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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프레게의 평생작을 무너뜨린 것은 비판자가 아니라, 그의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은 단 한 사람의 독자였어요.
1902년 6월 16일, 독일 예나 대학의 수학자 고틀로프 프레게는 영국에서 온 편지 한 통을 받아요.
보낸 사람은 영국의 논리학자 버트런드 러셀, 당시 30살의 젊은 학자였어요.
타이밍이 최악이었어요.
프레게는 바로 그 시점에 자신의 평생작 「산수의 기본법칙(Grundgesetze der Arithmetik)」 제2권을 인쇄하려던 참이었거든요.
'수학의 모든 것은 순수한 논리에서 나온다'는 걸 증명하겠다고, 25년 동안 쌓아온 책이에요.
그 편지에 러셀이 쓴 말은 짧았어요.
"당신의 시스템 안에 모순이 있습니다."
이른바 러셀의 역설이에요.
쉽게 말하면, '자기 자신을 포함하지 않는 집합들의 집합'을 생각해보면, 그것이 자기 자신을 포함하는지 아닌지가 결정이 안 된다는 거예요.
프레게가 집합 개념을 써서 산수의 기초를 세웠는데, 그 집합 개념 자체에 구멍이 뚫린 거예요.
신제품 출시 전날 밤, 가장 열심히 앱을 써준 베타 테스터 한 명이 메일을 보내온 상황이에요.
"있잖아요, 이 앱의 핵심 엔진 자체가 잘못 설계됐어요."

훗날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이 무릎 꿇었던 그 사상가는, 살아 있는 동안 자기 학과에서도 인기 없는 강사였어요.
프레게는 1879년 「개념표기법(Begriffsschrift)」이라는 책을 냈어요.
오늘날 컴퓨터 프로그래밍 언어 설계와 수학 증명에 쓰이는 현대 기호논리학을, 사실상 혼자 만들어낸 책이에요.
하지만 학계 반응은 거의 없었어요.
1893년에는 「산수의 기본법칙」 제1권을 출판했는데, 이것도 마찬가지였어요.
비용을 본인이 거의 다 댔고, 팔리지 않았고, 인용도 거의 안 됐어요.
프레게는 평생 예나라는 작은 도시의 비주류 수학교수로 지냈어요.
수업에 오는 학생도 거의 없었고, 정규 교수직도 늦게 받았어요.
혼자 차고에서 새로운 운영체제를 20년 넘게 만들었는데, 발표회에 아무도 안 온 개발자와 비슷해요.
그래도 포기하지 않았어요.
제2권 작업을 계속했고, 마침내 인쇄 직전까지 왔어요.
그러다 러셀의 편지를 받은 거예요.

프레게는 도망치지 않았어요.
자기 책 마지막 장에, 자기 손으로, 자기 책의 결함을 새겨 넣었어요.
1903년 출간된 「산수의 기본법칙」 제2권에는 본문 뒤에 부록이 붙어 있어요.
거기서 프레게는 이렇게 써요.
"과학자에게, 자기 작업이 끝난 뒤에 그 토대 중 하나가 흔들리는 일보다 더 환영받지 못할 사건은 거의 없다."
이 책을 완성해서 내놓는 마당에 스스로 적은 첫 문장이에요.
자기가 자기 책에, "이 책의 기초에 문제가 생겼습니다"라고 직접 새긴 거예요.
프레게는 임시 수정안도 제시했어요.
학자들은 이걸 '프레게의 탈출구(Frege's way out)'라고 불러요.
하지만 훗날 그 수정안도 일관성이 없다는 게 밝혀졌어요.
그 이후 프레게는 '산수는 논리에서 나온다'는 자신의 평생 프로그램을 사실상 포기해요.
25년의 작업이, 책이 인쇄된 직후에, 저자 본인에 의해 철회된 거예요.
자기 앱을 25년 만에 출시하면서 마지막 화면에 "이 앱은 근본적으로 작동하지 않습니다"라는 공지를 직접 달고 내보낸 개발자와 같아요.
이상한 결정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게 정직한 학자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을 거예요.

프레게의 책은 무너졌지만, 20세기 철학자들은 모두 그가 무너진 자리에서 첫걸음을 뗐어요.
러셀은 프레게의 미완 프로젝트를 이어받아, 수학자 알프레드 노스 화이트헤드와 함께 「수학원리(Principia Mathematica)」 3권을 1910년부터 1913년에 걸쳐 내놓아요.
수학의 모든 명제를 논리 기호로 증명하려 한 책인데, 프레게가 열어놓은 길을 따라간 작업이에요.
1911년, 케임브리지에 한 청년이 찾아와요.
바로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훗날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 중 하나로 꼽히는 사람이에요.
그는 처음에 러셀이 아니라 프레게를 만나러 예나로 먼저 갔는데, 프레게 본인이 "러셀에게 가라"고 권했어요.
루돌프 카르납을 비롯한 빈 학파도 프레게에게서 출발점을 가져갔어요.
빈 학파는 20세기 초 유럽 과학철학의 주류를 형성한 철학자 집단이에요.
프레게가 「뜻과 지시체(Sinn und Bedeutung)」에서 제시한 구분, 즉 '이름이 가리키는 대상'과 '이름이 의미하는 방식'이 다르다는 아이디어는 오늘날 언어철학의 기초가 됐어요.
프레게는 1925년에 세상을 떠났어요.
망해서 폐업한 회사의 기술 명세서가 다음 세대 산업 전체의 표준 문서가 된 것처럼, 무너진 평생작이 한 세기 전체의 토대가 됐어요.
러셀의 편지를 받은 날, 프레게가 뭘 생각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하지만 그가 책 마지막 페이지에 손수 남긴 그 문장은, 100년이 지난 지금도 논리학 교과서에 실려 있어요.
자기 실패를 직접 기록한 사람이 가장 오래 기억된다는 게, 과연 우연일까요.
TTS 음성이 없어요.
아래 버튼으로 나레이션을 생성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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