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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에는 덕이면 충분하다안티스테네스

콰인은 자기를 키운 진영을 자기 손으로 무너뜨렸다.
1951년, 미국의 철학자 윌러드 밴 오먼 콰인이 논문 한 편을 발표했다.
제목은 '경험주의의 두 도그마'(Two Dogmas of Empiricism)였다.
당시 철학계의 주류는 논리실증주의였다.
논리실증주의란 "진짜 지식은 논리적으로 증명되거나 실험으로 검증된 것만 인정한다"는 철학 운동으로, 20세기 초 빈에서 시작해 유럽과 미국 철학계를 휩쓸었다.
콰인도 바로 그 진영에서 훈련받은 사람이었다.
그 진영이 당연시하던 전제가 두 개 있었다.
첫째, 분석명제와 종합명제는 구분된다.
둘째, 각 문장의 의미는 그것을 검증하는 경험으로 쪼개어 환원할 수 있다.
비유하자면 이렇다.
"총각은 미혼 남성이다"처럼 말의 뜻만으로 참이 되는 문장이 분석명제이고, "오늘 서울 기온은 20도다"처럼 직접 확인해야 참이 되는 문장이 종합명제다.
논리실증주의자들은 이 둘의 경계가 선명하다고 믿었다.
콰인은 그게 착각이라고 했다.
"'총각은 미혼 남성이다'가 참인 건, 우리가 '총각'의 의미를 그렇게 약속했기 때문이잖아. 그런데 그 약속이 성립한다는 건 또 어떻게 증명해? 그것도 결국 또 다른 약속에 기댈 수밖에 없어."
꼬리를 물고 따라가면 완전히 자립하는 논리적 기초는 어디서도 나오지 않는다는 거였다.
평생 다닌 회사의 핵심 사업 모델이 사실 틀렸다고 사내 발표회에서 공개적으로 선언한 직원을 상상해봐라.
그게 정확히 콰인이 한 일이었다.
이 논문은 오늘날 분석철학사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논문 중 하나로 꼽힌다.

콰인에 따르면 당신이 쓰는 영어 사전은 사실 추측의 모음집이다.
이게 과장이 아닌 이유가 있다.
1960년, 콰인은 대표작 '말과 대상'(Word and Object)에서 한 사고실험을 제시했다.
한 언어학자가 처음 접하는 부족 마을에 들어갔다.
그런데 토착민 한 명이 토끼가 지나가는 걸 보며 "가바가이(gavagai)!"라고 외쳤다.
언어학자는 수첩에 "가바가이 = 토끼"라고 적으려 한다.
그런데 잠깐, 그걸 어떻게 확신하는가?
"가바가이"가 "저기 토끼가 있다"는 뜻일 수도 있고, "토끼의 귀 한 쌍"일 수도 있고, "달리는 흰 털 물체"를 가리키는 말일 수도 있다.
이걸 '번역의 불확정성'이라 부른다.
어떤 언어를 완벽하게 번역했다는 증거는 원리적으로 만들 수 없다는 주장으로, 어떤 번역 체계를 가져와도 그것과 전혀 다른 체계가 같은 상황에 일관되게 들어맞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 체계 중 어느 것이 "더 맞다"고 판정할 방법 자체가 없다.
처음 만난 사람과 손짓으로만 대화할 때를 떠올려봐라.
상대가 나무를 가리켰을 때, 그게 "저 나무 전체"인지 "저 잎사귀"인지 끝내 확신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콰인은 그 불확실성이 모든 언어 번역에 구조적으로 내장돼 있다고 했다.
결국 우리가 쓰는 사전은 지금까지 가장 많이 통한 추측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맞다"는 증거가 아니라, "아직 틀리지 않았다"는 이력이 쌓인 것이다.
이 생각은 언어학자와 번역가들 사이에서 지금도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콰인은 철학자이면서 철학의 특권을 스스로 박탈했다.
자기 밥그릇을 직접 차버린 셈이다.
플라톤 이래 2400년 동안 철학은 모든 학문의 위에 있었다.
과학이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가"를 연구한다면, 철학은 "과학이 무엇을 알 수 있고 어떻게 알 수 있는가"를 심판하는 자리였다.
쉽게 말해, 모든 학문의 재판관이었다.
1969년, 콰인은 논문 '자연화된 인식론'(Epistemology Naturalized)에서 그 재판관석을 스스로 내려왔다.
인식론이란 "우리는 어떻게 무언가를 알 수 있는가"를 탐구하는 철학의 핵심 분야다.
콰인은 그게 더 이상 과학의 토대를 정당화하는 상위 작업이 아니라, 심리학과 인지과학의 한 분과로 흡수되어야 한다고 했다.
"우리가 어떻게 세상을 아는가는 우리 뇌가 어떻게 작동하는가의 문제잖아. 그건 실험과 관찰로 답하는 과학의 영역이야. 철학이 그 바깥에서 과학을 심판할 수 있다는 건 오만이야."
철학이 "당위"를 논하는 대신 "실제"를 연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결국 철학은 과학을 심판하는 자리가 아니라 과학과 함께 연구하는 자리에 있어야 한다는 거였다.
평생 심사위원이었던 사람이 어느 날 "나는 자격이 없다, 참가자석에 앉겠다"고 선언하는 것과 같다.
이 논문은 당시 철학자들 사이에서 거센 반발을 불렀다.
하지만 지금은 철학의 정체성을 논할 때 가장 먼저 소환되는 텍스트 중 하나가 됐다.

도그마를 부순 철학자는 자기 책상만큼은 평생 옮기지 않았다.
이 역설이 콰인이라는 인물을 가장 잘 설명한다.
콰인은 1930년 하버드 대학원에 입학했다.
1948년 정교수가 된 이후 2000년 세상을 뜨기 전까지, 70년간 단 한 번도 다른 대학으로 옮기지 않았다.
분명 다른 대학의 제의가 없지 않았을 텐데,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더 놀라운 건 타자기다.
콰인은 1927년식 레밍턴 수동 타자기 한 대로 평생의 모든 저작을 썼다.
컴퓨터가 대학 연구실을 채우던 시대에도, 그 낡은 기계의 키를 직접 개조해 논리 기호를 찍어냈다.
모든 전제를 의심하고 모든 도그마를 해체한 사람이, 자기 생활만큼은 가장 보수적인 루틴으로 봉인했다.
회사의 모든 관행을 뒤엎자고 주장하는 혁신가가, 정작 본인은 30년 된 같은 책상에서 같은 펜으로만 일하는 것과 같다.
이 아이러니가 의도된 것인지, 그냥 콰인이 그런 사람인 건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어쩌면 그것도 콰인의 방식이었을지 모른다.
사상은 끊임없이 의심하되, 몸은 한 자리에 두고.
그 낡은 타자기가 도그마를 부순 손의 무게를 기억하고 있다면, 그게 이 철학자에 대한 가장 정확한 설명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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