키 서쪽 해안에 있던 그리스 도시에서 태어났어요.
25세 되던 해, 페르시아 군대가 쳐들어왔습니다.
그는 고향을 잃었고, 이후 67년을 그리스 도시들을 떠돌며 시를 낭송해 먹고살았어요.
이런 직업을 음유시인(rhapsode)이라고 불렀는데, 공연장 없이 광장 계단에서 노래하는 버스커 같은 존재였습니다.
음유시인의 핵심 레퍼토리는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아》를 외워 들려주는 일이었어요.
호메로스는 당시 그리스인 전체의 정신적 교과서였습니다.
그런데 크세노파네스는 그 호메로스를 정면으로 공격하는 시를 직접 지었어요.
유튜브로 먹고사는 크리에이터가 매 영상마다 "유튜브는 인간을 망친다"고 외치며 구독자를 끌어모으는 격이었죠.
그리고 그 비판을 낭송하며 생계를 이어갔습니다.

말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신을 말의 모습으로 그릴 것입니다.
크세노파네스가 2500년 전에 쓴 한 줄이에요.
그의 비판은 구체적이었습니다.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는 인간들 사이에서 부끄럽고 비난받는 모든 짓, 도둑질, 간통, 서로 속이기를 신들이 하는 것으로 그렸다."
헤시오도스는 《신들의 계보》를 쓴 시인으로, 그리스 신화를 처음 체계적으로 정리한 인물이에요.
그런데 크세노파네스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에티오피아인은 신을 검고 들창코로 그리고, 트라키아인은 푸른 눈에 붉은 머리로 그린다."
결론은 하나였어요. "만일 소와 말과 사자가 손이 있어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면, 그들은 신을 소와 말과 사자의 모습으로 그릴 것이다."
이 논리의 핵심은 단순합니다.
인간은 자기가 아는 모양으로만 상상할 수 있어요.
그래서 어느 민족이 상상하든 신은 결국 그 민족의 얼굴을 갖게 되고, 그 민족의 도덕 수준에 머물게 됩니다.
19세기 철학자 포이어바흐가 이 논리로 유럽 신학 전체를 뒤흔들었는데, 크세노파네스는 그보다 2400년이나 앞서 같은 말을 했습니다.
당시 신학자도 철학자도 아닌, 동전 한 줌으로 먹고사는 떠돌이가.

그는 산 위에서 물고기 뼈를 봤어요.
그리고 거기서 신화 대신 시간을 읽었습니다.
크세노파네스는 평생 떠돌았기 때문에 여러 곳에서 직접 땅을 관찰할 수 있었어요.
시라쿠사(시칠리아 동부의 그리스 식민도시), 파로스(에게해의 대리석 채석 섬), 몰타 등의 산과 채석장에서 물고기, 조개, 해초의 흔적이 돌 안에 새겨진 것을 발견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화석이라고 부르는 것이에요.
그는 거기서 이렇게 추론했어요.
"이 땅은 한때 바다 밑이었다."
더 나아가, 인간과 자연은 주기적으로 바다와 진흙에 잠겼다가 다시 마른다는 가설까지 세웠습니다.
신화식 설명이라면 "포세이돈이 땅을 들어올렸다"가 됐겠죠.
하지만 그는 돌 안의 흔적만으로 결론을 냈어요.
지질학이 학문으로 성립한 건 19세기의 일인데, 크세노파네스는 그보다 2300년 앞서 동일한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신들을 부정했던 그가 마지막에는 자기 자신도 부정했습니다.
나도 진리를 모른다고.
그가 만년에 남긴 단편이 있어요.
"분명한 진리는 어떤 사람도 본 적이 없으며, 신들에 관해서도 내가 말하는 모든 것에 관해서도 앞으로도 알지 못할 것이다."
그는 거기서 한 발 더 나아갔습니다.
"누군가 우연히 가장 완전한 것을 말한다 해도, 그 자신은 그것을 알고 있는 것이 아니다. 모든 것에는 추측이 있을 뿐이다."
한마디로, 우리가 맞는 말을 해도 그게 맞는 줄 스스로 확인할 수 없다는 거예요.
이 문장은 서양 사상에서 '인간 지식의 한계'를 명시적으로 선언한 최초의 텍스트로 꼽힙니다.
후대의 회의주의 철학자 피론, 그리고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의 데카르트가 모두 의심에서 철학을 시작했는데, 그 흐름의 가장 앞에 이 사람이 있었어요.
신들을 비웃고, 화석에서 지질학을 발명하고, 자기 자신마저 의심했던 사람.
그는 죽을 때까지 정착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면 그 끝없이 떠도는 삶이 그로 하여금 아무것도 당연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어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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